겹치기일정조율끝내실패
연간 50여개 안팎의 대회를 주최하는 미 PGA 투어에는 일명 ‘B급’ 대회라는 게 존재한다. 상금이 큰 대회나 메이저대회가 열리는 기간에 같이 열리는 대회를 말한다.

이 대회에는 메이저대회 시드를 받지 못한 선수들이 주로 참가한다.

이번 주말에도 2개의 PGA투어가 열린다. WGC 브리지스톤 인비테이셔널(총상금 850만 달러)과 레전드 리노 타흐오픈(총상금 300만 달러)이 6일부터(한국시간) 시작한다. 타이거 우즈 등 톱스타들은 상금이 큰 브리지스톤 인비테이셔널에 출전하고, 초청을 받지 못한 나머지 선수들이 리노 타흐오픈에 출전한다. 대회가 많다보니 생긴 현상이다.

1년에 고작해야 20개 안팎의 대회가 열리는 국내에서 비슷한 현상이 빚어질 전망이어서 의문점을 낳고 있다. 일정이 겹칠 만큼 대회가 많은 것도 아닌데 왜 이런 문제가 발생했을까. 발단은 이렇다.

올 초 한국프로골프협회(KPGA)는 시즌 일정을 발표했다. 이때 KEB 인비테이셔널 한중투어 2차전을 9월 10일로 확정했다. 그런데 시즌 중 대한골프협회(KGA)와 타이틀 스폰서인 코오롱에서 갑자기 코오롱-하나은행 한국오픈 대회 일정을 같은 날로 잡았다. 본래 10월 15일에서 한달 여 앞으로 일정을 당겼다. 그러면서 문제가 심각해졌다. 양쪽의 타이틀스폰서인 외환은행과 코오롱은 일정 조율을 위해 협상을 벌였지만 합의점을 찾아내지 못했다. 양 협회도 마찬가지다. 3일 KEB 인비테이셔널 조직위원회는 “대회 일정 변경은 절대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국오픈의 타이틀 스폰서인 코오롱의 일정 조정 요구가 있었지만 “불가능하다”는 뜻을 공식화했다. “방송중계와 골프장, 협찬사 등을 모두 확정지은 상태에서 일정을 변경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며 일정변경 불가를 확정지었다. 대회 개최일까지 40일도 남지 않았다. 따라서 수일 내에 결말을 내지 못하면 어느 한쪽은 파행으로 치를 수밖에 없다. 국내투어는 PGA처럼 선수가 많은 것도 아니어서 한쪽으로 몰릴 경우 다른 한쪽은 대회 개최가 불가능하다.

이제 방법은 한 가지다. 대회가 없는 기간으로 변경하면 된다. 하지만 대회를 연기할 경우 한국오픈의 출혈이 커진다. 타이틀 스폰서인 코오롱에서는 매년 해외 스타들을 초청해 인기몰이에 성공했다. 올해도 한국계 대니 리, 이시카와 료(일본), 로리 맥길로이(아일랜드) 등 10대 스타들을 초청해 둔 상태다. 따라서 일정을 변경하면 이들 중 일부가 대회에 출전하지 못하게 된다. 성대한 대회를 계획했던 코오롱으로서는 아쉬울 수밖에 없다.

코오롱 스포츠마케팅팀 강위수 부장은 “KEB 측에 최종 입장을 통보해달라고 전달했다. 나머지는 아직까지 확정되지 않았다. 수일 내에 최종 입장을 밝힐 예정이다. 10월로 대회를 연기하는 것도 쉽지 않다. 10월 30일부터 LPGA 하나은행-코오롱 챔피언십을 치를 예정이어서 동시에 남녀 대회를 개최하는 것도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보이지 않는 자존심 대결도 문제다. 바로 타이틀 스폰서다. KEB 인비테이셔널은 외환은행이, 한국오픈은 코오롱과 함께 하나은행이 공동 타이틀 스폰서를 맡고 있다. 외환은행과 하나은행간 동종업계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가 됐다. 양보할 수 없는 또 다른 이유다. 사태가 해결되지 않으면서 대회에 참가하는 선수들의 입장도 난처하다. 어느 한쪽을 선택해야 하기 때문이다. 상금을 고려하면 한국오픈(총상금 10억원)으로 구미가 당기고, 소속 단체를 따지자면 KEB 인비테이셔널(총상금 4억원)에 출전해야 할 처지다.

주영로 기자 na1872@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