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은 끝났지만 아직도 김인식 감독은 한화 감독이 아닌 대표팀 감독 신분 같았다. 29일 히어로즈전에 앞서 김 감독은 휴대폰을 보여줬다. “어제 하도 피곤해서 저녁 7시 반부터 잤는데 아침 7시에 일어나보니 55통의 부재중전화가 찍혀있더라”고 했다. 그중엔 이승엽 박찬호 SK 김성근 감독의 전화도 있었다. 29일까지도 감독석에 앉을 겨를조차 없었다. 담당기자 인터뷰는 오전11시부터 1시간 가량 열렸는데 김 감독은 캐주얼 차림으로 지친 기색 없이 WBC를 회고했다. “천만다행이고, 재미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야구로 제일 높은 데까지 올라가봤다”라고 여한이 없는 듯 돌이켰다. 인터뷰 내내 김 감독이 거듭 강조한 준우승 비결은 역시 팀워크였다. 일례로 이범호는 하와이에서 김 감독이 “네가 탈락할 수 있다”란 언질을 접하자 “저는 이미 병역혜택도 받았으니 (박)기혁이를 뽑아 달라”고 말했단다. 또 단 1타자도 상대하지 않고도 끝까지 남은 손민한 미스터리에 관해서도 “롯데에서 하루 27개 이상 안 던졌다고 했다. 그러다 갑자기 피치를 올리려니까 잘 안된 듯하다. 데려올 투수도 없고, 시차적응도 있어서 바꾸지 않았다. 아시아 라운드 마치면 올라올 줄 알았고, 되도록 같이 가려 마음먹었다”고 설명했다. 김 감독이 WBC 최고 수훈갑으로 꼽은 선수는 정현욱이었다. 요약하면 ‘희생정신’이 WBC 대표팀의 엔진이었다. 그러나 희생정신은 자발적으로 끌어낸 것이지 감독이 강요해서 될 일이 아니었다. 김 감독은 팀 미팅은 딱 3번했다. 처음 모였을 때, 결승전 끝나고 헤어질 때, 그리고 일본전 콜드게임 패배 직후. 첫 미팅 땐 “좋아서 했던 야구로 태극마크까지 달았으니 여러분은 가장 성공한 야구선수다. 이왕 좋아서 했으니 웃으면서 헤어지자”고 했다. 결승전 직후엔 “처음 만났을 때 약속 지켜줘서 고맙다. 박수치고 헤어지자”고 선수들을 위로했다. 막상 자신은 호텔방에 돌아오니 이치로가 천장에 어른거려 잠을 이룰 수 없었지만…. 김 감독은 봉중근 윤석민 김태균 정현욱에 관해선 “WBC를 통해 미국, 일본 어느 팀에 가도 주전급으로 뛸 수 있는 실력을 검증받았다”고 평했다. 그러나 진정한 한국의 저력은 팀으로 뭉쳐 단기전을 치를 줄 아는 능력이라고 단언했다. ‘전력이 달린다고 꼭 지는 법은 없다’는 승부의 진리를 WBC에서 세계적으로 증명한 김 감독이다. 대전|김영준 기자 gatzb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