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영은이상우의행복한아침편지]홀로딸키우는이웃男힘내요!

입력 2008-07-11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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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가을 제가 사는 연립에 새로운 이웃이 이사를 왔습니다. 그 전에 살던 사람들은 저희 부부보다 10살이나 더 많았고, 중학교 다니는 아들까지 둔 사람들이었는데, 4년 동안 살면서 저희 아이들을 얼마나 예뻐해 주셨는지 모릅니다. 그런 분들이 이사 가고, 새로 이웃을 맞게 되자 아내는 어떤 사람들이 이사 올지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50대의 낯선 아주머니가 이삿짐을 옮기고 짐 정리를 하고 있었습니다. 아내는 비누를 사들고 인사한다고 갔다 오더니 제게 이런 얘기를 하더군요. “여보! 내가 앞집 가서 그 아주머니한테 인사하고 왔는데, 그 아주머니가 그러시더라. 자기가 이사 오는 게 아니라 자기 남동생이 오는 거니까 잘 좀 부탁한다고. 그 집에 꼬마 여자애도 있는 것 같은데, 부인이 없는 것 같더라. 냉장고 정리를 누나가 하고 있잖아∼ 뭔가 이상하지?” 하더군요. 저는 “이상하긴 뭐가 이상해? 직장 다니거나 뭔가 이유가 있겠지”했더니 아내가 “아니야∼ 이사처럼 큰 일이 있으면 하루 쉬어야지. 냉장고 정리를 남이 하면 얼마나 싫은데∼”이러면서 혼자 추리 소설을 쓰더군요. 저는 그런 아내의 얘기를 대수롭지 않게 넘겼는데, 어느 날 아내가 또 그러는 겁니다. “여보! 그 집에 우리 둘째랑 동갑인 초등학교 2학년 여자애가 있는데 내가 슬쩍 엄마 어디 있냐고 물어봤거든. 그런데 엄마 아빠가 이혼해서 따로 산대. 그 아저씨 정말 대단하지 않아? 어쩜, 아빠가 혼자서 딸을 키울 생각을 했을까”이러면서 또 호들갑을 떨더군요. 저는 아내의 말을 못 들은 척 했지만, 혼자 아이를 키우는 앞집 남자가 좀 특별하게 보인 건 사실이었습니다. 그 후로 아내는 앞집 남자가 매일 아침 딸의 손을 잡고 나란히 집을 나서는데, 오후 6시 반쯤 집에 들어오면서 양손에 뭔가를 잔뜩 사들고 온다고 얘기를 해줬습니다. 어느 날 저녁에는 생선 굽는 냄새가 나고, 어느 날은 카레 냄새가 난다면서, 그래도 저녁은 해 먹는 것 같아 다행이라고 그러더군요. 그렇게 아내의 관심이 앞집에 기울어져 있던 어느 날, 밤늦은 시간인데 누군가 우는 소리가 들리는 겁니다. 아내는 처음 도둑고양이가 생긴 것 같다고 그랬는데, 조금 더 들어보더니, 아무래도 앞집에서 나는 소리인 것 같다면서 앞집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습니다. 아내는 “다정아∼ 다정아∼ 앞집 아줌마야∼ 문 좀 열어 봐”했고, 앞집 여자 아이는 예쁜 잠옷 차림으로 울면서 문을 열어줬습니다. 집안은 깨끗이 정리되어 있었지만 아이 아빠는 보이지 않았고, 아이는 울음을 그치지 않았습니다. 아내는 아이를 우리 집으로 데리고 와 따뜻한 우유 한 잔을 주며 진정을 시켰습니다. 아이한테 왜 우냐고 물어보니까 “아까는 아빠가 있었는데, 일어나 보니까 아빠가 없어요. 분명히 자기 전엔 있었는데”하면서 아이가 또 훌쩍이더군요. 아내는 아이에게 아빠 휴대전화 번호를 물어서, 전화를 걸었고, 20분이 지나자 그 사람이 달려왔습니다. 입에서 술 냄새가 나고 있었습니다. 아는 선배가 불러서 잠깐 나갔다 왔다고 하더군요. 아내는 “이사하신 지 얼마나 됐다고 애 혼자 재워요. 애가 밖으로 나갔다가 길이라도 일어버리면 어쩔 뻔했어요. 다음엔 이런 일 있을 때 차라리 저희 집에 맡기세요! 제가 봐드릴게요”라고 하더군요. 그 후 앞집 남자는 야근이 있거나 무슨 일이 생기면 다정이를 우리 집에 맡겨 놓았고, 꼭 미안하다며 딸기라든지 참외를 사들고 인사를 왔습니다. 저는 간혹 계단을 오르내리거나, 출근길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면 눈인사만 하는데, 딸아이의 머리를 어설프기는 하지만 곱게 따 놓은 솜씨나, 준비물을 꼭 챙겨주는 손길을 보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저는 아들만 둘이지만, 만약 이런 일이 생겼을 때, 과연 아이들을 잘 키울 수 있을까 고민이 되더군요. 요즘은 겨우 눈인사 정도만 하는데, 다음엔 삼겹살 먹자고 먼저 저희 집으로 초대해서, 소주라도 한 잔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제가 초대하면 그 예의 바르고 예쁜 다정이와 함께 그 이웃이 환한 얼굴로 저희 집을 찾아올 것 같습니다. 경기도 안산|김필문 행복한 아침, 왕영은 이상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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