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전사 라이프 스토리 ⑩ 기성용] 열살때 18m 명품 프리킥…떡잎부터 달랐다

입력 2010-06-05 07:00: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2008년 9월10일 중국 상하이에서 대표팀이 북한과 경기를 가진 날이다. 불과 5일 전 요르단과의 경기로 A매치에 데뷔한 19살 청년은 후반 그림 같은 오른발 발리 슛으로 동점골을 뽑았다. 이렇게 그 청년은 허정무 감독의 마음을 단박에 사로잡았다.

허정무호의 ‘젊은 피’ 기성용(21·셀틱) 얘기다.

순천중앙초 3학년 때 축구를 정식으로 시작한 기성용은 2002년 중학교에 올라가자마자 호주 명문 사립학교 존폴 컬리지로 유학길에 올랐다.

2006년 국내로 돌아와 FC서울에 입단한 그는 2007년 부임한 세뇰 귀네슈 감독에게 인정받으며 당당히 주전으로 도약했다.

이어 2009년 12월 스코틀랜드 프리미어리그 셀틱으로 이적해 꿈에 그리던 유럽 무대에까지 발 도장을 찍었다. 축구감독 출신인 광양제철고 체육교사 아버지 기영옥 씨에게는 이 모든 순간이 아직도 머리 속에 생생하다.


○초등학교 3학년, 18m 프리킥을 쏘다


아버지 앞서 보란듯이 프리킥 골인
이후 축구부 가입…본격 선수생활

‘차범근 축구상’ 등 전국무대 두각
중학 교 꿈나무 호주로 조기유학도


1998년 아버지가 초등학교 3학년인 아들 기성용과 함께 광양중학교 1학년들의 경기를 보다 생긴 일이다. 골대와 18m 떨어진 지점에서 프리킥 찬스가 나자 기영옥 씨는 호기심이 발동했다. 4살 때부터 벽에 공을 찬 아들의 모습이 불현듯 머리 속에 떠올라서다. 즉시 친한 손영대 광양중 감독에게 말해 아들에게 프리킥을 차도록 부탁했다.

“믿기지 않는 일이 벌어졌어요. 성용이가 18m 거리의 프리킥을 넣은 겁니다. 그것도 정확하게 볼을 감아서 찼어요. 축구부에 넣은 동기가 됐죠.”

기성용은 이 ‘사건’ 이후 축구를 하기 위해 순천중앙초로 전학했고, 아버지의 결단은 열매를 맺었다. 4학년 때부터 경기를 조금씩 뛰더니 5학년 때 주전 선수로 소년체전 은메달을 땄다. 6학년 때는 초·중·고 통틀어 MVP가 됐고, 차범근 축구대상도 받았다.

기성용 어린시절. 스포츠동아DB




○호주로 가다

2002년 중학교로 올라가면서 기성용은 첫 번째 선택을 했다. 당시 많이 가던 브라질 축구유학 대신 호주를 택한 것. 아버지의 주장이 강하게 작용했다. “제가 데리고 있던 애들 중 브라질에 다녀온 경우를 보니 큰 소득이 없었어요. 그래서 영국을 보낼까 하던 중 평소 친한 김판근(전 국가대표)이 호주 사립학교 존폴 컬리지에 축구학교를 만든다 해서 1기로 보냈죠.”

그런데 목적은 다소 달랐다. 축구 보다는 영어를 위한 유학이었던 것. 이 역시 아버지의 소신으로 밀어 붙였다.

“성용이가 축구를 하다 실패했을 때 어떻게 인생을 이겨나가야 할지 고민했어요. 그러다 떠오른 게 영어만 확실히 터득하고 돌아오면 축구에 관련된 모든 것을 할 수 있으리란 확신이 들었습니다. 행정이든 심판, 에이전트, 지도자든 여러 가지를 할 수 있죠.”


○공부가 먼저, 운동은 그 다음

기성용은 한국에서 운동한 선수들과는 약간 다른 길을 걸었다. 성적 지상주의에 목멘 한국의 학교 팀들이 운동에만 집중하는 것과는 달리 존폴 컬리지는 운동선수들에게도 다른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공부를 시키고, 주말 등 시간을 이용해 운동을 하게 한 것.

이 덕에 기성용은 영어 공부에 더욱 집중할 수 있었다. “성용이가 하루는 엄마한테 전화를 걸어 축구를 배우는 건지, 영어를 하는 건지 헷갈린다고 했지만 다 그런 깊은 뜻이 있었죠. 다행히 성용이가 잘 따라갔어요. 홈 스테이 할 때 한국 학생이 40∼50명 됐는데 가장 잘했으니까요.”

호주 유학은 공부 뿐 아니라 축구를 하는 데도 더 없이 좋은 조건으로 작용했다. 공을 차는 잔디가 좋고, 먹는 것도 좋아 서구 선수들과 똑같은 환경에서 자란 것으로 기영옥 씨는 본다.

“잔디구장에서 축구를 하니까 신체적으로 무리가 안 되고 좋더라고요. 제가 여러 차례 가서 봤는데 환경이 너무 좋았던 것 같아요. 성용이가 큰 키에 비해 감각이 좋은 게 다 잔디구장에서 공을 찼기 때문인 것 같아요.”


대학 대신 프로행…서울서 탄탄대로
19세때 북한전 환상 발리슛 동점골

허정무 감독 사로잡고 붙박이 주전
술· 담배 NO!…철저한 프로정신도



○대학교 대신 프로를 택하다

유학 생활을 마치고 고등학교 2학년 말 광주 금호고로 돌아온 기성용은 주저 없이 프로를 택했다. 운동선수로 성공하려면 대학보다는 프로에 가서 적극적인 대시로 한번 승부를 보는 게 중요하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전까지 선택은 부모님의 의사가 중요했지만 이번만은 기성용이 먼저 결단을 내렸다. “그동안 공부를 했으니까 대학은 나중에 가도 가능하다고 성용이가 판단했어요. 결과적으로 선택을 잘 했다고 봐요. 프로에서 잘하고 있으니까요. 셀틱에서는 (활약이 크지 않지만) 아직 5개월 밖에 안 돼 낙담하지 않습니다.”


○술, 담배는 No! 홍삼은 OK!

기성용은 술과 담배를 하지 않는다. 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고등학교 축구부 감독으로 20년 이상 활약한 아버지는 ‘절제하지 못하면 프로 자격이 없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 프로 선수로 잘 활동하기 위해서는 남들과는 다른 절제심이 있어야 한다는 것. 뿐만 아니라 어머니와 함께 믿는 종교(기독교)도 절제하는 생활의 기준이 됐다.

대신 홍삼은 잘 챙겨 먹는다. 별다른 보양식을 먹지 않는 기성용은 홍삼으로 기운을 보강하고 컨디션을 유지한다.기성용 프로필생년월일=1989년 1월24일


출생지=광주광역시


출신교=순천중앙초∼존폴 컬리지(호주)∼금호고


신체조건=188cm,75kg


포지션=MF


소속
=셀틱(스코틀랜드)


A매치 데뷔=2008년 9월5일 요르단 친선경기


A매치 출전 및 득점=19회 4골


월드컵 출전 경험=없음이길상 기자 juna109@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