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란은 계속됐다. 처음엔 ‘깜짝 스타’였지만 이젠 이변이 아니다. 쇼트트랙 남자대표팀의 이정수(21·단국대)가 2010밴쿠버동계올림픽에 출전한 한국 선수단 중 첫 2관왕이 됐다.
이정수는 21일(한국시간) 캐나다 밴쿠버 퍼시픽 콜리세움에서 열린 쇼트트랙 남자 1000m 결승에서 올림픽 신기록인 1분23초747로 가장 먼저 결승선을 통과했다. 이호석과의 ‘날 들이밀기’ 경쟁에서 0.054초차로 극적인 승리를 거둬 1500m 금메달에 이은 두 번째 금빛 질주를 펼쳤다. 안현수의 뒤를 잇는 ‘차세대 에이스’가 탄생한 셈이다. 아직 끝이 아니다. 앞으로 남은 남자 500m에는 출전가능성이 거의 없지만 5000m계주에서 금메달을 추가한다면 2006년 토리노 대회의 안현수(남자 1000m·1500m·5000m 계주)와 진선유(여자 1000m·1500m·3000m 계주)에 이어 한국 올림픽 사상 세 번째 3관왕에 오르게 된다. 또 쇼트트랙 남자 1000m는 역대 다섯 번의 출전 대회에서 금메달 네 개를 목에 걸며 대한민국의 ‘금 텃밭’임을 확인했다.
○다크호스에서 에이스로…계속된 반란
대회 전에는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던 이정수다. 오히려 팀 선배 이호석과 성시백에게 금맥의 무게가 쏠렸다. 하지만 뚜껑이 열리자 결과는 달랐다. 스스로도 웃음 가득한 얼굴로 감탄사만 연발할 만큼. 이정수는 “두 번째 금메달은 꿈만 같다. 지금 딴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얼떨떨하다”면서 “어렵게 올라온 만큼 좋은 결과가 있어서 정말 기쁘다”고 했다.
레이스는 쉽지 않았다. 그는 “내가 선호하는 스타일의 경기가 아니어서 처음에 당황을 많이 했다”면서 “(이)호석이 형이 예상보다 일찍 스퍼트를 시작하면서 다른 선수들의 체력 소모가 많았다. 형을 잡으려고 다른 선수들이 함께 나가줘서 내가 빠질 틈이 생겼다”고 털어놨다. 또 “호석이 형 덕분에 신체적 접촉이 없이 앞으로 나올 수 있었다”면서 고마운 마음을 털어놓기도 했다.
○‘카메라 울렁증’ 있는, 수줍은 신세대
이정수는 스피드스케이팅 금메달리스트인 모태범·이상화와 1989년생 동갑내기다. 하지만 거침없는 화법의 두 사람과 달리 수줍음이 많고 말주변이 없다. 게다가 첫 금메달을 땄을 때는 이호석과 성시백의 충돌 사고 때문에 뒷전으로 밀리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는 “원래 주목받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성격이다. 솔직히 ‘카메라 울렁증’이 있다. 카메라를 보면 어지러워져서 싫다”고 토로했다. 그리고 곧바로 덧붙였다. “그래도 오늘은 기분이 좋다.”
밴쿠버(캐나다) | 배영은 기자 yeb@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