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시대, 30대남자들에게강수지·하수빈팔다

입력 2009-03-01 08: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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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원의 문화비평 소녀 아이들(idol) 그룹 ‘소녀시대’가 드디어 히트곡을 냈다. 신곡 ‘지(Gee)’는 2월 3주까지 엠넷 가요차트(MP3다운로드+스트리밍) 1위 자리를 7주 연속 차지했다. 지난해 선풍을 일으킨 ‘원더걸스’의 ‘노바디’가 5주 연속 1위였다. 그간 ‘활동은 소녀시대, 노래는 원더걸스’라 여겨지던 차다. 처음으로 활동과 노래 모두 원더걸스를 눌렀다. 그러나 그렇다고 ‘지’가 특별한 곡인 건 아니다. 그저 요즘 유행하는 ‘중독성 튠’을 구사한 정도다. 그 정도만 맞춰줬더니 터졌다. 결국 ‘지’ 성공을 노래 자체의 매력으로 보긴 힘들다는 이야기다. 그간 각개 활동으로 쌓여진 소녀시대 스타성은 그 ‘물꼬’를 찾고 있었을 뿐이다. ‘노래’에 시장 유행과 일치하는 코드를 넣자 그리로 물꼬가 터져 폭발했다 봐야한다. 경이로운 일이다. 소녀시대가 이 정도로 아이들성의 극한을 칠 수 있으리라곤 예상하기 힘들었다. 소녀시대는 어쩔 수 없이 10~30대 남성층에게 팔아야 했다. 그러나 경제 불황으로 남성층의 대중문화 상품 소비는 중단된 상태였다. 대형 그룹 멤버 한명 한명의 캐릭터를 즐기는 일본식 아이들 소비가 익숙하지도 않았다. 문제점으로 그득한 콘셉트라 여겨졌다. 물론 꼼꼼히 따져보면 답은 나온다. 현상이 먼저 일어난 뒤 뒤늦게 파악되는 판의 재해석이다. 이런 식의 문화상품들이 종종 등장하곤 한다. 시장속성을 앞질러 가는 선구격 상품이다. 먼저, 등장 즉시 묻혀버릴 수 있었던 소녀시대를 살려낸 축이 있다. 골수 일본 아이들 팬층과 파워 기획사다. 등장 즉시 반응한 건 골수 일본 아이들 팬층이다. 낯선 대형 소녀 그룹 형식에 오히려 익숙한 계층이다. ‘모닝구 무스메’, ‘AKB48’ 등 소녀시대 모델격 그룹을 소비해오면서, 그 방식을 소녀시대에도 그대로 적용했다. 한명 한명의 캐릭터를 파악하고, 그 중 튀는 캐릭터, 특징적인 캐릭터들을 구분해 한명씩 차례로 소비했다. 일본처럼 한국 역시 골수 아이들 팬층은 인터넷 활동이 활발하다. 각종 게시판 활동을 통해 대형 소녀 아이들 그룹에 큰 관심이 없던 대중의 이목을 잡아끄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이들의 캐릭터 소비 방식이 대중에게 학습돼 소비 방식의 전파가 쉽게 이뤄졌다. 물론 그렇다고 일본 취향 아이들이 바로 대중화되진 않는다. 인터넷상 화제로만 끝난 그룹도 많다. ‘소방차’ 출신 정원관이 기획한 ‘아이 써틴’이 대표적이다. 같은 모닝구 무스메 콘셉트로 주목받았지만, 그걸로 끝났다. 론칭한 뒤 제대로 활동조차 못해 본 ‘키로츠’도 마찬가지다. 여기서 힘을 발휘한 것이 대형 기획사 파워다. 가능한 많은 프로그램에 어떻게 해서든 멤버들을 밀어 넣어 인지도 확대를 꾀했다. 멤버 윤아의 드라마 진출은 물론이고, 아침 TV드라마에까지 게스트격으로 출연했다. 라디오 방송, 케이블TV 콘셉트 다큐, 버라이어티 쇼 패널까지 안 들어가는 분야가 없었다. 이렇게 되면 인터넷에서 만들어진 ‘게시판 화제’가 그 자리에서 끝나질 않는다. 화제에서 노출로 라인이 형성되면 실질적 대중 인기로 이어지기 쉽다. 아이 써틴, 키로츠 등과의 명암도 여기서 갈라졌다. 이들의 대중 노출도는 소녀시대에 비해 10분의 1도 안될 만큼 떨어졌다. 여기까지가 인지도, 인기도 확보의 단순 경로다. 사실 이 부분은 소녀시대 론칭 당시에도 예측되던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시장이었다. 경로건 뭐건 시장이 확보되지 않으면 판로가 보장될 수 없다. 당시 파악된 시장 상황은 단순 공식이었다. 10~30대 남성층에 있어, 10대는 부모세대의 경제 불황 여파, 20대는 극심한 취업난에 빠져 대중문화 상품 소비욕이 둔화됐다. 30대는 이미 결혼해 가정을 이룬 세대여서 대중문화 상품을 향유할 환경적 여건이 부족했다. 여기서 잔류된 계층은 이른바 ‘고급문화소비자’였다. 이들은 예술영화, 미술, 공연 등으로 퍼져 얇은 시장구조를 인공호흡시켰다. 아이들 상품을 소비할 만한 성향은 어디서도 나오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왔다’는 건 현 상황을 재해석해볼 필요를 낳는다. 일단 20대 남성층 성향을 다시 생각해볼 수 있다. 20대 남성층은 여전히 대중문화 상품 소비에 있어 소극적이다. 그러나 패션 트렌드 소비에까지 둔감하진 않다.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패션 트렌드에는 민감해지고 있다. 그리고 현재 핸드폰 벨소리는 자신을 나타내는 가장 값싼 패션 도구로 재등장한 상태다. 1만 원이 넘는 아이들 그룹 음반은 팬시격으로 여성층이 소비하지만, 몇 백원 짜리 핸드폰 벨소리는 20대 남성층도 충분히 소비할 의향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소녀시대는 여러 가지 면에서 트렌디성의 극단??쳤다. 그래서 터졌다. 30대 남성층 변화는 보다 뚜렷하다. 사회 분위기 전환과 경제 불황 여파로 결혼 연령이 한참 뒤로 밀려났다. 독신 남성도 늘고 있다. 10여 년 전에 비해 상대적으로 대중문화 소비에 가까운 계층으로 거듭났다. 물론 그렇다고 고급문화 향유욕이 생긴 것은 아니다. 지친 현실인 것은 마찬가지고, 가볍게 기분 전환할 만한 라이트 아이템이 필요했다. 유사연애 속성을 활용한 소녀 아이들 그룹 소비로 이어지기 쉬운 여건이 마련됐다. 한편 소녀시대에 대한 30대 남성층의 열광은 또 다른 식으로 생각해볼 수 있다. 갑자기 일본풍 오타쿠 정서가 생긴 건 아니다. 이들에게 소녀시대는 ‘새로운 콘셉트’가 아니라, 역으로, ‘노스탤지어’를 자극하는 콘셉트로 다가왔을 수 있다. 이들의 초중고 시절 반짝했던 일본풍 아이들의 추억이 되돌아온 형태다. 한국의 일본풍 소녀 아이들 붐은 1990년 강수지로 시작됐다. ‘보랏빛 향기’와 함께 일본 쇼와 아이들 콘셉트로 등장, 청소년들로부터 열광적인 반응을 얻어냈다. 곧 하수빈도 등장했다. 하수빈은 강수지보다 더 철저하게 일본 소녀 아이들풍을 재연했다. 프릴 의상을 입고 극단적인 만화 속 소녀를 연출했다. 이 열풍은 곧 가라앉았다. 1992년 서태지와 아이들 등장으로 대중음악계 지형도가 크게 달라졌다. 실력파 뮤지션들의 시대가 됐다. 하수빈은 곧 은퇴했고, 강수지도 원숙한 여성미의 솔로 보컬로 이미지를 다시 잡아 발라드곡으로 승부했다. 그러나 2,3년 사이 짧은 기간 동안 강수지와 하수빈이 남긴 소녀 아이들 이미지는 당시 사춘기를 맞은 초중고생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아직까지도 하수빈이 30대에서 회자되는 이유다. 1990년대 후반 S.E.S, 핑클 등이 등장하긴 했으나, 이들은 사실상 일본 소녀 아이들 그룹과 미국 틴 팝 아이들의 중간 형태로 등장했다. 딱히 노스탤지어를 부를만한 건 못 됐다. 그렇게 세월이 돌고 돌아 이들이 30대 초반~후반에 이르렀을 때, 자신들 노스탤지어에 꼭 들어맞는 소녀시대가 등장한 셈이다. ‘노스탤지어 시장’을 뒷받침해 줄만한 사회적 여건이 마련되니 반응이 곧바로 나왔다. 소녀시대 성공의 중요성은 바로 여기서 비롯된다. 30대 남성층 시장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잘 보이지는 않지만 있다. 그 미묘한 성향 탓에 발견이 어려웠다. 이들이 반응하는 것은 새롭고 독창적이거나 깊이 있는 고급상품이 아니다. 가볍고 단순하며 키치적인, 그러나 ‘경제 호황기 노스탤지어’를 일정부분이나마 반영하는 상품이다. 결국 대중문화 시장은 20~30대 여성층이 지배한다는 통설 하에 그리로만 몰려갈 일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30대 남성층 전략도 생각해봐야 한다. 대중문화 시장에 ‘사화산’ 계층이란 없다. 장년층 남성이건, 10세 이하 아동이건 간에, 모두 ‘휴화산’일 뿐이다. 여기에 불을 지펴 활화산으로 만들 수 있어야 한다. 각 계층의 미묘한 특성과 요구를 꼼꼼히 재분석해볼 필요가 있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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