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영은이상우의행복한아침편지]인색했던과거…때늦은후회

입력 2008-10-15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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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아이들과 함께 집 앞 공원에 나가보기로 했습니다. 이제 초등학교 5학년, 4학년인 두 녀석은 워낙 활달한 성격들이라 한시도 집안에 가만히 있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나는 인라인스케이트 탈래∼” “나는 자전거 탈래∼” 하면서 아이들은 뒤쳐진 저를 내버려두고 자기들끼리 먼저 아파트 계단을 뛰어 내려가 버렸습니다. 저는 그 뒷모습을 보면서 ‘그래 너희들이라도 있어주니까 그래도 낫다∼’하면서 혼잣말을 했답니다. 얼마 전에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저는 아버지 생각에 많이 힘들어하고 있습니다. 아버지는 시각 장애인이셨는데, 저를 무척 사랑해주셨습니다. 밤에 자다가 제가 윗목으로 굴러가서 자고 있으면 손으로 더듬어 저를 아랫목으로 끌고 내려와 꽁꽁 덮어서 재워주셨습니다. 앞은 안보이셨지만 시각장애인 특유의 감각으로 제 머리를 쫑쫑 야무지게 땋아주셨습니다. 아버지는 제가 시집갈 때도 온 동네에 소문이 날만큼 혼수를 많이 해주셨습니다. 제가 부잣집 큰아들에게 시집간다고 저희 아버지께 혼수를 많이 해달라고 계속 졸라댔습니다. 그만큼 저희 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신 어머니를 대신해 제게 많은 사랑을 주셨던 분이었습니다. 그렇게 결혼했지만 결혼 10년 만에 으리으리한 집에서 작은 월세 집으로 이사를 해야만 했습니다. 남편이 하던 사업이 실패를 했고, 그 충격으로 남편이 쓰러졌습니다. 저희 집엔 온갖 차압딱지가 가득하게 붙었습니다. 그렇게 모든 걸 잃고 나자 지난날들을 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있을 때 좀 더 아끼면서 살 걸… 있을 때 좀 더 베풀면서 살 걸… ’ 부잣집으로 시집갔다고 기고만장해서 아버지도 오빠도 잘 찾지 않았던 제가 한없이 부끄러웠습니다. 그래서 며칠 동안 아버지를 저희 집에서 모시기로 했습니다. 어느 날, 아이들과 함께 공원으로 산책을 나왔습니다. 저는 문득, 아버지께 자전거를 태워드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단 2인용 자전거를 빌리기는 했는데, 고등학교 때 친구들한테 자전거를 배운 이후로 한번도 자전거를 탄 적이 없었습니다. 과연 내가 자전거를 잘 탈 수 있을까 걱정이 많이 됐지만 그날은 왜 그랬는지 “아버지∼ 우리 자전거 한 번 타봐요∼” 하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아버지는 처음에 “난 무서워서 싫다” 하시더군요. “아버지 이 자전거는 2인용 자전거예요. 아버지는 제 뒤에 타셔서 저랑 같이 하나 둘 셋, 하나 둘 셋, 하시면서 발만 맞춰서 굴리시면 돼요” 하면서 저는 설득했습니다. 아이들도 “할아버지∼ 우리가 뒤에서 잡아 드릴게요∼ 우리가 잘 잡아 드릴 테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하면서 얼른 타보시라고 그랬습니다. 그러자 아버지께서 “그래? 그러면 한번 타볼까? 아휴. 세상에 내가 자전거를 다 타보네” 하시며 지팡이를 꼭 잡고 자전거에 오르셨습니다. 아버지도 타셨는데, 넘어지면 어쩌지? 자전거를 잡은 손이 저도 모르게 후들후들 떨렸습니다. 그렇게 첫 바퀴를 돌리는데, 처음엔 꿈틀 하면서 핸들이 돌아갔지만, 금방 중심을 잡고 앞으로 나아갈 수가 있었습니다. 아버지도 처음엔 ‘어어어어∼’ 하면서 놀라셨지만 금방 익숙해지셔서 “아이고 좋다∼ 아주 좋다∼ 내가 자전거를 다 타보네” 하며 즐거워하셨습니다. 저는 “아버지 앞으로도 저희 집 오실 적마다 자주 태워드릴게요∼ 앞으로 자주 자주 오세요∼” 하고 말씀을 드렸지만, 아버지가 자전거를 타신 건 그 날이 마지막이었습니다. 1년 뒤 위암으로 세상을 떠나고 마셨습니다. 그 때 이후로 저는 자전거만 보면 그렇게 아버지 생각이 났습니다. ‘더 많이 태워드릴 걸… 더 많이 찾아뵐 걸… 더 많이 효도할 걸…’ 자전거 굴러가는 거 볼 때마다 그런 후회가 자꾸만 밀려옵니다. 전북 남원 | 김경진 행복한 아침, 왕영은 이상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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