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정무 감독. 스포츠동아DB
선수들도 완패 후유증 털고 새출발
“파부침주(破釜沈舟)의 마음으로 나이지리아전을 준비하자.”
허정무 감독이 짧지만 강렬한 메시지로 태극전사들의 투혼을 일깨웠다.
허 감독은 17일(이하 현지시간) 아르헨티나에 1-4로 완패한 뒤 라커룸에서 선수들의 어깨를 두드리며 “빨리 털어버리자”고만 말했다.
숙소에 돌아가서도 더 이상 특별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그러나 가라앉은 팀 분위기를 이대로 계속 끌고 갈 수는 없었다. 사상 첫 원정 16강의 성패가 달린 나이지리아전(한국시간 23일 오전 3시30분)이 눈앞에 다가왔다. 허 감독은 18일 오전 훈련을 앞둔 미팅에서 전날 경기를 복기하며 “파부침주의 심정으로 나이지리아와의 경기를 준비하자”고 했다.
전쟁에 나가는 병사들이 밥 지을 솥을 깨뜨리고 돌아갈 때 타고 갈 배를 가라앉힌다는 뜻으로 살아 돌아가기를 기약하지 않고 결사적 각오로 싸우겠다는 굳은 결의를 뜻하는 말이다. ‘배수의 진’을 치고 나이지리아전을 준비하겠다는 각오다. 허 감독의 발언은 언어의 연금술사이자 심리전의 달인이었던 거스 히딩크 현 터키 감독의 말을 떠오르게 한다.
히딩크는 러시아대표팀 사령탑 시절 유로2008 D조 조별리그 첫 판에서 스페인에 1-4로 대패했다. 손 한 번 써보지 못한 채 유린당하며 팀 분위기는 엉망이 됐다. 경기 뒤 히딩크는 “러시아의 안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 스페인에게 줬다”고 선수들을 자극했다. 이어 “우리는 경험을 쌓아야하고 더 빨리 배워야 한다. 아직 두 경기가 남았다”고 명확한 목표를 제시했다.
완전히 무너진 것처럼 보였던 러시아는 이후 극적인 반전을 이뤄냈다.
이후 그리스와 스웨덴을 연이어 격파해 8강에 오른 뒤 히딩크의 조국 네덜란드마저 3-1로 제압하며 찬란한 4강 신화를 달성했다.
대표팀이 처한 상황과 그에 대처하는 방식이 꼭 닮은 꼴이다.
허 감독의 주문에 선수들도 굳은 결의로 화답했다. 전날보다 한결 밝아진 얼굴로 18일 루스텐버그 올림피아 파크 스타디움에서 훈련을 소화했다.
차두리는 “어차피 나이지리아와의 경기가 결승이나 다름없다. 1차전 승리로 잡은 이 좋은 기회를 절대 놓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한편, 허 감독은 전날 공식 인터뷰에서 “차두리가 1차전에서 썩 만족스럽지 못해 2차전에 오범석을 출전시켰다”는 발언과 관련된 질문이 이어지자 “선수에 대한 평은 코칭스태프끼리만 공유하겠다. 언론에 말하지 않겠다”고 선을 그으며 내부 분위기 단속에 나섰다.
루스텐버그(남아공)|윤태석 기자 sportic@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