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팀 사령탑 ‘용퇴’한 허정무의 발자취

입력 2010-07-02 11:4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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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감한 퇴장’이다.

‘소통의 리더십’을 강조하며 자상한 옆집 아저씨로 변했지만 한국축구의 발전을 위한 결정에는 예전 별명이었던 ‘오뚝이’ 같았다.

한국축구를 사상 첫 원정 월드컵 16강에 올려놓은 허정무(54) 감독이 2년6개월여 만에 축구대표팀 지휘봉을 내려놓았다.

허정무 감독은 2일 서울 신문로 축구회관 5층 대회의실에서 열린 2010 남아프리카공화국(이하 남아공) 월드컵 결산 인터뷰에서 “부족한 나를 믿고 대한민국 축구대표팀의 감독을 맡겨준 대한축구협회 이하 모든 분들께 감사드린다”고 운을 뗀 뒤 “차기 감독 인선에서 물러난다. 2년6개월 동안 계속 달려오면서 느낀 것도 많고 세계 최고라는 월드컵에서 보고 느낀 것도 많았다. 잘못된 점, 부족했던 점을 연구해보고 재충전할 수 있는 시간을 갖고자한다”고 밝혔다.

지난 2007년 12월 대표팀 사령탑으로 취임했던 허 감독은 2010 남아공 월드컵 종료와 함께 계약 기간이 끝났고, 연임 포기로 2년6개월여의 감독직을 마감했다.

그동안 허 감독의 발자취를 살펴보면 우여곡절이 많았다.

남아공월드컵 아시아지역 3차와 최종예선을 거치면서 몇 차례 흔들렸다. 특히 최종예선 북한과의 1차전에서 1-1 무승부를 기록하며 최고의 위기를 맞이했다. 당시 허 감독은 아랍에미레이트연합(UAE)과의 2차전을 앞두고 남몰래 사표까지 쓴 후 결전에 임하기도 했다.

그러나 허 감독은 개의치 않고 앞만 보고 달렸다. 이후 월드컵 8강 진출에 실패하기까지 시련은 있었지만 실패는 없었다.

일찌감치 7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을 이끈 허 감독은 그리스와의 조별예선 1차전에서 2-0으로 승리하며 원정 월드컵에서 첫 승을 일군 국내 사령탑에 올랐다. 아르헨티나와의 2차전에서 1-4로 참패하며 벼랑 끝에 몰리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파부침주(破釜沈舟. 밥 지을 솥을 깨뜨리고 돌아갈 때 타고 갈 배를 가라앉힌다는 뜻으로 살아 돌아오기를 기약하지 않고 결사적 각오로 싸우겠다는 굳은 결의를 비유하는 사자성어)의 자세로 임한 나이지리아와의 최종전에서 2-2로 무승부를 거두면서 한국축구 사상 첫 원정 월드컵 16강이란 쾌거를 이룩했다.

비록 우루과이와의 16강전에서 1-2로 패해 아쉬움을 남겼지만 한국축구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 올렸다는 평가를 이끌어냈다. 무엇보다 그가 이룬 업적은 ‘토종 감독도 세계무대에서 통할 수 있다’라는 것을 보여줬다.

대표팀의 세대교체도 이뤄냈다. 주장 박지성(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을 중심으로 대표팀을 젊게 변화시켰다. 특히 기성용(셀틱), 이청용(볼턴), 이승렬(서울), 김보경(오이타) 등 신예들을 대표팀의 주역으로 키우면서 미래 한국축구도 생각했다.

월드컵이 끝난 뒤 한국축구의 중장기적인 발전을 위해서는 허 감독이 연임을 해야 한다는 축구계 안팎의 목소리가 높았다. 조중연 대한축구협회장 역시 우루과이전이 끝난 뒤 “우리나라에서도 장기적으로 대표팀을 맡을 감독이 나올 필요가 있다”며 연임에 무게를 실어줬다.

하지만 허 감독의 뜻은 단호했다. 정상에 섰을 때 하산을 택했다. 전진보다는 쉼표가 한국축구 발전에 더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허 감독은 “우리 축구계에 유능한 지도자들이 많다. 대한민국 축구발전을 위해 기여하고 싶다. 대표팀 감독이 중요하고 부담되는 자리이지만 그 부담감을 이겨낼 수 있는 지도자들이 많다. 후임 감독이 나보다 더 잘 이끌어주고 한국축구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후회보다는 당당함을 보였다.

비난이 아닌 박수칠 때 떠나는 허 감독. 그의 뒷모습은 역대 그 누구보다도 아름다웠다.

김진회 동아닷컴 기자 manu35@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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