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스볼브레이크] 잠못드는 셋업맨 곽정철이 사는법

입력 2010-04-28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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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A 우완 셋업맨 곽정철의 진정성을 담은 인터넷 글이 잔잔한 감동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불펜투수의 고충을 새삼 되돌아보게 해주기 때문이다.스포츠동아DB

KIA 우완 셋업맨 곽정철의 진정성을 담은 인터넷 글이 잔잔한 감동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불펜투수의 고충을 새삼 되돌아보게 해주기 때문이다.스포츠동아DB

승리 위해 커피 입에도 안대는 철저함
미니홈피 올린 불펜투수 고뇌 글 화제


‘그라운드의 가장 높은 그곳, 가장 외로운 그곳에서 무대를 성공적으로 마치면 관중들의 갈채와 함성을 받고,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르고, 잠을 자지 않아도 피곤하지 않다. 하지만 이유야 어찌됐건 비운의 주인공이 되면 나를 향하는 많은 손가락질과 가슴까지 느껴지는 따가운 시선들로 밥을 먹어도 모래알을 씹는 듯하고, 쉽사리 잠을 청할 수도, 어렵게 청한 잠도 깨고 싶지도 않다.’

KIA 불펜투수 곽정철(24)이 27일 새벽 자신의 미니홈피에 올린 글의 도입부다. 곽정철은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선발투수도 승리의 순간 마운드에서 웃는 마무리투수도 아니다. 아슬아슬하게 앞서고 있거나 박빙의 승부가 펼쳐지는 7∼8회 마운드에 오른다. 성공하면 금세 잊혀지고 실패하면 모든 비난의 표적이 되는 중간계투가 그의 보직이다.

○“걱정 말고 쉬어 형이 꼭 지켜 줄게”

4월 11일 대구. 5회 1사까지 2실점하고 마운드를 내려온 양현종에게 곽정철은 “걱정 말고 푹 쉬어 형이 꼭 지켜 줄게”라며 마운드로 뛰었다. 그리고 3.2이닝 동안 삼진 6개를 기록하며 끝까지 마운드를 지켰다.

그러나 항상 약속을 지킬 수는 없었다. 24일 목동. 곽정철은 9회 끝내기 안타를 맞고 7이닝 1실점으로 호투한 서재응의 승리를 날렸다. 광주로 돌아온 곽정철은 패배의 아쉬움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리고 불펜 투수로 그동안 느꼈던 솔직한 심경을 2시간 동안 미니홈피에 담았다.

○‘중간 투수를 위한 기쁨은 없다’



‘내가 하는 일이 중간투수, 그것도 필승조. 늘 긴박한 위기의 순간에서 잘하면 본전, 못하면 비난. 중간투수…. 중간 투수를 위한 기쁨은 없다. 그 무대 위에 내가 열연을 펼쳤을지라도 조연은 주연이 될 수 없다. 기쁨과 슬픔 모두 속으로 묻어야 한다(중략)’는 부분에선 아직 20대 초반의 나이로 냉혹한 승부의 중압감을 이겨내야 하는 고뇌가 생생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사람들은 알까? 그 순간을 위해서 무대에 오르던 오르지 않던 적어도 3번에서 5번은 몸을 풀고 행여나 몸이 굳어버릴까 긴장감 속에서 마음 편히 쉬지도 못한다는 사실을’에서는 애잔한 감동까지 든다.

○오늘도 승리를 지키기 위해 휴식도 잊었다.

27일 곽정철은 ‘글 솜씨가 어쩜 그렇게 좋냐?’라는 말에 수줍게 웃었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좀 더 열심히 하자는 마음에서, 동료들도 힘을 냈으면 하는 바람에 썼다”고 말했다. 곽정철의 손에는 두유와 유기농 과자가 들려있었다. 조금이라도 좋은 공을 던지기 위해 탄산음료는 물론 커피도 입에 대지 않는 그를 위해 팬들이 준비한 건강간식이었다.

얼마 후 홈팀 선수들이 연습을 모두 마치고 휴식을 취하는 시간. 곽정철은 홀로 덕아웃에 다시 나왔다. 그리고 심각한 표정으로 타격 연습중인 SK 타자들을 바라봤다. ‘날씨도 추운데 좀 더 쉬었다 나오지 그러냐’는 말에 그는 “SK 타자들 공치는 모습 조금이라도 더 봐야죠”라고 답했다.

그의 글귀 속 ‘하루하루 긴장감속에 살아 남기위해 목숨 걸고 준비하고 내일 죽어도 여한이 없을 만큼 후회 없이 산다’그대로였다.

광주 | 이경호 기자 rush@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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