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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1학년 때 처음으로 미팅이라는 것을 해봤습니다. 그래서 첫 미팅에 나가는 날에는 정말 신경도 많이 쓰고 나갔습니다. 쪽지에 마음에 드는 사람을 1지망과 2지망으로 써서 냈는데, 다들 사전에 눈이 맞아 있었는지 저는 제가 원하는 사람과는 짝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 누구에게도 선택을 받지 못해, 그야말로 눌러놓은 찐빵처럼 생긴 남학생과 짝이 되었습니다. 제가 1지망으로 써냈던 그 남학생은 저와 제일 친했던 효진이와 잘 되어가는 눈치였습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풀이 죽어서 지내는데, 학교에서 축제를 하면서 가요제를 개최한다고 신청자 모집을 하는 대자보가 붙었습니다. 그 모집 글을 보자마자 머릿속이 번뜩하는 것이 몸이 근질근질 했습니다. 성격상 나서기를 좋아하는데다가, 제 한 몸 다 바쳐 망가지면서 남을 웃기길 좋아했습니다. 한 때 학창시절에 ‘호랑나비 황지수’라는 별명을 갖고 다른 반까지 불려 다니며 위문공연을 다니기도 했습니다. 이런 제 모습을 아는 친구가 꼭 한번 가요제에 나가보라며 강력추천을 했습니다. 이 통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신신애 씨의 ‘세상은 요지경’이라는 노래로 가요제에 신청을 했습니다. 신청서를 쓰기 전까지만 해도 정말 대학에 와서까지 이렇게 망가져도 될까 싶었는데, 막상 접수를 하고 나니 더 열심히 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예선은 가뿐히 통과했습니다. 가요제 본선이 있던 그날 제 어깨보다 더 큰 뽀글거리는 가발을 빌려 썼습니다. 할머니들이 입는 막바지에, 촌스러운 분장을 하고 무대에 섰습니다. 그리고 속으로 ‘내가 좋다는 남자는 내가 싫다고 하니 세상은 정말 요지경이다∼’는 생각을 하며 눈을 지그시 감고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신나게 노래를 불렀습니다. 객석의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습니다. 노래를 부르면서 쭉 둘러보는데, 제가 좋아하던 그 남자, 제 친구 효진이와 미팅 때 만나 사귀고 있던 그 남자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저게 여자 맞어?’라는 한심한 눈빛으로 저를 쳐다보았습니다. 눈이 딱 마주친 순간 너무 창피했습니다. 그래도 인기상을 받아서 마음의 위안을 삼으며 무대에서 내려왔습니다. 무대 뒤쪽에는 공주처럼 멋을 낸 효진이가 남자친구와 와 있었습니다. 저는 우스꽝스런 제 모습이 효진이와 비교가 되는 것 같아서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숨고 싶었습니다. 효진이는 너무 웃겼다며 마냥 웃고 있고, 남자친구는 제게 “시집 안 가고 평생 혼자 사실 작정인가봐요?”라면서 저를 놀리는데, 정말 좋아하는 남자 앞에서 그런 소릴 듣다니…너무 속상했습니다. 그래서 그 날 이후로 아무리 막춤이 추고 싶고, 망가지고 싶어도 참겠다고 다짐을 했습니다. 조신하고 단아한 여자로 거듭나기로 마음을 먹고 제 본성을 감추고 긴 세월을 조신하게 살아온 결과, 지금은 한 남자의 아내로 살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저희 남편, 이런 제 모습을 본다면 깜짝 놀라겠죠? 하지만 가끔가다 제 속의 끼가 꿈틀거릴 때면 너무 힘듭니다. 뭐 이제 와서 못 볼 것을 본다고 한들 쉽게 빼도 박도 못할 것 같은데, 마음 놓고 한번 흔들어 봐도 될까요? 전북 전주 | 황지수 행복한 아침, 왕영은 이상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