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기자가만난문화의뜰]공격과불안의몸짓,‘육식주의자들’

입력 2009-02-09 12:5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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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블 끄트머리, 순백의 의상을 걸치고 꾸역꾸역 음식을 삼키던 남자가 도로 입 밖으로 음식을 게워낸다. 목을 헹군 물마저도 거칠게 토해낸다. 지난 6,7일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공연된 장은정 무용단의 신작, ‘육식주의자들’은 첫 장면부터 관객을 긴장시킨다. 무대 위에서 씹던 음식을 퉤퉤 뱉어내는 혐오스러운 장면은 ‘육식’이라는 과격한 제목만큼 강렬하다. 무대 왼쪽 필름 스크린으로 냄새를 맡는 ‘코’와 오물거리는 ‘입술’이 계속 클로즈업되며, 남녀는 동시에 성찬을 맞이한다. 기다란 식탁은 반 시계방향으로 돌아가며, 여자는 남자의 구역질에 아랑곳하지 않고 음식을 먹고, 남자는 건들거리며 먹고 토하고를 반복한다. 둘의 식사가 끝나자 6명의 무용수들이 등장해 자로 잰 듯 딱 떨어지는 각자의 영역에서 춤을 춘다. 이들은 자기 줄을 벗어나지 않고 예민한 후각을 과시하는 양 섬세한 몸짓을 보인다. 다시 등장한 흰 옷의 남녀도 함께 고통의 행렬에 가담했다. 팔을 죽 늘어뜨리고 고통스러워하는 여자, 한숨을 쉬며 답답해하는 남자, 이들은 둘씩 뒤엉키다 다시 거리를 둔다. 결코 떨어지지 않으려 발목을 붙잡고 늘어서는 여자, 뿌리치는 남자 등 서로 밀고 밀치는 상처의 포즈가 계속된다. 뒤 쪽에서는 무심하게 전화를 받은 한 남자가 깡마른 마네킹을 뉘이기도 하고, 세우기도 하며 다량으로 마네킹들을 쌓아간다. 그 곁에서 무용수들은 춤을 춘다. ‘육식주의자들’은 타인과 선을 긋고 사는 공격 성향의 인간, 이에 불안을 느끼며 다시 조심스레 남에게 다가가는 인간들을 두루 보여주고 있었다. 지극히 공허하다. 바닥에 내팽겨진 마네킹처럼 여러 인물은 차갑고 딱딱하기 그지없었다. 아르코 예술극장의 기획공연 ‘2009 Arko Choice-기획대관 프로그램’의 첫 번째 공연 ‘육식주의자들’은 인간관계를 극명하게 냉소적으로 표현한 작품이었다. 타인을 소유하려는 인간의 욕망, 소통 불능의 불안함은 바로 ‘육식주의자들’의 춤으로 느낄 수 있었다. ‘먹고 먹히는’ 육식의 관계 속에선 아무도 삶을 만족할 수 없다. 인간의 몸은 커다란 고깃덩어리처럼 묵직하고 단순하지만 동시에 쉽게 상처받을 만큼 예민하다. 감각을 통해 타인을 알려 하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찾고 싶어 했지만, 생채기만 남을 뿐이다. ‘육식주의자들’은 관계 속에서 끝없이 소외되는 다수의 현대인을 보여줬다. 상처는 춤이 됐고, 또 한 번 인간의 무른 속성을 읽기 위한 시도가 됐다. 변인숙 기자 baram4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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