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태하 장군의 넘치는 여유. 모델에서 연기자로 변신한 지 10년째. 오지호는 KBS 2TV 드라마 ‘추노’를 통해 드디어 ‘스타’가 아닌 ‘배우’로 인정받고 있다. 훨씬 여유로워진 표정은 이런 심리적인 안정감 때문이 아닐까.
□ ‘추노’ 이 남자가 사는 법
소문 그대로였다. 쾌활하기로 유명한 오지호와의 인터뷰는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어느 촬영장에서나 ‘분위기 메이커’로 통하는 그는 상대를 편하게 해주는 특별한 재주가
있었다.역사와 추격전을 접목한 독특한 스토리로 인기를 끄는 KBS 2TV 수목드라마 ‘추노’ (극본 천성일·연출 곽정환)의 ‘송태하 장군’ 오지호를 삼청동의 한옥 찻집에서 만났다. 찻집에 있던 손님들이 그를 보고 휴대전화를 꺼내 사진을 찍으러 몰려들자, 오지호는 그들에게 다시 한번 사람 좋은 웃음을 건넸다.
요즘엔 지고지순한 청순녀보다
단발머리 커리어우먼에 더 눈길 가요
라이벌은 장혁? 동갑 절친이에요
모델 출신에서 연기를 시작한지 올해로 10년째. 오지호는 ‘추노’를 통해 비로소 배우로 주목받고 있다. 지난해 ‘내조의 여왕’이 성공하고 후속작인 ‘추노’까지 시청률 30%%를 돌파하면서 그를 따라다니던 ‘징크스’도 깨졌다.
“로맨틱 코미디 9년 만에 드디어 남자의 옷을 입었다”며 환하게 웃던 오지호는 “제 단점을 알고 있었다”는 말로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 배우 오지호의 단점이란.
“발음 논란? 솔직히 심각하게 걱정했어요. 연기력이나 발음 논란이 몇 번 있었잖아요. 사극은 처음이라 더 했죠. 송태하는 무게를 잡는 남자고, 대사도 감정의 변화 없이 한 톤을 유지해야 하죠. 얼굴 근육도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면서 미세한 감정을 표현해야 하니, 난감했죠.”
- 주로 로맨틱 코미디만 했기 때문에 사극이 더 낯설었던 건 아닐까요.
“‘추노’ 곽정환 PD로부터 ‘로맨틱 습관을 버리라’는 지적을 여러 번 받았죠. 9년 가까이 해서 저도 모르는 눈빛이나 말투가 배어 있었어요. 그런 잔버릇을 없애는 것도 숙제였죠. 2000년 영화 ‘미인’, 2001년 ‘아이 러브 유’를 끝내고 정적인 인물을 여러 번 했는데 그 때마다 (연기)질타를 받았어요. 가장 잘 하는 것이 뭘까 고민하다 2004년 드라마 ‘두 번째 프러포즈’가 인기를 끌면서 로맨틱 코미디로 굳어진 거죠.”
- 송태하는 그동안 연기한 인물 중 가장 남자다운 캐릭터인 것 같다.
“남자가 봐도 액션과 몸은 정말 멋져요. 하하. 저처럼 현대적인 외모에 과연 상투가 어울릴까, 수염은 기를 수 있을까, 근육은 어떻게 만들까…. 외모에 대한 고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죠. 처음엔 콧수염을 붙였는데 어색해서 그냥 제 수염을 길렀어요. 다행히 직모인데다 숱도 많아요. 잘 어울리죠? 송태하가 매력적인데 진짜 콧수염이 일조를 한거죠.”
(오지호는 ‘추노’가 끝나도 당분간 콧수염을 기를 생각이라고 했다. 1월 초 모델을 맡은 정장 광고를 위해 잠시 콧수염을 모두 깎았을 때를 떠올리며 “발가벗고 사람들 앞에 선 기분이었다”고 말할 정도로 ‘수염 예찬’을 펼쳤다.)
- 겨울 장면이 시작되면서 남자배우들의 노출 장면이 없어져 아쉬워하는 시청자가 많아요.
“걱정하실 거 없습니다. 잊을만 하면 한 번씩 나옵니다. 하하. 저도 방심하고 있었는데 대본에 느닷없이 상반신 노출 장면이 등장해 놀랄 때가 많아요. 며칠 전에 촬영한 (장)혁이와 저의 일 대 일 액션 장면 때는 대본을 받고 놀라서 곧바로 액션 스쿨에서 몸을 다듬고 연습했죠. 15회에 나오는데 기대해도 좋습니다. 오랜만에 근육질 상체를 보시게 될 거예요.”
- 또 다른 주인공 장혁과는 동갑 친구죠. 솔직히 라이벌 의식은 전혀 없는지.
“전혀. 연기대상 시상식에서 혁이와 함께 ‘베스트 커플상’을 노리고 있어요.(웃음) 동갑이니까 제가 원하는 걸 솔직하게 요구할 수 있고 혁이도 마찬가지에요. 사실 연기를 할 때 상대에게 섣불리 요구를 하기 어려워요. 저는 혁이의 진지한 의견을 모두 받아주고, 또 제가 원하는 걸 요구하죠. 라이벌 의식이 잠깐 들 때는 깊은 산 속까지 운동 기구를 짊어지고 온 혁이의 모습을 볼 때? 정말 독하게 운동해요.”
오지호는 장혁을 “연기와 절권도를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고 불렀다. 그에게 준비된 배우는 어떤 상황에서든 화면에서 빛이 난다는 걸 알게 해준 사람이 장혁이다. 그래서 오지호는 ‘추노’가 끝나면 절권도 도장에 등록해 본격적으로 무술을 배울 생각이다. ‘친구 따라 강남’가는 셈이다. 상대와 금방 친해지고 그 친숙함으로 상대 배우와 시너지를 내는 건 오지호가 갖고 있는 남다른 능력이다.
- 함께 출연한 상대 배우들이 모두 스타덤에 올라 ‘퀸(킹) 메이커’라는 별명도 있다.
(‘환상의 커플’ 한예슬, ‘내조의 여왕’ 김남주와 ‘추노’ 장혁까지 오지호와 호흡을 맞춘 뒤 인기를 얻거나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
“일부러 한 건 아니에요. 10년 전 연기를 처음 배울 때 선생님이 ‘남을 살려줘야 나도 산다’라고 했어요.. 그 말 그대로 따랐죠. ‘호흡’이란 단어를 늘 생각하죠. 뒤돌아보면 제가 연기를 못했을 때, 즉 시청자들에게 욕을 먹은 것은 상대 배우의 대사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을 때에요.”
- 여성 시청자를 위해 솔직한 답변 부탁한다. ‘추노’의 두 여자, 혜원(이다해)와 설화(김하은) 중 이상형은 누구인가.
“예전에는 혜원 같은 여자였어요. 지고지순하고 청순하잖아요.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바뀌었어요. 지금은 전문성을 가진 여자가 좋아요. 단발머리도 이상형 조건에 추가됐어요. 더 솔직히 말하면 사실 결혼에 대한 생각이 전혀 없어요. 그런데 집안의 장남이라 책임감도 쉽게 져 버릴 수 없어요. 이 딜레마, 어떡하죠? 하하.”
이해리 기자 gofl1024@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