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첫 원정 16강] 거미손 울린 이정수 ‘동방예의지국슛’

입력 2010-06-24 03: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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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전 대표탈락 설움
큰 무대 연속골로 훌훌

원래 공격수… 골감각 탁월
‘수비수 2골’ 홍명보뒤 처음
독일 월드컵이 열린 2006년 6월. 온 나라가 월드컵으로 들끓었지만 이정수(30·가시마)에게는 남의 나라 얘기나 다름없었다. 축구선수라면 누구나 꼭 밟고 싶은 꿈의 무대라는 월드컵 본선. 대표팀 승선이 유력했던 이정수 역시 기대가 컸다. 하지만 최종 엔트리 발표 때 그의 이름은 빠져 있었다. 마지막 순간 딕 아드보카트 당시 대표팀 감독의 부름을 받지 못했다. 그는 몇날 며칠을 술로 지새웠다. 폐인이 따로 없었다.

만약 이정수가 당시의 후유증을 극복하지 못했다면 한국의 월드컵 원정 첫 16강 진출은 이뤄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보란 듯이 시련을 이겨냈고 남아공 월드컵에서 최고 스타로 떠올랐다. 한국의 16강을 이끈 그리스전 선제골과 나이지리아전 동점골은 모두 그의 발에서 나왔다.


○ 변신


경희대 재학 시절 그는 공격수였다. 2002년 안양 LG(현 FC 서울)에도 공격수로 입단했다. 입단 첫해 성적은 29경기 출전에 2골 2어시스트. 그를 뽑은 조광래 감독(현 경남 감독)은 1년 만에 수비수로의 전향을 권유했다. “키가 크고 빠르지만 박주영 같은 날카로움이 없다”는 게 이유였다.

수비수로 꽃을 피운 것은 2004년 인천으로 이적해 장외룡 감독의 지도를 받으면서부터다. 2005년에는 주전 수비수로 인천의 준우승을 이끌었다. 2006년 수원으로 옮긴 뒤로는 차범근 감독의 전폭적인 신임을 받았다. 차 감독은 “스피드가 있고 공격에도 활용할 수 있다”고 칭찬했다.


○ 늦깎이

K리그의 간판 수비수로 자리를 굳혔지만 이상하리만치 태극마크와는 인연이 없었다. 처음 대표로 선발된 것은 본프레러 감독 시절인 2005년 7월 동아시아연맹 선수권 때다. 그런데 하필이면 불의의 허벅지 부상으로 최종 명단에서 제외됐다. 성공적인 재활을 거쳐 2006년 복귀했지만 월드컵 최종 명단에서 다시 한 번 미역국을 마셨다.



기회가 다시 찾아온 것은 2008년이었다. 허정무 대표팀 감독은 그를 대표팀에 승선시켰다. 그리고 2008년 3월 26일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북한과의 월드컵 예선에서 잊지 못할 A매치 데뷔전을 치렀다. 그때 나이 28세였다.


○ 골 넣는 수비수

키 185cm에 스피드를 갖춘 그는 수비수로 변신했어도 공격수 본능이 꿈틀거렸다. 지난해 9월 5일 열린 호주와의 평가전에서 A매치 첫 골을 터뜨린 데 이어 올 초 핀란드와의 평가전에서 골맛을 봤다. 지난해 J리그 교토에선 32경기에서 5골을 넣었고, 올해 명문 가시마로 옮긴 뒤에도 8경기에서 2골을 터뜨렸다.

남아공 월드컵에서는 대표팀에서 가장 많은 2골을 넣었다. 12일 그리스전에서는 기성용의 크로스를 받아 감각적인 오른발 슛을 성공시켰고, 23일 나이지리아전에서도 역시 기성용과 호흡을 맞춰 골을 뽑아냈다. 나이지리아전의 골은 헤딩을 하는 듯하다가 발로 집어넣어 누리꾼 사이에 ‘동방예의지국 슛(헤딩으로 머리를 숙인 뒤 넣었다는 의미)’으로 불렸다. 마치 상대에게 미리 인사를 한 뒤 골을 넣은 것 같다며 재치 있게 표현한 것이다. 수비수가 월드컵에서 2골을 넣은 것은 홍명보 올림픽 축구대표팀 감독이 1994년 미국 월드컵에서 기록한 이후 처음이다.


○ 미래

이번 월드컵을 통해 이정수의 주가는 더 올라갈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일본 교토에 진출한 이정수는 올해부터 J리그 3연패에 빛나는 명문 가시마에서 뛰고 있다. 지난해 말에는 사우디아라비아의 한 클럽이 거액을 제시했다는 보도가 일본 언론을 통해 나왔다. 유럽 빅 리그 진출은 어려울지 몰라도 공격이 가능한 수비수 이정수에게 많은 팀이 매력을 느낄 것으로 예상된다. 올해 말 오랜 기간 사귀어온 여자친구와 결혼할 계획을 갖고 있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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