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는편지]“오늘난웃다가내려왔을뿐이고”

입력 2009-01-27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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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미디 황제 이주일씨가 한창 잘나가던 1980년대엔 하루 저녁 밤무대를 돌면 웬만한 아파트 한 채 값을 벌었다고 합니다. 너무 스케줄이 많다 보니 무대에 올라가서 제대로 웃길 시간조차 없었습니다. 수지큐에 맞춰 오리 궁뎅이 춤을 추며 무대에 올랐다가 객석을 쓱 한번 훓어 보고 “콩나물 팍팍 무쳤냐?” 한마디만 하면 사람들은 배꼽을 잡고 쓰러졌습니다. “뭔가 보여준다더니 뭘 보여준다는거요?”라고 누군가 물으면 그는 “그냥 한번 와보시라니깐요, 헹∼” 이러면서 대충 넘어갔습니다. 사실 관객들은 그가 등장하기 전부터 이미 폭소를 터뜨릴 만반의 준비가 돼있었습니다. 이주일은 그 웃음보를 톡 건드려주는 걸로 충분했습니다. 요즘 TV에 나오는 새내기 개그맨들을 보면 불쌍하고 안쓰러운 마음에 숙연해집니다. 수 천번 씩 연습한 대사로 소리소리 지르고 무대를 데굴데굴 굴러다녀도 객석은 완전 시베리아 벌판입니다. 둘의 차이는 분명합니다. 신참들은 인정받고 떠야 합니다. 그래야 이름을 알리고 돈도 벌 수 있습니다. 그들에게 관객은 무서운 심판관일 뿐입니다. 반면 이주일 같은 노련한 코미디언은 그들과 함께 놀려고 합니다. 소재가 없어도 걱정 안 합니다. 관객들이 여기저기서 던지는 소재만 받아 쳐도 충분합니다. 누가 웃기느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 세상엔 나보다 웃기는 사람이 무지무지 많습니다. 그들이 마음놓고 웃길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어 주면 됩니다. 어떤 얘기든 맞장구 쳐주고 큰 소리로 웃어주세요. 이주일에게 ‘웃기는 비결’을 묻자 그가 퉁명스럽게 말했습니다. “난 오늘 웃다가 내려왔을 뿐이오.” 글쓴이 : 이 규창 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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