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수빈의언제나영화처럼]엽기적인그녀

입력 2009-02-10 00:00: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가끔 시간을 되돌리고 싶지 않으세요? 첫사랑을 만났을 때의 떨리는 순간, 대학에 합격했던 기쁨, 친구와 떠났던 여행, 돌아가고 싶은 순간은 무궁무진합니다. 특히 현실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 과거로 돌아가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겠죠. ‘엽기적인 그녀’가 돌풍을 일으키고 있을 때, 제 나이 스물! 그 해 역시 돌아가고 싶은 날 중 하나입니다. 취업 고민도 아직 없고, 놀기만 하면 되는 풋풋한 스무 살! 고등학생의 땟국을 벗기 시작했습니다. 태어나 처음으로 외국에 가봤고 친한 언니들과 무작정 기차를 타고 춘천 여행도 갔습니다. 또 태어나 처음으로 남학생에게서 붉은 장미 스무 송이를 받기도 했죠. 알에서 갓 깨어나 세상을 바라보는 병아리처럼 모든 것이 신기하고 낯설던 땝니다. 그 해 ‘엽기적인 그녀’를 극장에서만 세 번 봤습니다. 처음은 십년지기 친구와 두 번째는 장미꽃을 준 남학생과 세 번째는 여행 떠났던 춘천의 허름한 극장에서였습니다. 우연의 일치였죠. 영화를 여러 번 보면 처음엔 안 보이던 장면이 보인다는 거 아세요? 밝고 가볍고 튀는 로맨틱 코미디 영화는 세 번째 봤을 때 ‘그게 아니네’라는 생각이 들게 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상큼발랄하고 엽기적인 전지현에 열광할때 저는 세 번째에 만남에서 다른 면을 보았습니다. 마치 아무도 모르는 보물을 혼자 발견한 것 같은 벅찬 기쁨이었습니다. 옛사람을 떠나보내고 새로운 사람, ‘견우’를 만나기까지 여주인공은 ‘싸움’을 벌입니다. 다름 아닌 ‘시간과의 싸움’이죠. 그녀는 옛사랑이 그랬듯 장미꽃을 들고 찾아와 달라고 견우에게 말합니다. 그를 만났을 때처럼 교복을 입고 고등학생인 척하기도 하구요. 그녀가 쓰는 SF가 짬뽕된 엉터리 시나리오들은 모두 ‘시간여행’에 관한 것들이죠. 조선시대에도 갔다가 미래에도 갔다가 시간을 넘나들고 싶은 겁니다. 견우와 헤어질 때 편지를 ‘타임캡슐’에 담았던 것도 그런 소망에서였습니다. 사랑했던 사람이 살아있는 그 순간을, 여주인공은 현실 속에서 그리고 또 그렸던 겁니다. 시간을 돌릴 수 있는 전지전능한 힘을 간절하게 바라면서요. 영화 속에는 ‘시간’에 관한 많은 장치들이 숨어 있습니다. 일일이 말씀드리진 않겠습니다. 숨은그림찾기처럼 생각보다 많으니까 한 번 찾아보시면 어떨까요. 특히 마지막 대사! ‘견우야, 나 미래의 너를 만난 거 같아’가 무슨 뜻일까 곰곰이 생각해 보세요. 여주인공은 영화 속에서 진짜로 미래의 견우를 만납니다. 스리슬쩍 지나가 버렸지만. 그 영화를 본 지도 십년이 다 되어갑니다. 저도 꽤 ‘엽기적’이어서일까요. 가끔 여주인공이 생각납니다. 영화 한 편을 보고도 숨은 뜻을 파헤치던 걸 즐기던, 여유있고 순수했던 저의 스무 살로도 돌아가고 싶습니다. 어디, 타임머신 임대해주실 분 없나요? PS. 사실 ‘엽기적인 그녀’ 하나만 갖고도 책 한 권 쓸 자신이 있는데 지면상 아쉽네요.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숨은 이야기를 더 들려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가만... 누군가 그러더군요. ‘엽기적인 그녀는 용서할 수 없지만, 전지현이어서 용서되는 거라고. 여성분들 절대 따라 하지 말라!’고. 조수빈 꿈많은 KBS 아나운서. 영화 프로 진행 이후 영화를 보고 삶을 돌아보는 게 너무 좋아 끼적이기 시작함. 영화에 중독된 지금, 영화 음악 프로그램이나 영화 관련 일에 참여해보고 싶은 욕심쟁이, 우후훗!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