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영은이상우의행복한아침편지]아빠따뜻하게데워진귤드세요

입력 2009-01-04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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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들어 이가 안 좋아 ‘이가 오복 중에 하나’라는 말을 정말 실감하고 있습니다. 최근 들어 찬물로 이를 닦는 것이 힘들어지고, 찬 음식도 잘못 먹으면, 고통스러울 정도로 이가 시리곤 했습니다. 그래서 정기적으로 스케일링도 받고, 비싸다는 치약도 사서 써보고 그랬습니다. 하지만 나이 때문에 이가 나빠지는 건 어떻게 해볼 수가 없었습니다. 며칠 전, 퇴근해서 집에 가는데, 노∼오란 귤이 정말 먹음직스러워 보였습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동안 제가 이 시리다고, 과일 좋아하는 아이들한테 과일 한번 사다 준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좋아할 애들 생각하며 귤을 사 갖고 집에 들어갔습니다. 저녁 식사 후, 맛있게 귤 먹는 식구들 모습을 보며 저도 흐뭇하게 보고 있는데, 8살 우리 늦둥이 딸이 제게 그랬습니다. “아빠. 왜 안 드세요? 이거 되게 맛있어요. 맛있는 귤이에요” 하기에 제가 그랬습니다. “아니야. 우리 딸 많이 먹어. 아빤 이가 시려서 차가운 거 못 먹어” 하니까 딸애가 고개를 갸웃갸웃 하며 “이상하다. 난 차가운 귤이 더 맛있던데…” 라고 했습니다. 사실 하나 먹어볼까 생각도 해봤지만, 먹지 않았습니다. 유달리 추운 날씨에 밖에 놓여 있던 귤인지라, 먹어봐야 안 좋을 것 같아서 그냥 참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저는 출근을 서두르며 아직 일어나지 않은 딸아이를 깨우러 방에 들어갔습니다. “막내야∼ 학교 갈 시간인데 왜 아직 안 일어나∼” 하면서 발을 내딛다가 뭉쳐있는 이불 속에 뭔가를 밟고 말았습니다. 물컹∼하는 게 기분이 이상했습니다. 깜짝 놀라서 이불을 들쳐봤더니, 검은 비닐봉지 속에 귤 서너 개가 들어있었습니다. 저는 화가 나서 “막내야! 귤을 먹다 남겼으면 냉장고에 넣어야지. 이게 뭐야. 다 터져서 먹지도 못 하잖아!” 하고 야단을 쳤는데, 딸애는 자다 일어나서 영문도 모르고, 그냥 제 야단을 고스란히 듣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애를 야단쳐서 그런지 그 날 하루 종일 찝찝한 기분으로 일을 하다가 평소보다 좀 일찍 퇴근을 했습니다. 그런데 딸애 방에 가보니 귤 서너 개가 또 이불 속에 들어가 있었습니다. ‘아니 이놈은 아직도 귤을 안 치웠네’ 저는 그 귤을 냉장고에 넣고 태연하게 거실에서 TV를 보고 있는데, 딸애가 갑자기 나오더니 “아빠! 이불 속에 귤. 그거 아빠가 드셨어요?” 하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막내야. 귤은 그렇게 따뜻한 곳에 두면 금방 상해서 못 먹어. 아빠가 냉장고에 넣어 놨으니까 먹고 싶으면 꺼내 먹어” 하니까 딸애가 약간 계면쩍은 얼굴로 “아빠∼ 사실은요. 아빠가 이가 시려서 차가운 귤을 못 드신다고 해서요. 따뜻하게 드리려고 이불 속에 넣어놨어요. 아빠 퇴근하면 안 시린 귤 드리려고 했는데…”하면서 시무룩해 하는 겁니다. 저는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아니 우리 늦둥이가 이렇게 컸는지 벌써 아빠 아픈 데까지 헤아려줄 만큼 벌써 이렇게 컸다니! 가슴속이 찡해졌습니다. 그리고 그 아이 행동 속에, 저희 어머니 모습도 발견했습니다. 저희 어머니는 매일 이불 속에 밥을 넣어두고, 혹시나 식을까 보물단지 숨기듯 꼭꼭 싸두셨습니다. 그러다 제가 퇴근해서 들어가면 그 밥을 상에 올리시며 “날도 추운데 고생 많이 혔다. 어여 묵어라” 하셨는데, 우리 어머니처럼 딸도 제 걱정을 해주고 있었습니다. 언제 이렇게 컸을까, 언제 이렇게 속이 깊어졌는지… 막내라서 언제나 어리광만 부리는 줄 알았습니다. 어느 순간 훌쩍 커버린 아이를 보며 참 대견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경기도 가평 | 최석환 행복한 아침, 왕영은 이상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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