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에세이]극적소재실제로…영화를보는듯한무서운현실

입력 2009-03-25 00:00: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탤런트 고 장자연이 남긴 몇 장의 문건이 세상을 들썩이게 하고 있습니다. 믿기 힘든 일들이 생전에 벌어졌고 장자연은 이를 문건에 기록했음을, 또 거기에 몇몇 유력 인사들의 이름이 담겨 있음을 알게 됐습니다. 그에 대한 놀라움과 충격은 이제 거대한 루머의 한 가지가 되어 세상을 떠돌고 있습니다. 성상납과 술자리 접대를 강요받았고 몇몇 인사들이 연루됐다는 이야기와 그 실체를 파헤쳐가는 경찰의 수사와 언론 보도는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착각마저 불러옵니다. 세상의 모든 문화예술 작품들은 현실을 반영하게 마련입니다. 현실의 땅 위에 발딛고 선 숱한 예술가들이 자신의 삶과 그를 둘러싼 제반의 환경과 조건에 무심할 수 없기 때문이지요. 영화 역시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요즘 현실이 영화보다 더 극적이라는 생각을 버릴 수 없습니다. 영화 속에나 등장할 법한 일들이 어느새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음을 미처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살펴보면 잔인한 살인마에게 무참하게 희생된 부녀자의 이야기, 한 순간의 불장난이 인터넷으로 전파돼 일으킨 사회적 파문, 뒷거래 기록으로 남은 ‘리스트’의 흉흉함 등은 숱한 영화의 소재가 된 지 오래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그런 현실을 발을 동동 구르며, 혹은 호기심으로 잠시 지켜봤을 뿐 그리 오랜 시간이 흐르지 않아 기억의 흔적을 말끔히 지워버리는 건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나중에 그런 현실을 담은 영화를 보고서야 ‘아, 그런 일이 있었지’ 떠올려 볼 뿐입니다. 또 그렇게 지켜보거나 기억의 흔적을 되새겨보는 것만도 다행스러운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영화보다 더 잔혹한 현실을 발견할 때 그리고 그 공포스러운 현실의 참혹한 상황이 어떤 영화 속 이야기보다 더한 것임을 알아차렸을 때 느끼는 혼돈은 어찌해야 할까요.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 감독은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고 말했지만 혹여 우리는 거기에 더해 ‘현실은 영화를 잠식’하는 시대를 살고 있는 게 아닐까요. 윤여수 기자 tadada@donga.com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