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선수와 에이전트(대리인)의 이상적인 관계는 어떤 것일까.
선수들도, 100여명에 육박하는 에이전트들도 이 물음에 대해 여전히 명확한 입장정리를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에이전트 제도가 공식 도입된 지 얼마 되지 않아 겪게 되는 과도기적 현상이라고도 볼 수 있다.
한국에서 선수-에이전트의 관계는 조금 독특한 측면이 있다.
선수 이적과 계약 등을 맡아 대리하는 본래 의미의 에이전트 역할 이외에 선수 본인과 가족의 일상적인 잡무까지 처리해주는 매니저의 역할까지 병행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에 비해 유럽에선 매니저 업무까지 에이전트가 맡는 경우는 거의 없다. 에이전트의 활동은 이적시장이 열리면서 시작되고 닫히면 사실상 종료된다고 보면 된다. 선수관리 의무가 없기 때문에 시즌이 시작되면 한결 여유가 있다.
이에 비해 국내 에이전트들은 1년 내내 바쁘다.
선수가 제대로 뛰지 못하면 함께 가슴앓이를 해야 하고, 때로는 선수의 심리상담사의 역할을, 때로는 집안의 집사 역할까지 해야 한다. 대신에 통상 선수연봉의 10%%에 해당하는 보수를 관리비조로 받는다. 유럽에서는 관리비를 받는 경우는 많지 않고, 있다고 해도 5%% 이내의 미미한 수준이다.
한국은 축구시장이 크지 않아 매니저 역할까지 병행하는 게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관리하는 선수라야 많아야 20∼30명 정도여서 간혹 일어나는 이적업무로 생계를 유지하기 힘든 게 현실이다.
유럽의 경우 에이전트 한 사람이 선수 70명 이상을 담당하는 경우도 많은 데, 이는 평소 선수 관리의무가 없기 때문에 가능하다.
어떤 관계가 이상적인가에 대해선 정해진 답은 없다. 선수가 어떠한 서비스를 받기 원하는가에 따라 대리인 계약은 탄력적으로 운용될 수 있다. 수수료가 아깝다면 평소 관리업무까지 기대해선 안 되고, 적극적인 매니저 역할을 원한다면 10%% 이상의 보수를 지급할 각오를 해야 한다.
문제는 보수를 지급하기 아까워하면서도 평소에 관리가 시원찮다고 불평을 하는 선수가 적지 않고, 반대로 적잖은 수수료를 받으면서도 선수관리에는 게으른 에이전트들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필자의 경우 유럽식의 대리인 제도가 더 편하고 합리적으로 생각된다.
에이전트 업무의 본질은 ‘준비된 선수’를 대상으로 좀 더 많은 연봉과 좀 더 나은 환경에서 뛸 수 있는 팀을 찾아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선수는 웬만한 슬럼프는 스스로 이겨낼 줄 알아야 하고, 그 정도의 독립심이 있어야 해외진출의 기회가 와도 성공확률이 높다. 축구선수가 성공하는데 있어 에이전트의 존재가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역할을 수치로 따지자면 선수 80∼90%%, 에이전트는 기껏 10∼20%% 정도다.
다만 부부끼리도 궁합이 맞아야 잘 살 듯이 자신에게 맞는 에이전트를 잘 만나는 게 축구선수로서 성공에 중요한 포인트다.
지쎈 사장
스포츠전문지에서 10여 년간 기자와 축구팀장을 거쳤다. 현재 이영표 설기현 등 굵직한 선수들을 매니지먼트하는 중견 에이전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