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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바둑은 박영훈의 완패로 끝났다. 이영구의 ‘완승’이 아닌 박영훈의 ‘완패’라 굳이 명명한 것은 그 만큼 박영훈이 맥 한 번 못 추고 무너져버린 탓이다. 박영훈의 바둑이라 보아주기 미안할 정도로 무기력한 내용이었다. 전 판에 걸쳐 단 한 차례도 우세를 점하지 못한 바둑. 본인 스스로 기억에서 지우고 싶은 바둑일 것이다. <실전> 흑5로 끼운 수가 절묘하다. 이런 수는 눈으로만 보아도 뭔가 ‘맥’스럽다. <해설1> 흑1로 치중하는 수를 두기 쉽다. 그러나 백2로 내려서면 흑은 닭 쫓던 개꼴이 난다. A와 B가 맞보기로 백이 살아있는 것이다. <실전> 백6을 두어야 하는 백의 마음이 쓰리다. 좌상귀 백은 어떻게 해 볼 수가 없는 것이다. <해설2> 백1로 단수를 쳐도 안 된다. 흑8까지 이 백은 살 수가 없다. <실전> 흑11에 이르니 바둑은 흑이 좋아도 너무 좋다. 이쯤 되면 백은 더 두어갈 마음이 사라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던질 수 없기에 고통이 가중된다. 불과 반상에 놓인 돌은 50여 수. 어찌 해 볼 수 없을 정도로 가세가 기울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집안의 장손이 스스로 집 대들보에 불을 놓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조금 더 꾸역꾸역 바둑을 두어 간다. 그러다 기회가 되면 장렬하게 산화한다. 승부사는 질 때도 승부사다워야 한다. 박영훈이 길게 한숨을 토했다. 그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녹차 한 잔을 탔다. 그리고 생각한다. 이왕 질 바둑, 가장 박영훈답게 지는 길은 어떤 것인지. 그렇게 마음을 먹고 바둑판으로 돌아오니 한결 가슴이 시원해진다. 맑은 눈으로 반상을 내려다본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승부사는 질 때도 승부사다워야 하는 것이다. 해설|김영삼 8단 1974yskim@hanmail.net 글|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