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영은이상우의행복한아침편지]애들아미안하다사랑한다

입력 2009-01-04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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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올해 서른일곱 살입니다. 햇살 같이 밝고, 귀여운 두 아들을 키우며 결혼해서 지금까지 꾸준히 직장여성으로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지난 해 8월, 회사에 사직서를 내고 전업주부가 됐습니다. 제게 위암이 발견돼서 지금 항암치료를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처음 발견된 건 2006년 1월이었습니다. 직장 동료들과 점심을 먹다가, 갑자기 헛구역질이 나서 병원을 갔습니다. 의사선생님께서는 병명도 안 가르쳐주고, 무조건 서울 큰 병원에 가보라고 하셨습니다. 영문도 모르고 가방하나 덩그러니 들고, 남편과 둘이서 서울로 갔습니다. 제가 위암 2기라고 했습니다. 소화가 안 된 적도 없었고, 몸이 아팠던 적도 없었습니다. 아무런 자각증세가 없었는데. 그런 판정이 내려졌습니다. 2006년 1월, 저는 싸늘한 수술대에 누워 위 전체를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습니다. 식도부터 장까지 제 소화기관은 일자가 돼 버렸습니다. 하지만 위가 없으면 다른 기관들이 소화 담당을 하기 때문에 일반식을 해도 전혀 지장은 없었습니다. 다만, 많이 먹으면 구토가 생기기 때문에 언제나 적은 양을 먹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제 몸무게는 지금 31Kg 밖에 안 됩니다. 하지만 그것 말고는 전혀 이상이 없었기 때문에 저는 평소처럼 회사 다니고, 열심히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지난 해 5월, 다시 암세포가 발견돼서 항암치료를 받게 됐습니다. 지난 11월까지 총 다섯 번의 항암치료를 받았습니다. 예전 항암치료 때와 달리 이번엔 숭덩숭덩 머리카락이 빠졌습니다. 저는 괜찮은데 아직 어린 일곱 살, 다섯 살, 두 아들이 보면 충격을 받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 아이들을 불러 말했습니다. “얘들아. 엄마가 몸이 아파서 수술도 받고, 약도 먹는 거 너희들 잘 알지? 그런데 엄마가 몸이 힘드니까 머리카락도 너무 무거운데 이거 다 밀어버려도 괜찮을까?”라고 하자 아이들이 그러라면서 고개를 끄덕끄덕 했습니다. 저는 아이들 앞에서 스님처럼 머리를 모두 밀어 버렸습니다. 둘째는 머리카락 없는 엄마 모습이 우스운지 까슬까슬한 제 머리에 손을 갖다대며 느낌이 이상하다고 깔깔깔 웃었습니다. 차라리 그 모습이 아이답고 좋았습니다. 하지만 철이 너무 일찍 든 큰애는 저를 꼭 안아주며 “엄마! 우리는 괜찮아. 엄마 아파서 그런 거니까 상관없어. 하지만 엄마 친구들은 초대하지 마. 엄마 보면 뭐라 할지도 몰라” 하면서 제 등을 토닥였습니다. 참았던 제 눈에서 눈물이 또르르 흘러내렸습니다. 우리 아들은 일곱 살답지 않게 너무 일찍 철이 들어버렸습니다. 설거지도 자기가 한다고 그러고, 엄마 아프니까 자기들이 속상하게 하면 안 된다고 동생한테 타이르기도 합니다. 동갑내기 제 남편도 예전엔 네가 잘났네, 내가 잘났네. 소리 높여 잘 싸웠는데 이제는 제가 뭐라 그러면 “알았어. 당신 하고 싶은 대로 해. 미안해” 이 말만 하고는 입을 닫아버립니다. 3년 사이 저희 집 두 남자는 부쩍 말수가 줄어들었습니다. 그걸 보는 게 솔직히 더 마음 아픕니다. 저는 제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싶습니다. 그래서 뒤에서 수군거리든 말든, 목욕탕도 혼자 다니고, 유치원 참관수업도 잘 다닙니다. 지난번에도 유치원 다도발표회에 한복 입고 오라고 해서, 가발 쓰고, 예쁘게 한복입고 다녀왔습니다. 오는 3월 큰아이 초등학교 입학식 때도 저는 예쁘게 차려입고, 기념사진도 찍고, 우리 아들 마음껏 축하해주고 올 겁니다. 제 꿈은 그저 평범하게 사는 것입니다. 남편과 우리 아이들 뒷바라지하며 평범한 가정주부로 사는 게 꿈입니다. 힘들어하지 않고, 그냥 있는 모습 그대로 살고 싶습니다. 그게 우리 가족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입니다. 저는 지금도 충분히 힘내고 있습니다. 다만 우리 가족들이 좀 더 힘을 내줬으면 하고 바랄 뿐입니다. 전북 진안 | 양정숙 행복한 아침, 왕영은 이상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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