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영은이상우의행복한아침편지]울고불고신혼여행…“한번더?”

입력 2009-02-27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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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직장 선배 소개로 남편을 처음 만났습니다. 처음엔 이 남자와 결혼할 거라고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키도 작고, 나이도 일곱 살이나 많고 당시 스물다섯 살인 제게 남편은, 그냥 한번 만나보는 사람일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어찌나 적극적인지 결국 제 마음을 다 주고, 저희는 연애 6개월 만에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결혼식 하기 전에, 신혼여행지를 고르는데, 저희 부부 참 많이 싸웠습니다. 저희 부부가 전셋집 구하는데 돈을 보태고, 신혼여행은 좀 저렴하게 다녀오기로 했기 때문입니다. 저도 남들처럼 해외로 나가고 싶었지만, 그 마음은 꾹 참았습니다. 그래도 제주도라도 짧게 다녀오고 싶어서 그곳으로 가자고 했는데, 남편이 그렇게 형식적인 신혼여행지는 싫다며 자꾸 다른 곳에 가자고 고집을 피웠습니다. 결국 제가 울면서 신혼여행은 그래도 비행기 타고 가야하지 않겠느냐고 그러자 자기 고집을 꺾고 제주도에 동의를 했습니다. 하지만 지지리 복도 없는지 전 결국 제주도로 떠나지 못 했습니다. 결혼식 이틀 전부터 태풍이 불더니 신혼여행 떠나는 당일 날, 비행기가 결항이 되고 만 겁니다. 어쩔 수 없이 새로운 신혼여행지를 찾아야 하는데, 남편이 전북 김제에 있는 ‘망해사’에 가고 싶다고 했습니다. 남편 취미가 유명사찰 돌아다니는 건데, 남편이 신혼여행도 사찰을 돌며 하고 싶다고 하는 겁니다. 처음엔 정말 황당했습니다. 신혼여행을 무슨 사찰로 가냐며 울고불고 떼를 썼지만, 어쩌겠습니까? 딱히 다른데 가보고 싶은 것도 아니고, 남편이 꼭 사찰을 돌며 신혼여행을 하고 싶다는데 어쩔 수 없이 남편 뜻에 따라 김제로 출발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가는 사이 비바람도 잠잠해지고, 김제에 거의 왔을 때 무지개도 떠서 그 순간엔 정말 기분이 좋았습니다. 마치 하늘도 천생연분인 저희 결혼을 축하해주는 것 같아, 잠시 황홀한 기분에 빠져들기도 했답니다. 바다도 한 눈에 보이고, 근처에 전망대가 있는데, 거기 올라가면 우리나라 곡창지대인 김제평야도 한 눈에 내려다보였습니다. 막상 여행을 해보니 이런 사찰로 떠나는 신혼여행 나름대로 매력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뭐든지 즉흥적이고 준비성 없는 남편은 숙소 예약도 안 하고 무조건 김제로 온 겁니다. 자기는 당연히 김제에 호텔이 있을 줄 알았다지만, 호텔이 망해서 문을 닫았습니다. 한 시간을 헤매다 어느 모텔로 들어갔는데, 겉은 번듯한 그곳이, 안은 완전히 상상이하로 최악인 겁니다. 침대 모서리 부분의 가죽은 너덜너덜하고, 화장실은 지저분하고, 갑자기 눈물이 나서 저는 엉엉 울어버렸습니다. 세상에 저희 남편, 숙소 들어오기 전에 마트에서 산 복숭아를 혼자 깎아먹고 있는 겁니다. 그 때만큼 남편이 미웠던 적도 없었습니다. 다음 날에는 힘들고 높은 암자에만 계속 올라갔습니다. 신혼여행 후, 삭신이 쑤시고 얼얼해서, 신혼여행 기간동안 저희 부부는 특별한 일을 아무것도 못 했답니다. 지금 생각하면 웃음도 나지만, 당시엔 남편이 밉고 얄미워서 한동안 제 곁엔 오지도 못 하게 했습니다. 요즘도 가끔 결혼준비 하는 후배들이 신혼여행 어디 갔다 왔느냐고 물어보기도 하는데, 저는 별로 도움 안 될 거라며 대답을 피한답니다. 평생의 추억이 되어야할 신혼여행을 그렇게 보내다니 아마 저희처럼 이렇게 이상한 신혼여행 다녀온 사람 또 없을 겁니다. 지금도 그 생각하면 너무 아쉽고 억울한데, 남편 바꿔서라도 신혼여행 또 한번 갔다 올까 봅니다. 광주 동구|김윤혜 행복한 아침, 왕영은 이상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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