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삼 엄정욱 정원석 박정환… 인동초가 활짝 피었습니다

입력 2010-04-13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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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 김광삼은 11일 잠실 두산전에 선발 등판해 5.1이닝 4실점(3자책점)을 기록하며 2005년 9월 8일 잠실 KIA전 이후 1676일 만에 선발승을 거뒀다. 올 시즌 초반, 인동초의 꽃을 피우며 감동 스토리를 쓰는 선수들이 프로야구를 풍성하게 만들고 있다. 스포츠동아 DB

LG 김광삼은 11일 잠실 두산전에 선발 등판해 5.1이닝 4실점(3자책점)을 기록하며 2005년 9월 8일 잠실 KIA전 이후 1676일 만에 선발승을 거뒀다. 올 시즌 초반, 인동초의 꽃을 피우며 감동 스토리를 쓰는 선수들이 프로야구를 풍성하게 만들고 있다. 스포츠동아 DB

“죽어도 여한없다 아버지 축하전화에 가슴이 미어졌죠 ”
투수→타자→투수 ‘핑퐁 야구인생’
…1656일만의 승리 감격 김광삼

“죽어도 여한없다 아버지 축하전화에 가슴이 미어졌죠 ”




LG김광삼의 첫승 후일담


“광삼아,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구나.”

LG 김광삼(30)은 11일 밤, 잠실구장 인근에서 친구들과 조촐하게 자축파티를 열고 있었다. 그는 이날 잠실 두산전에 선발등판해 5.1이닝 4실점(3자책점)을 기록하며 승리투수가 됐다. 2005년 9월 28일 문학 SK전에서 구원승을 올린 뒤 1656일 만에 거둔 승리. 선발승만 따지면 2005년 9월 8일 잠실 KIA전 이후 1676일 만이었다.

친구들의 축하를 받고 있는 순간, 주머니 속에서 휴대폰 벨이 울렸다. 다음달이면 환갑인 아버지. 약주 한잔을 하신 듯한 목소리였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들키지 않으려는 듯 애써 참았지만, 아들은 수화기로 전해지는 떨리는 목소리를 통해 아버지가 눈물을 삼키고 있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다.



“아버지의 말씀이 너무 강해서 저도 깜짝 놀랐어요. 아버지는 무뚝뚝한 성격이어서 평소 저에게 별 말씀을 하시지 않아요. 그런데 전화로 그런 말씀을 하실 줄은…. 제 가슴도 미어지더라고요. 아버지께 너무 미안했어요. 이 1승으로 성공한 것도 아닌데, 이제 시작일 뿐인데…. 저도 너무나도 오랜 만에 거둔 승리라 기쁜 감정이 먼저일 줄 알았는데, 막상 승리투수가 되니 그동안 힘들었던 시간이 먼저 생각나더라고요. 그래도 힘든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이런 순간도 오는구나 싶고요.”

그는 곡절 많은 야구인생을 살아왔다. 신일고 시절 투타에서 초고교급 선수로 평가받았지만 프로에서는 얄궂은 운명을 겪었다. 투수로 시작해 2006년 팔꿈치 뼛조각 제거 수술을 받으면서 타자로 변신해야만 했다. 그런데 지난해 2군경기 도중 왼쪽 무릎 인대가 파열되면서 타자를 포기하고 다시 마운드에 섰다.

투수에서 타자로, 타자에서 투수로 핑퐁처럼 왔다갔다하며 허비한 세월. 그러나 그는 “사회생활을 하면 누구나 실패도 하고, 시행착오도 겪는 것 아니냐”며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1676일을 기다린 끝에 승리의 달콤한 열매를 따냈다. 그는 “남들은 성공하기에 늦은 나이라고 생각할지 몰라도 나는 이제 시작일 뿐이다”며 각오를 다졌다.

그러면서 김광삼은 “내가 1600여일 만에 승리투수가 됐는데, 나는 아무 것도 아니더라. 같은 날 엄정욱(SK)은 2000일이 넘었더라. 다큐멘터리 찍는 것도 아니고, 올해는 왜 이리 사연 있는 애들이 많냐”며 웃었다.


2070일만의 승리 엄정욱

방출딛고 타격2위 정원석

4할8푼타 깜짝쇼 박정환


그의 말처럼 올 시즌 초반, 사연 많은 ‘인동초(忍冬草)’들이 하나 둘씩 꽃을 피우고 있다. SK의 ‘와일드씽’ 엄정욱은 11일 목동 넥센전에 선발등판해 최고구속 151km 강속구를 앞세워 5이닝 1실점으로 승리투수가 됐다. 2070일간의 기다림 끝에 얻어낸 값진 선발승이었다. 어깨와 팔꿈치가 고장 나 3차례나 수술대에 올랐고, 고통스러운 재활기간을 견뎌낸 뒤 마운드에서 포효할 수 있었다.

한화 정원석은 방출의 설움을 딛고 불방망이를 휘두르고 있다. 2000년 두산 입단 후 10년간 기대주에만 머물렀고, 두산은 기다림을 거두고 지난해 겨울 그에게 방출을 통보했다. 길거리로 내몰린 그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동국대 시절 스승인 한화 한대화 감독의 바짓가랑이를 붙잡았다. 당초 한화에도 그의 자리가 없었다. 그러나 김태균과 이범호가 일본에 진출한 덕분에 가까스로 스승의 품에 안길 수 있었다. 12일까지 타율 0.425로 2위를 달리며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고 있다.

SK 박정환도 올 시즌 초반 기대 이상의 맹활약을 펼치고 있다. 2007년 삼성에서 방출된 뒤 인천으로 올라왔지만 그동안 자리를 잡지 못했다. 그러나 올해 규정타석에는 비록 미달됐지만 타율 0.480(25타수 12안타) 1홈런 7타점의 깜짝 활약으로 SK의 상승세를 이끌고 있다.

절망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희망의 꽃 한 송이를 피워낸 인동초. 2010년 4월, 그들이 써내려가는 감동 스토리로 프로야구가 따뜻해지고 있다.

이재국 기자 keystone@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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