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재원의도쿄통신]바보들의천재적인이별법

입력 2008-12-12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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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들의 천재적인 이별법이었다. 2008년 일본 연예계의 키워드 중 하나인 ‘바보 신드롬’의 대표 주자, 그룹 ‘수치심’이 내년 1월 2일을 기점으로 활동을 중지한다. 지난 3일 후지TV의 연말 가요특집프로그램인 ‘FNS 가요제’를 통해 이뤄진 수치심의 활동중지 발표는 ‘왜?’라는 질문 보다 ‘잘 했어’라는 긍정을 안겨주는 이슈였다. 단물이 마르고 닳도록 유효기간을 연장하는 연예계의 상품화 법칙에서 비켜난, 이른바 시의적절한 마침표였기 때문이다. 물론 해체가 아니라 활동 중지라는 표현으로 다음을 기약하기는 했지만 현재와 같은 수치심의 맹활약을 다시 만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수치심은 올 봄 후지TV의 인기 예능프로그램 ‘퀴즈 헥사곤’의 고정 게스트 중 ‘무지의 엉뚱한 답변’을 만발한 세 명으로 결성된 바보 트리오. 올 봄 데뷔 싱글 ‘수치심’으로 톱가수 하마사키 아유미를 누르고 오리콘 월간차트 1위를 차지하는 등 꽃미남 아이들 그룹 못지않은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개인 블로그 방문자수로 기네스북에까지 오른 가미지 유스케가 현재 미니시리즈 두 편에 주인공으로 겹치기 출연하고 있는 등 세 멤버가 고루 전방위 활약을 펼치고 있다. NHK ‘홍백가합전’ 첫 출연의 영광도 얻은 수치심은 올해 ‘홍백가합전’이 고시청률 획득의 주력으로 기대하고 있는 주인공이다. 매년 첫 출연자를 단체로 집결시켜 기자회견을 여는 ‘홍백가합전’측은 이례적으로 수치심만을 위한 별도의 기자회견까지 마련했다. 이같이 펄펄 날고 있는 상태에서 이들은 활동중지를 발표했다. 발표의 형식도 유쾌하고 담백했다. 감동과 즐거움을 주는 오락형 그룹답게 이들의 산파 역을 담당한 ‘퀴즈 헥사곤’의 MC인 개그맨 시마다 신스케가 ‘FNS가요제’에 가발을 뒤집어쓴 음악프로듀서 ‘가시아스 시마다’역으로 깜짝 등장해 코믹하게 수치심의 활동 중지를 공표한 것이다. 엉겁결에 가수가 됐지만 배우로 출발한 이들은 “이제 각자의 본업에 충실하며 미래를 기약하고 싶다”는 말로 이별사를 대신했다. 이에 따라 10일 발표하는 싱글앨범 ‘겁쟁이 산타’는 이들의 마지막 음악인만큼 각별한 관심을 불러 모을 전망이다. 처음이자 마지막 출연이 될지 모르는 ‘홍백가합전’무대도 주최 측의 기대처럼 특별한 의미를 더하게 됐다. 1월 2일 마지막 방송으로 삼은 ‘퀴즈 헥사곤’신년 특집도 출발점에서 끝을 맺는 의미 있는 무대가 될 예정이다. 이벤트형으로 탄생한 그룹의 특징과 한계를 잘 아는 수치심의 아쉬울 때 떠나기는 유행 상품의 멋진 자존심을 엿보인 똑똑한 결정이었다. 도쿄 | 조재원 스포츠전문지 연예기자로 활동하다 일본 대중문화에 빠져 일본 유학에 나섰다. 우리와 가까우면서도 어떤 때는 전혀 다른 생각을 가진 일본인들을 대중문화라는 프리즘을 통해 알아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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