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행운아였다. 열 살 때였던 1986년부터 우리나라 축구대표팀이 월드컵에서 뛰는 모습을 지금까지 무려 24년 동안 계속해서 지켜볼 수 있었으니 엄청난 행운아다. 물론 위기도 있었지만, 1998프랑스월드컵 결승전을 입영 당일 새벽에 보고 군대에 갈 수도 있었으니 그것 또한 행운이었다.
내가 아직까지도 생생히 기억할 수 있는 월드컵은 미국에서 열렸던 1994년 대회였다. 마침 월드와이드웹(WWW)이 인터넷의 대표적인 서비스로 떠오르고 있던 그 때, 월드컵은 사상 처음으로 웹사이트를 갖게 됐다.
EDS, 스프린트, 썬 마이크로시스템즈 등 미국 IT 기업들이 만들었던 worldcup.com은 지금 기준으로 보면 조악하기 이를 데 없지만, 당시로선 획기적인 첫 걸음이었다. 강아지가 오버헤드킥을 하는 애니메이션을 내세운 홈페이지가 뭐가 그리 대단했든지, 마스코트 ‘스트라이커’가 재롱을 부리는 모습을 신기하게 바라봤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멀티미디어 기능은 부실했다.
경기 하이라이트가 사진으로 제공되는 게 전부였고, 월드컵 주제가였던 ‘글로리랜드’를 잠깐 들어볼 수 있는 정도였다. 그것도 당시 일반적으로 사용되던 모뎀 접속으로는 감히 접근하기 어려운 서비스였다. 느린 속도도 문제였지만 엄청난 전화비를 감당할 수 없었으니까. 글로리랜드 앨범에 수록된 스콜피언스와 독일대표팀 합창곡 ‘No Pain, No Gain’의 불협화음보다 더 고통스러웠던 건 밤마다 “기계 꺼라”라고 말씀하시던 어머니의 차가운 목소리였다.
월드컵이 제대로 된 웹사이트를 갖추기 시작한 건 4년 뒤인 프랑스 대회부터였다. 단순한 텍스트와 투박한 이미지에만 의존했던 기존 사이트와는 달리 화려한 그래픽과 방대한 데이터로 무장한 france98.com은 한 마디로 말해 신세계였다. 참가국 수가 24개국에서 32개국으로 늘어나서 그 만큼 외워야 할 선수들도 많아졌지만, 전체 선수 명단을 파일로 다운로드해서 출력할 수 있었기 때문에 문제는 없었다.
2002년 월드컵 웹사이트는 공식 파트너 야후 덕분에 괄목할 만한 성장을 하게 됐다. 그보다 한 해 전 국제축구연맹(FIFA) 내부에 ‘뉴 미디어’란 부서가 신설됐고, 곧이어 fifaworldcup.com이 첫 선을 보였다.
웹사이트의 모든 내용이 한국어를 포함한 7개 국어로 제공된 가운데, FIFA는 전 경기를 실시간으로 문자 중계하는 ‘매치캐스트’를 제공했고, 야후는 경기 후 하이라이트 동영상을 유료로 서비스했다. 한국대표팀의 선전에 힘입어 웹사이트 방문자수에서도 한국어 채널이 영어판에 이어 2위에 오르는 성공을 거뒀다.
독일월드컵 공식 웹사이트는 4년 전보다 두 배 이상 많은 42억 페이지뷰를 기록했고 처음으로 무료 공개된 경기 하이라이트 동영상도 조회수 1억2500만회를 돌파하는 등 대성공을 거뒀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내가 담당했던 한국어판이 부진을 면치 못했기 때문에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스위스전 참패 이후 ‘석연치 않은 판정’에 항의하기 위해 몰려든 열혈 네티즌 덕분에 꼴찌는 면했던 건 그나마 다행이었다.
이번 남아공월드컵은 FIFA에서 직접 웹사이트를 운영하는 첫 번째 대회다. 작년에 FIFA 월드컵 섹션이 문을 열었고, 지난 대회에 이어 모바일 포털도 다시 오픈할 예정이다. 이번에는 어떤 기술과 서비스로 전 세계 축구팬들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해줄지 궁금하지만, 무엇보다도 가슴 설레는 건, 언제 어디서 어떻게든 우리는 월드컵을 보게 될 거라는 사실이다.
정훈채
FIFA.COM 에디터
2002 월드컵 때 서울월드컵 경기장 관중안내를 맡으면서 시작된 축구와의 인연.
이후 인터넷에서 축구기사를 쓰며 축구를 종교처럼 믿고 있다.
국제축구의 흐름을 꿰뚫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