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춘천에서 2군 올스타전이 열렸을 때의 일입니다. 사람 좋아하는 SK 계형철 2군감독(현 수석코치)이 올스타전 직후 2군 지도자 후배들과 회포라도 풀려고 생각한 찰나,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김성근 감독이었습니다. “회식 중이다. 와라.” “저, 지금 여기서 저녁 약속 잡혔는데요.” “기다리겠다.” 바로 춘천에서 인천까지 전속력으로 차를 몰고 돌아갔답니다. 2시간 넘게 걸려 도착해보니 회식자리는 파장 분위기였는데 김 감독은 남아있었습니다. 계 코치를 앉히더니 술을 따라줬습니다. 한잔 두잔 세잔. 그제서야 김 감독은 자리를 뜨더랍니다. 솔직히 기자세대 정서로는 이해가 안가는 풍경입니다. 그러나 계 코치는 “이것이 김 감독의 정(情)”이라고 말합니다.
#7월7일 삼성전 도중 TV에 비친 김 감독의 표정은 평소보다 안 좋았습니다. 패배 직후 “보이지 않는 실수가 있었다”고 했죠. 아주 막연한 단서하나만 던져놓는 김 감독의 화법상 단지 삼성에 져서 화가 난 것은 아닌 듯했습니다. 확인해보니 SK의 주루플레이에 실수가 있었습니다. 코치들이 뛸 타이밍에 뛰라는 사인을 놓쳤고, 그 다음에 뛰게 하다 삼성의 견제에 걸린 것입니다. 감독의 발언은 코치진을 향한 무언의 질책인 셈이었고, ‘이심전심’ 의중을 파악한 계 코치는 바로 후배 코치들을 소집해 “잘해보자”고 다독였습니다. 실제 SK는 8일 바로 삼성에 설욕했죠.
#우연히 인터넷에서 2002년 겨울에 열렸던 김성근 감독의 회갑연 사진을 봤습니다. 계 코치, 이광길 코치, 이홍범 코치 등 소위 ‘김성근 사단’이 어김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더군요. 고락을 같이 한다는 말이 자연스레 떠오르더군요. 정치기사를 읽을 때, 상도동이니 동교동이니 가신 얘기를 접하면 개인적으로 2인자 멘털리티란 어떤 건지 궁금했습니다. 따라하고 싶은 생각은 더더욱 없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삶을 사는 것도 하나의 방식일 수 있겠지요. 무엇이든 일관된다는 것은 보기에 따라선 아름답고 멋있을 수도 있는 법이니까요. 중국민들이 마오쩌둥을 더 위대하다고 느끼지만 저우언라이에 더 친근감을 느끼는 것처럼 말이죠.
gatzb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