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필드선 이런일이…] 우승 족집게…웃기는 자장면

입력 2009-12-26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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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미, 한국오픈 우승 문턱서 3위 “경기 전날 불어터진 자장면 먹은 탓”
신용진, 자장면값 10만원 수표 ‘선뜻’ 탁자 위에 있던 돈 바람 타고 사라져
“자장면 먹으면 우승할 것 같아요.”

지난 5월, 경북 경주 디아너스 골프장에서의 일이다. 이보미는 대회를 앞두고 클럽 점검을 위해 투어밴을 찾았다.

투어밴은 대회 때 선수들에게 클럽 점검을 실시해주는 이동식 피팅트럭이다. 대회장 주차장 한 쪽에 보이는 큰 트럭이 바로 투어밴이다.

한국여자오픈이 열리기 전날. 이보미는 마지막으로 클럽을 점검 받기 위해 투어밴을 찾았다. 클럽의 수리가 끝나기를 기다리던 이보미는 살살 배가 고파왔다.

“자장면 한 그릇 먹으면 우승할 것 같은데, 자장면 좀 시켜주세요.”

“그래, 우승할 것 같다는데 한 그릇 시켜줘야지.”

이보미의 간절한 부탁에 투어밴 담당자는 주저없이 중국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얼마 후 자장면이 도착했다. 이보미는 잔뜩 기대를 걸고 맛있게 먹을 준비를 하고 테이블에 앉았다. 그런데 골프장까지 배달 온 탓인지 이미 자장면은 불대로 다 불어 있었다.

“에이, 너무 불어서 우승 못하겠네. 아쉽지만 이거라도 먹을게요.”

이보미의 한마디는 왠지 모르게 그냥 흘러 보낼 수 없었다. 이상한 기운이 맴돌았다.

아니나 다를까. 대회가 시작되자 이보미는 펄펄 날았다.

1라운드를 7위로 끝내며 상쾌하게 출발한 이보미는 2라운드에서 단독 1위로 뛰어올라 생애 첫 우승을 눈앞에 뒀다. 2위 김보경과는 3타 차까지 벌어져 우승 가능성이 높았다.

운명의 마지막 날. 다 불어 터진 자장면처럼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공동 5위에 있던 서희경이 신들린 샷을 터뜨리면서 이보미를 추격해왔다.

설마 했던 예상은 그대로 맞아 떨어졌다. 서희경이 6타를 줄이면서 우승을 차지했고, 이보미는 2타를 잃어 3위로 내려앉았다.

“그날, 제대로 된 자장면만 먹었더라도 우승은 이보미의 차지였을 텐데….”

투어밴 담당자 L씨는 지금도 자장면을 보면 그날의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자장면에 얽힌 사연은 또 있다.

한 달 뒤, 경기 용인 아시아나 골프장에서 투어밴 담당자들끼리 점심 식사를 하기 위해 자장면을 시켰다.

이때 문을 열고 신용진 프로가 드라이버를 들고 안으로 들어왔다. 식사를 하려고 준비 중이던 담당자들에게 일을 시키기 미안했던 신용진은 10만 원짜리 수표를 꺼내 테이블에 놓았다.

“만날 일만 시켜서 미안한데, 이걸로 계산해요.”

“감사합니다. 잘 먹겠습니다.”

그리고는 신용진의 드라이버를 말끔하게 수리해 전달해줬다.

잠시 후, 대형사고가 터졌다. 자장면 값을 지불하려고 테이블 위에 놓아두었던 수표가 바람을 타고 허공을 날더니, 골프장 주차장 밖 낭떠러지로 떨어졌다.

“야! 신프로님께는 비밀로 하고 다음에 오시면 맛있게 먹었다고 얘기해라. 알았지.”

돈을 잃어버린 사실에 대해 신용진은 아직도 모르고 있다.

주영로 기자 na1872@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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