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남아프리카공화국(이하 남아공) 월드컵에서 유쾌한 도전을 하고 싶다”던 허정무 감독의 목표는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됐다. 그는 국내 감독으로 유일하게 사상 첫 원정 월드컵 16강이라는 쾌거를 이룩했다. 하지만 이번 대회는 한국축구에 몇 가지 과제를 던져준 무대이기도 했다.
원정 16강을 이뤘다는 것이 가장 돋보인다. 체계적인 해외 축구 정보 수집과 분석들을 통해 지난 1954년 스위스월드컵 이후 56년 만에 월드컵 원정 16강 진출에 성공했다. 2002년 한일월드컵서 ‘4강 신화’를 일군 뒤 2006 독일 대회에서 원정 월드컵 첫 승을 거뒀던 태극전사들은 이번 대회에서 한국이 더 이상 세계 축구의 ‘변방’이 아니라는 것을 확실히 각인시켰다. “한국의 장점을 살리는 축구를 하겠다”는 허 감독의 말은 한국 축구의 현 단계를 객관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90분 내내 강한 압박을 유지한 체력은 합격점을 받았다. 2002년부터 태극전사들의 체력을 향상시켰던 레이몬드 베르하이옌 피지컬 코치의 관리 덕분에 선수들은 경기 후반 중반 이후에도 강철 스태미나로 상대를 더욱 몰아붙일 수 있었다. ‘셔틀 런’(20m 왕복 달리기) 등 과학적 훈련 방법이 선수단의 체력 수준을 이미 세계적인 수준으로 업그레이드시켰다는 증거다.
높은 골 결정력도 빼놓을 수 없는 대목이다. 조별리그 세 경기에서 한국은 다섯 골을 터뜨렸다. 역대 7번의 월드컵 조별예선 경기 중 가장 많은 득점을 올렸다. 특히 5골 중 필드골도 2골이나 된다는 점이 고무적이다. 과거 공격형태는 세트피스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박지성(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이청용(볼턴), 기성용(셀틱), 박주영(AS모나코) 등 해외파들이 유럽무대에서 쌓은 경험을 월드컵에 접목시키면서 필드골이 늘어났다. 또 ‘골 넣는 수비수’ 이정수(31.가시마)가 곽태휘의 공백을 완벽에 가깝게 메워줬다는 부분도 골 결정력을 높일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다.
하지만 허정무호가 남겨놓은 과제도 만만치 않다. 선수들의 기술적 성장이 뒷받침되지 않고 감독의 전략·전술에만 의존해선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단적인 예로, 태극전사들은 화려한 개인기와 빠른 스피드를 앞세운 아르헨티나에게 1-4로 참패했다. 개인기량이 부족하다 보니 상대의 플레이에 끌려갈 뿐 경기를 지배하지 못했다. 이청용, 기성용, 이승렬 등 개인 능력이 좋은 젊은 피들이 가세했음에도 일부 선수들은 상대 선수 한 명도 뚫기 힘든 현실은 직시해야 한다. 이는 4년 뒤 브라질월드컵에서 8강, 4강, 우승까지 넘보기 위한 필요충분조건이다.
포트엘리자베스(남아공)=김진회 동아닷컴 기자 manu35@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