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영은이상우의행복한아침편지]우리집‘은혜로운’묵상집

입력 2008-07-19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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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장마철이라고 해도 비는 많이 안 오고, 습하고 덥기만 한 것 같습니다. 지난 주말, 더운데다 바람까지 몹시 불던 그 날에 저희 집에 목사님께서 방문을 하셨습니다. 목사님 부부와 두 분 집사님, 이렇게 네 분이 단아하고 진지한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저와 함께 예배보고, 기도드리고, 찬송가도 불렀습니다. 더운 날씨에 정장차림으로 오셔서 그런지 다들 무척 더워 보이고, 땀도 많이 흘리셨습니다. 저는 미닫이 베란다 문을 활짝 열고, 거실에 있는 중간 문까지 모두 열어놓았습니다. 경건한 마음으로 예배를 보며 목사님의 기도를 열심히 듣고 있는데… 그 기도가 절정에 다다르는 순간, ‘끼이이익… 쾅!’하고 거실문이 심하게 닫히는 소리가 나는 겁니다. 모두들 너무 놀라서 잠시 기도가 멈췄습니다. 저희 집 거실 문이 상당히 육중해서, 소리가 엄청나게 크게 났습니다. 저는 계속 기도를 하실 수 있게 조용히 앉아 있다가 살금살금 가서 문을 열고, 평소에 거실 문을 고일 때 자주 쓰던 책을 찾았습니다. 두께가 두툼한 게 그거 한 권만 있으면 저희 집 거실 문 닫히는 걸 막는 데 아주 유용했습니다. 기도가 계속 길어지고 있어서 저는 얼른 문 주변을 뒤졌습니다. 선반 위에 있던 그 책을 찾아 얼른 문을 고이고 다시 조용하게 기도에 동참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렇게 기도도 끝나고 예배도 다 끝나서 모두 돌아가실 시간이 됐는데, 집사님 두 분이 자꾸만 저를 보며 뭔가 눈짓으로 사인을 보내고 계셨습니다. 한 쪽 눈을 깜박깜박 하며 뭔가를 가리키는데, 저는 도대체 왜 그런지 눈치를 챌 수가 없었습니다. 속으로만 ‘왜 저러시지? 내가 뭘 빠뜨린 게 있나’ 하고 생각하고 있는데, 한 집사님이 그런 제가 답답했는지 제게 오셔서 귓속말로, “저기, 저 거실 문 좀 한 번 보세요” 하시기에, 얼른 문을 봤습니다. 정말 그 상태로 전 얼음이 되고 말았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평소에 쓰던 그 두꺼운 책이 글쎄 목사님께서 출판하신 설교묵상 집이었던 겁니다. 평소 습관대로 문을 고이느라, 그 책이 묵상집이었다는 걸 깜박 했습니다. 목사님이 보시고 얼마나 기분 나쁘셨을지 놀랍고 민망해서 어쩔 줄을 몰랐습니다. 저는 얼른 시원한 냉차를 가져와 집사님과 목사님께 드리며 “목사님! 정말 죄송해요. 제가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 책을 찾다가 그만 보이는 게 저거여서…” 뭐 이렇게 변명을 해대고 있었습니다. 목사님께서 냉차를 시원∼하게 쭉∼ 들이키시더니 말하셨습니다. “허허 아닙니다∼ 제가 저 책을 나눠 준 이래로 이렇게 요긴하게 쓰이는 집은 처음 봅니다∼” 그 말씀에 제가 더 부끄럽고 죄송해졌습니다. 사실 저 책이 작년 겨울에 출판됐는데, 제가 아무리 열심히 읽으려고 애를 써도 잘 읽혀지지가 않는 겁니다. 제 딴엔 자주 보이면 잘 읽겠지 싶어서 눈에 띄는 거실 선반에 올려놓고 있었던 건데, 어느 날 저희 남편이 여름에 거실문 닫히는 소리에 놀라더니, 그 책을 그렇게 딱 문에 고이고 만 겁니다. 자주 보이면 자주 읽을 줄 알았는데, 오히려 다른 용도로 더 잘 쓰이고 만 거였지요. 하지만 전 그런 것도 다 잊어버리고 그저 목사님만 뵈면, “목사님∼ 묵상집이 너무 은혜스러워요∼ 너무 좋습니다∼” 하면서 인사까지 드렸는데… 목사님이 절 얼마나 이상하게 보셨을까요? 제가 그 날 모임에 갔다 집에 온 남편에게 낮에 있었던 일을 얘기해줬더니 남편은 또 “뭐 어쩔 수 없지. 사이즈를 그렇게 우리 집 문 고이기 딱 좋게 만든 출판사를 원망할 수밖에…”라고 했습니다. 그 후 목사님을 뵐 때마다 몇 번이고 죄송하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목사님께서는 그저 호탕하게 웃으시며 괜찮다고만 하십니다. 하지만 제 마음이 편치 않아서 이렇게 또 말씀드립니다. “목사님! 묵상집은 못 읽어봤지만 목사님 기도만큼은 정말 은혜스럽습니다∼ 이건 거짓말 아니고 진짜예요∼ 그 때 정말 죄송했어요∼” 대전 서구|김진경 행복한 아침, 왕영은 이상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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