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첫 원정 16강] 더 큰 꿈을 許한다

입력 2010-06-24 03: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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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감독 첫 월드컵 16강 이끈 허정무
변신- ‘허고집’에서 화합-자율-긍정으로… “모두 선수들 덕분”
적중- 나이지리아전 앞두고 세트피스 집중 전략 들어맞아


2007년 12월 네덜란드 출신 핌 베어벡 감독의 바통을 이어받아 허정무 감독이 한국 축구대표팀 사령탑에 올랐을 때다. 허 감독은 계속 구설에 올랐다. 기자들과 대인관계가 좋은 허 감독이 전화로 한 얘기가 기사화되면서 이를 못 쓴 언론들의 원성이 쏟아진 것이다. 언론담당관에게 모든 것을 맡겼던 외국인 사령탑 시대에서 다시 국내파 감독으로 오면서 과거의 악습이 시작된 것 같아 기자는 뒷맛이 씁쓸했다. 초창기 대표팀의 성적도 그리 좋지는 않았다. 얼마 뒤 허 감독은 휴대전화 번호를 바꿨고 공개하지 않았다.

국내 감독 사상 첫 월드컵 승리와 첫 원정 16강 진출이란 두 마리 토끼를 한번에 잡는 데는 허 감독의 개인적인 변신이 큰 몫을 차지했다. 한마디로 환골탈태였다.

허 감독은 자기 스타일을 굽히지 않기로는 국내 감독 중 둘째라면 서러워할 정도였다. 하지만 변화를 시도했다. 코칭스태프와 협의를 할 때도 결국은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는 게 관례였지만 어느 순간부터 정해성 코치, 김현태 골키퍼 코치, 박태하 코치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박지성에게 주장 완장을 차게 한 게 대표적이다. 처음에 허 감독은 다른 선수를 지목했지만 코칭스태프의 의견에 따라 박지성을 캡틴으로 지명했다. 박지성은 묵묵히 최선을 다하는 부드러운 리더십으로 선수들을 잘 이끌었다.

허 감독은 프로 사령탑과 1998년부터 3년간 대표팀 감독을 할 때 대표적인 ‘훈련 지상주의자’였다. 너무 강도 높은 훈련을 시켜 선수들이 외박을 나갔다 복귀하는 것을 두려워할 정도였다. 그러나 허 감독은 과학적인 프로그램을 도입해 훈련량을 합리적으로 조정했다.

진돗개로 불릴 정도로 고집이 세던 허 감독은 화합, 자율, 긍정의 세 가지를 강조했다. 훈련할 때나 식사할 때도 웃음을 잃지 않는다. 선수들이 잘못한 것은 지적하지만 절대 몰아치진 않는다. 칭찬도 많아졌다. 모든 책임은 자신이 졌고 승리의 영광은 선수들에게 돌렸다. 그리스를 상대로 첫 승리를 했을 때, 그리고 16강을 확정했을 때 그는 “내가 한 일은 없다. 모두 선수들 덕분이다. 선수들에게 감사한다”고 말했다. 이런 변신의 결과 국내 감독 첫 승과 사상 첫 원정 16강을 이룬 것이다.

허 감독이 이렇게 변한 배경엔 굴곡진 지도자 인생도 한몫했다. 허 감독은 1998년 올림픽 및 대표팀 감독에 올라 2000년 시드니 올림픽과 그해 아시안컵에서 성적이 좋지 못하다는 이유로 밀려났다. 공교롭게도 허 감독 이후 2001년 초 네덜란드 출신 거스 히딩크 감독이 부임한 뒤 움베르토 쿠엘류, 요하네스 본프레레, 딕 아드보카트, 핌 베어벡까지 줄곧 외국인이 한국 축구를 쥐고 흔들었다. 히딩크 감독은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16강을 넘어 아시아 최초로 4강까지 끌어올렸다. 2007년 말 베어벡 감독이 떠나고 다시 국내파로 지휘봉이 돌아오며 허 감독이 맡았으니 그로선 ‘국내파의 한계’를 넘어야 할 중책을 맡은 셈이 됐다. 16강 진출로 그는 역할을 충실히 했다.



허 감독의 전술도 빛났다. 허 감독은 나이지리아와의 마지막 경기에서 세트피스로 승부가 갈릴 것으로 전망하고 상대 세트피스를 막는 법과 우리가 세트피스로 골을 잡아내는 훈련을 많이 시켰다. 결국 한국은 이날 이정수와 박주영이 세트피스로 연속 골을 터뜨렸고 결국 1차 목표 달성에 성공했다.

더반=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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