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커피플] J리그감바오사카입단박동혁“돈보다꿈…나만의축구펼칠것”

입력 2009-02-02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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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겐 새로운 도전이 필요했어요.” 그의 첫 마디는 ‘도전’이었다. K리그 울산 현대에서 J리그 감바 오사카로 이적하게 된 박동혁(30)은 해외 진출의 의미를 ‘꿈과 도전’이라고 했다. 결코 쉽지 않은 선택. 고려대를 졸업한 뒤 2002년 전북 현대 유니폼을 입고 프로 무대에 데뷔한 박동혁은 2006년 울산으로 옮겼고, 작년까지 총 7시즌을 보냈다. 중앙 수비수로 K리그 204경기에 출장해 21골·3도움을 기록했다. “울산에서 재계약을 위해 정말 좋은 조건을 제시했어요. 연봉도 높았고, 은퇴 후 지도자도 보장한다고 했죠. 그러나 여기서 안주하고 싶지 않았어요. 도전이랄까. 다른 환경에서 ‘박동혁식 축구’를 펼치고 싶었죠. 대신, 성공하든 실패하든 돌아올 때는 울산으로 꼭 갈 겁니다.” ○내 롤 모델은 홍명보 당최 말문이 막히는 법이 없었다. 1월 하순 일본 출국을 이틀 앞두고 스포츠동아 편집국에서 만난 박동혁은 어떤 질문에도 거침이 없었다. 그는 대학 시절부터 해외 진출을 꿈꿨다고 했다. 전북과 울산에서 뛰면서도 여러 차례 도전하고 싶다는 생각을 품었지만, 좀처럼 기회는 오지 않았다. 하지만 작년부터 긍정적인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J리그가 주도해 아시아축구연맹(AFC)이 가맹국 선수 한 명을 기존 용병 쿼터 외에 추가 보유할 수 있는 이른바, ‘3+1’ 제도를 시행키로 결정한 것이다. 감바 오사카가 그에게 러브콜을 보냈고, 주저 없이 그 길을 택했다. “아시아쿼터로 평생 품은 꿈을 펼치게 됐죠. 이젠 꿈을 이뤘으니 열심히 하는 일만 남았네요.” 사실 박동혁은 자신과 마찬가지로 전북을 떠나 오사카행을 확정한 조재진보다 입단 조건이 좋지 않다. 이적료가 15억원 가량 발생한 조재진이 연봉 32억원을 보장받는 반면, FA(자유계약선수)자격으로 팀을 옮긴 그는 기본 연봉 7억원을 포함해 각종 수당까지 약 15억원에 불과한(?) 조건에 계약했다. 더욱이 1년 단기 계약이다. 물론 올 시즌 일정의 50%만 소화해도 1년 자동 연장되지만 애초 2년 계약한 조재진과는 많이 다르다. 자존심은 상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쿨’했다. “제 능력을 잘 알아요. 더욱이 포지션이 수비수잖아요. 괜찮아요. 주전 경쟁이 대단히 치열하다고 들었어요. 오사카 구단은 모두 알아주는 명문 클럽인데 선수층이 매우 두꺼워요. 일본대표 선수들도 꽤 많이 있다고 들었어요. 그래도 불안하진 않아요. 서른 평생 해온 경쟁이잖아요. 우리나 일본이나 크게 다를 것은 없죠. 꼭 승리하고 싶어요.” 박동혁은 롤 모델로 홍명보 전 올림픽팀 코치를 주저없이 꼽았다. 이유는 간결했지만 분명했다. 은퇴한 뒤 온 국민이 ‘저 친구는 축구 선수로 좋은 자질을 갖추고 있었다’고 인정하는 선수로 남겠다는 것. 바로 홍명보가 그렇다. “한국에서 홍명보 선배를 모르면 그야말로 간첩이잖아요. 꼭 홍명보 선배처럼 되고 싶어요. 눈에 드러나지 않는 다른 느낌을 주고, 선·후배 모두에게 두루 인정받는 그런 사람이요.” ○축구 인생 8할은 자신감 “올해처럼 기분 좋은 시간도 드물어요. 프로 선수로서 여유를 찾았다고 해야 할까. 기자단 투표의 ‘베스트 일레븐’상도 받았죠. 그간 상복이 없었는데, 떠나려니 달라지네요.” 박동혁은 울산에서 스스로 한 단계 성장했다고 했다. 전북에서 4년을 보낸 그는 울산으로 이적해 3년간 뛰며 심적 여유가 생겼다고 한다. 20대 초반까지만 해도 그저 어린 나이에 열심히 뛰고, 윗사람에게만 잘 보이려 했으나 울산에 온 뒤 새로운 경쟁의 틀 속에 여유를 찾을 수 있었다. “뭐랄까. 생각하는 축구로 정의할까요? 솔직히 전 특출난 선수가 아니에요. 무수히 많은 실수를 범하고 있고, 저로 인해 팀이 진 적도 여러 번이죠. 그러나 정확한 킥이나 헤딩은 누구보다 잘할 수 있어요. 일단 경기할 때 아무리 비중이 높아도 불안하지 않아요. 겁나지도 않죠. 여유가 생기니 주변이 보였고, 시야가 넓어졌어요. 실수도 차츰 줄어들더군요.” 나름의 분석을 통해 J리그에 대한 시뮬레이션 훈련에 돌입한 박동혁. 쉬는 동안 이곳저곳 인사도 많이 다녔지만 일본어 공부는 열심히 했다. 빠른 시일에 언어를 깨쳐야 그네들의 문화와 환경에 쉽게 적응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문득, 그만의 대처 방식이 궁금해졌다. “근성이죠. 상대를 악착같이 물고 늘어져야죠. 전 지곤 못살거든요. 축구 선수는 인생의 8할이 자신감이라고 생각해요. 아, 긍정적인 마음가짐도요.” 여기서 한 가지 충격(?)적인 일화도 함께 흘러나왔다. “2006년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4강전 기억하시죠? 전북한테 져서 결승에 올라가지 못했잖아요. 그 때 전북 공격수 제칼로가 자꾸 시비를 걸더라고요. 끊임없이 한국말로 욕을 하고, 자꾸 성질을 건드렸어요. 지금은 후회하고 있는데, 솔직히 보복 행위를 했어요. 볼이 제칼로에게 향할 때 일부러 떨어져 있다가 깊숙하게 태클을 걸었어요. 물론 퇴장이죠. 지금 생각하면 한심하지만 당시엔 어쩔 수 없었어요.” 대표팀에 대한 생각은 어떨까. 허정무호가 출범한 뒤 박동혁은 단 한 번도 부름을 받지 못했다. 잠시 머뭇거리던 그가 입을 열었다. “솔직히 생각이 없다면 거짓말이죠. 주변에서도, 저도 미련을 접지 않고 있어요. 현재 위치에 만족하려고 해도 계속 마음 한 구석이 허전해요. 만약 기회가 주어지면 예전보다 훨씬 잘할 것 같아요. K리그에선 안 그런데 대표팀에 가면 종종 큰 실수를 범했어요. 지금은 달라졌다고 자신해요. (주장) 완장도 차봤고, 200경기 이상 출전하며 여유도 생겼죠. 이젠 실력으로 보답할 수 있는데….”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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