넥센 정민태 투수코치는 현대 시절이던 1999 시즌, 국내 투수로는 마지막으로 20승 고지를 밟은 주인공이다. 그는 “타고투저 현상 때문에 최근 20승이 저 어려운 것 같다”면서 “타자들이 기술개발을 하는 속도와 달리 투수들은 구종 개발 등이 힘들다”고 설명했다. 스포츠동아DB
1.역대 20승 투수ㅣ프로야구 28년간 단 15차례 뿐
1982년 프로야구가 출범한 뒤 지난해까지 28년간 한 시즌 20승 이상을 거둔 것은 총 15차례였다.(표참조) 그 중 해태 선동열이 3차례(1986년 24승, 1989년 21승, 1990년 22승)였고, 최동원(1984년 27승, 1985년 20승)과 김시진(1985년 25승, 1987년 23승)이 2차례 기록했다. 결국 11명만 20승 고지에 올랐을 뿐이다. 선발, 중간, 마무리가 분업화되지 않은 1990년까지 9년간 무려 11차례 작성됐다. 1991년 이후에는 4차례밖에 나오지 않았다. 1997년 쌍방울 김현욱은 구원승으로만 기록된 특별한 사례, 2007년 리오스는 외국인투수라는 점에서 1991년부터 사실상 국내 투수가 20승을 수확한 것은 1995년 LG 이상훈과 1999년 현대 정민태 등 2명뿐이라는 얘기다.
2. 분업화로 줄어든 등판 기회ㅣ작년 평균 26.6경기…최대 30경기
투수 분업화가 완전히 자리잡은 현대야구에서 선발투수가 등판할 기회는 한정돼 있다. 부상이 없다는 전제 하에 한 시즌 133경기를 치르는 국내 프로야구에서 투수의 선발등판 경기수는 평균 27∼28경기 정도로 본다. 우천으로 경기가 취소되거나 시즌 막판 듬성듬성한 잔여일정으로 에이스가 등판할 기회가 늘어나는데, 그렇더라도 30경기 가량이 최대치다. 지난해 14승으로 다승왕에 오른 삼성 윤성환은 30경기(선발 28경기), KIA 로페즈는 29경기(선발 26경기), 롯데 조정훈은 27경기(선발 27경기)에 등판했다. 2000년부터 지난해까지 최근 10년간 다승 10걸에 포함된 투수의 평균 선발등판 통계를 뽑아 봐도 한번도 29경기를 넘지 않았다. 지난해에는 평균 26.6경기였다.
3. 이닝은 줄고 노디시전 게임 늘고ㅣ 시즌 평균 4분의 1 승패 없이 물러나
투수들의 투구이닝이 갈수록 줄어드는 것도 승수쌓기의 불리함으로 작용한다. 역시 최근 10년간 다승 10걸의 1경기 평균 투구이닝을 살펴보니 6이닝을 갓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10년간 다승 10걸을 보면 선발등판 경기수(2734경기)의 24.2%%(661경기)가 노 디시전 게임(no decision game)이었다. 한 시즌 평균 4분의 1은 승패 없이 물러난다는 통계다. 즉, 30경기에 선발등판한다고 가정하면 7∼8경기는 승패 없이 물러나며, 나머지 22∼23경기에서 20승을 거둬야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4. ML·일본서도 하늘의 별따기ㅣ日 퍼시픽리그 17년간 20승 투수 없어
롯데 로이스터 감독은 “한 시즌 133경기를 하는 한국에서 15승도 사실 대단하다. 162경기를 하는 메이저리그에서도 나오기 힘든 게 20승 투수다”고 말했다. 실제로 투수가 한 시즌 33∼35차례 선발등판하는 메이저리그에서도 지난해 양 리그 모두 20승 투수가 없었다. 2000년대로 확대해 보면 내셔널리그는 2차례(2006년, 2009년), 아메리칸리그는 3차례(2006년, 2007년, 2009년) 20승 투수가 배출되지 않았다.
일본은 한 시즌 144경기를 치르지만 대부분의 팀이 6선발 체제여서 선발등판 경기수는 한국과 비슷하다. 그러면서 최근 일본도 20승 투수를 구경하기 쉽지 않다. 지난해 양 리그 다승왕은 모두 16승. 1991년 이후 20승 투수를 보면 센트럴리그는 2명(1999년 요미우리 우에하라 고지, 2003년 한신 이가와 게이)뿐이었다. 퍼시픽리그는 1986∼2002년 17년간 20승 투수가 없었다. 그러다 2003년 사이토 가즈미(다이에)와 2008년 이와쿠마 히사시(라쿠텐)가 20승 고지에 올랐다.
5. 20승 투수가 말하는 20승 암초ㅣ분업화·타고투저·정신력 약화 한몫
넥센 정민태 투수코치는 “일단은 타고투저 현상 때문에 최근 20승이 더 어려운 것 같다”면서 “타자들이 기술개발을 하는 속도와 달리 투수들은 구종 개발 등이 힘들다”고 설명했다. 삼성 선동열 감독은 “예전에는 선발투수는 마운드에 올라가며 무조건 끝까지 책임져야한다는 생각이 강했다. 그렇게 하다보면 승수가 쌓인다. 요즘은 대부분의 선발투수들이 5이닝만 던지면 중간계투 등판을 생각한다. 정신적으로 약해져 있다. 그게 20승 투수가 나오기 힘든 이유가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넥센 김시진 감독은 “내가 85년 25승을 했을 때는 등판수(47경기)가 많았다. 김일융도 25승을 했으니까 둘이서 50승을 거뒀다. 나는 거기에다 10세이브에 5패까지 기록했다. 전반기에만 16승 무패였다. 투수 분업화가 된 요즘 그렇게 던질 수 있나. 133경기에서 6패를 넘어가면 20승은 힘들다”고 말했다.
6. 이닝이터의 중요성ㅣ리오스·정민태 평균 7이닝 이상 버텨
2007년 리오스와 1999년의 정민태를 보자. 리오스는 그해 무려 33경기 선발등판하는 행운을 얻었다. 당시 우천취소 경기가 많아 ‘리오스-비-비-비-비-리오스’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었을 정도다. 그해 리오스의 디시전 게임은 웬만한 선발투수의 한 해 선발등판 경기수와 맞먹는 27경기(22승5패)였다. 여기에다 평균 투구이닝은 7.11이닝이었다. 정민태는 1구원승이 포함돼 있는데 그해 33경기 중 29경기에 선발등판했다. 그리고 평균 7.51이닝을 투구했다. 즉, 선발등판하면 평균적으로 8회 1사나 2사까지 잡았다는 뜻이다.
스포츠동아 이효봉 해설위원은 “현실적으로 국내에서는 한 시즌에 선발투수가 거둘 수 있는 최대승수는 18승 정도가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15승 이상의 승수를 기록하는 것은 하늘의 선물이라는 뜻이다.
7. 그래도 가능한 투수는?ㅣ류현진·김광현 팀 승률보장땐 가능
야구계에서는 현재 투수 중 20승에 그래도 도전할 만한 투수로 한화 류현진과 SK 김광현을 꼽고 있다. 그 중에서도 김광현이 더 유력한 후보라는 평가다.
이 위원은 류현진에 대해 “수비가 강하고 공격력과 불펜이 강한 SK 소속이면 15승은 기본이고, 잘 풀리면 20승도 가능하다. 그러면서 김광현이 부상만 없다면 그나마 20승에 가장 근접해 있는 투수라고 내다봤다. 그는 “역대 20승 투수를 보라. 대부분 강팀이었다. 마운드가 분업화된 90년대 이후를 보면 95년 이상훈이나 99년 정민태, 2007년 리오스도 모두 강팀에 소속돼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재국 기자 keystone@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