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첫 원정 16강] 너의 발을 믿었다

입력 2010-06-24 03: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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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묘한 프리킥으로 ‘자책골 악몽’ 날린 박주영
“부담 갖지 말라고 주위서 많이 도와줘 마음고생 털어내”
“실수 만회하는 모습… 경기 통해 보여주려 준비 많이 했다”


축구 경기에서 최악의 상황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페널티킥 실축이다. 페널티킥이 성공할 확률은 약 82%다. 하지만 세계적인 스타들도 가끔 페널티킥을 실축할 때가 있다. 실축을 하게 되면 팀의 사기는 곤두박질친다.

또 다른 하나는 자책골이다. 자책골은 팀의 사기는 물론이고 실점이라는 큰 상처를 팀에 안긴다. 월드컵대회에서 자책골을 넣고 살해위협을 받은 경우도 있다. 1994년 미국 월드컵 미국과의 경기에서 자책골을 기록한 콜롬비아의 안드레스 에스코바르는 귀국한 뒤 살해를 당했다. 한국축구대표팀의 공격수 박주영(AS 모나코)도 최악의 상황을 맞았었다.


○ 월드컵 본선 첫 골이 자책골

박주영은 월드컵 아시아 지역 예선에서부터 부동의 공격수였다. 2008년 허정무호가 출범한 뒤 박주영은 예선 12경기에서 6골을 터뜨렸다. 허 감독은 일찌감치 박주영을 공격수로 찜하고 그와 호흡을 맞출 파트너를 고르는 데 주력했다. 그만큼 대표팀에서 박주영의 존재는 크기만 했다. 전문가들도 한국의 본선 첫 골의 주인공으로 박주영을 꼽는 데 이견이 없었다.

그리스와의 조별리그 1차전에서 박주영은 최전방 공격수로 선발 출전해 염기훈(수원)과 호흡을 맞췄다. 하지만 첫 골의 주인공은 박주영이 아니었다. 이정수(가시마)와 박지성(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 골을 넣으며 한국을 승리로 이끌 때 박주영의 득점포는 침묵했다. 그리고 악몽의 아르헨티나와의 조별리그 2차전.

박주영은 원톱으로 한국의 공격을 책임졌다. 몇 번의 공격 기회를 잡았지만 아르헨티나의 수비에 막혔다. 잘 풀리지 않았던 공격보다 더한 악몽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전반 17분 아르헨티나의 프리킥 기회에서 리오넬 메시(바르셀로나)가 한국의 문전으로 공을 올렸다. 골문 바로 앞에 있던 박주영은 앞에 있던 선수들 때문에 시야가 가려 공이 보이지 않았다. 빠르게 날아간 공은 박주영의 오른쪽 정강이를 맞고 그대로 골문으로 들어갔다. 박주영은 예기치 않았던 절망적인 상황에 그만 고개를 떨어뜨리고 말았다. 처음으로 출전한 월드컵 본선에서 첫 골을 자책골로 장식했다.




○ 악몽 떨치고 월드컵 스타로 도약

축구 천재가 악몽을 떨쳐내기까지 걸린 시간은 길지 않았다. 박주영은 23일 나이지리아와의 B조 3차전에서 1-1로 맞선 후반 4분 페널티 지역 왼쪽 밖에서 키커로 나섰다. 오른발로 낮게 감아 찬 슛은 상대 수비벽을 비켜 간 뒤 그대로 골문으로 향했다. 철벽 방어를 자랑하는 빈센트 에니에아마(텔아비브)가 몸을 날렸지만 공이 지나간 뒤였다. 골이 들어가자 박주영은 그동안의 부담과 울분을 토하듯 힘차게 사자후를 토했다.

경기 뒤 공동취재구역에서 만난 박주영은 담담한 표정이었다.

아르헨티나전에서의 자책골에 대해 박주영은 “아르헨티나와의 경기에서 실수를 했지만 마음고생은 경기 다음 날 털어냈다. 주위에서 부담을 갖지 않게 많이 도와줬다”며 “실수는 경기를 통해 만회하면 된다는 마음으로 준비를 많이 했다”고 밝혔다. 축구 천재는 시련이 있었지만 결코 실망을 시키지는 않았다.

더반=김동욱 기자 creating@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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