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아에 의한, 연아를 위한, 연아의 Show
장내 아나운서는 선수가 한 명씩 등장할 때마다 세심하게 준비한 설명을 덧붙이곤 했다. 아사다 마오는 ‘트리플 악셀의 여왕’, 스테판 랑비엘은 ‘스핀이 세상에서 가장 빠른 사나이’라고 소개했다. 하지만 김연아(20·고려대)의 차례가 오자 그는 그저 이렇게 외쳤다. “여기 ‘김·연·아’가 있습니다.”
더 이상 그 어떤 수식어가 필요없는 올림픽 챔피언. 물빛 드레스를 입은 김연아가 눈부신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얼음 위로 스르르 미끄러져 들어왔다. 28일(한국시간) 퍼시픽 콜리세움에서 열린 2010밴쿠버동계올림픽 피겨스케이팅 갈라쇼. 김연아가 바로 이 순간을 위해 준비한 새 갈라 프로그램 ‘타이스의 명상곡’을 공개하는 자리였다.
전광판에는 김연아가 프리스케이팅 연기를 끝낸 뒤 울음을 터뜨리는 모습과 역대 최고점(228.56점)을 확인한 뒤 환호하는 표정, 시상대에서 금메달을 목에 거는 환희의 순간들이 방영됐다. 그리고 쏟아진 1만5000여 관중의 박수 소리. 김연아는 “나를 이 자리에 있게 해준 모든 분들께 감사하는 의미를 담은 안무”라고 했다.
이틀 전 평생의 꿈이었던 올림픽 금메달을 목에 걸었던 그녀다. 연기 하나하나에 진심을 담은 듯 했다. 부드러운 몸짓으로 빙판을 가로지른 그녀의 첫 점프(트리플 러츠)는 세 바퀴가 아닌 한 바퀴였지만, 누구도 개의치 않았다. 상체를 천장으로 향한 채 회전하는 ‘유나 스핀’으로 관객을 황홀경에 빠뜨렸고, 허리를 뒤로 깊게 꺾고 활주하는 ‘이나바우어’로 얼음판 한 가운데를 가로지를 때는 저절로 박수가 터져 나왔다.
경기 때 이미 진가를 확인한 두 번의 점프(더블 악셀과 트리플 살코)는 여전히 명불허전. 섬세한 바이올린 선율 속에 유연하게 움직이던 그녀는 손끝으로 여왕의 벅찬 감정과 우아한 자태를 표현해냈다. 김연아가 양 손을 하늘로 뻗은 채 한 바퀴 회전하며 연기를 끝내자 우레와 같은 함성이 쏟아진 것은 물론이다. 여왕의 대관식을 자축하는 3분은 그렇게 끝났다.
김연아는 “여기까지 오는데 도와주신 분들이 참 많다. 그 분들을 향한 내 마음을 담아 연기했다”면서 “오히려 경기 때보다 더 긴장한 탓인지 점프에서 실수한 것 같다”고 멋쩍게 웃었다. 또 “안무가인 데이비드 윌슨이 오랫동안 심혈을 기울여서 구성한 안무였다. 평소보다 이나바우어를 길게 한 것 역시 윌슨의 선택이었다”고 덧붙였다.
완벽했던 올림픽과 작별하는 김연아의 아름다운 마무리. 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밴쿠버는 그렇게 또 한번 김연아에 젖었다.
배영은 기자 yeb@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