[왕영은이상우의행복한아침편지]꼴찌의눈물겨운맨발투혼

입력 2008-07-10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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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앞에서 가장 창피했던 순간을 꼽으라고 한다면 저는 결혼을 앞두고, 회사 단합대회에서 달리기하던 날이 생각납니다. 매번 그렇듯이 단합대회 때, 결혼을 한 직원은 가족들을 데리고, 미혼 직원들은 여자 친구나 남자 친구와 함께 참석했습니다. 저는 당시 여자 친구였던, 지금의 아내를 데리고 나갔습니다. 사실 아내는 가고 싶지 않다고 만류했습니다. 그래도 저는 정식으로 회사 사람들에게 아내를 소개해주고 싶은 마음에 부탁을 했습니다. 오랜만에 야외에서 데이트도 하고 싶고 해서 억지로 데리고 나갔습니다. 어쨌든 그렇게 저는 기분 좋게 한참을 먹고 마시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아내도 어느 정도 마음을 풀고 회사 사람들과 친해지고 있던 참이었습니다. 그때 누군가가 갑자기 전 직원이 모였으니, 릴레이 달리기를 하자며 제안을 했습니다. 저는 그 때부터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고, 가슴이 방망이질 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저는 달리기라고 하면, 학창시절에도 매번 꼴찌를 면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나름대로 열심히 달렸지만, 항상 뒤를 돌아보면 아무도 저를 쫓아오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런 저를 보고 어머니께선 “이놈아 앞만 보고 뛰어. 뒤에 봐 봤자 아무도 없응께” 하며 저를 나무라곤 하셨습니다. 어쨌든 그런 미천한 실력인데 제 아내 앞에서 달리기를 하려니 어찌나 당황스럽던지… 정말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습니다. 하지만 제 속도 모르고 아내는, “자기는 몸이 날렵하게 생겼으니깐 달리기 자신 있지?” 라면서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웠습니다. 저의 등에서는 식은땀이 줄줄 흘렀습니다. 그래도 체면 때문에 기권은 못했습니다. 혹시나 그동안 실력이 나아지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에 출발선에 섰습니다. 눈썹이 휘날리도록 달리고, 심지어 맨발의 투혼을 벌였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영광의 꼴지를 하고 말았습니다. 게다가 결승전을 앞두고 발이 꼬여 그대로 넘어지는 바람에 어린 아이처럼 무릎까지 벗겨지고 말았습니다. 그런 저를 보며 아내는 웃음을 못 참고 계속 웃어댔습니다. 그 때 얼마나 창피하고 부끄럽던지…. 지금까지도 그 때 웃던 아내 모습은 잊혀지지가 않습니다. 그 후 결혼해서 요즘은 애들 운동회에서 부모님 달리기를 시키는데, 애들이 저보고 “아빠! 나오셔서 달리기 좀 해주세요!” 하면 아내는 “니 아빠가 거길 왜 나가니! 엄마가 나갈게” 하면서 대신 달리고 옵니다. 아무튼 아내 앞에서 창피 당한 이후로 달리기를 멀리합니다. 저는 회사 단합 대회는 물론이고, 아이들 학교에서도 달리기라면 절대로 뛰지 않습니다. 대신 그 모든 달리기를 착한 우리 아내가 대신 해주고 있답니다. 충남 예산|이태수 행복한 아침, 왕영은 이상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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