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불펜의 큰형 정현욱의 아버지 정재환, 어머니 이명자 씨 그리고 막내 정인욱의 아버지 정태윤, 어머니 박영순(왼쪽부터) 씨가 11일 잠실을 찾아 아들들을 응원하고 있다. 두 부부는 이름 석자 가운데 한 자만 달라 형제처럼 지내는 아들들을 응원하다 절로 끈끈한 한 가족이 됐다.
띠동갑 불펜아들 처지 공감대
부모들도 끈끈한 선후배 됐죠
“아들, 괘안나?“부모들도 끈끈한 선후배 됐죠
11일 새벽 1시 반. 어머니의 핸드폰 벨소리가 울렸다. 자기 아들인데도 이렇게 전화 받기가 어려울 줄은…. 그 마음을 읽었는지 먼저 전화기를 든 아들도 씩씩하게 답했다. “응 괘안타.” 쓰디쓴 소주 한잔으로 마음을 달래던 아버지도 전화기를 건네받았다. “사람이란 아픈 것을 알아야 크는 법이니까….”
10일 두산과의 플레이오프. 연장 11회 접전 끝에 삼성 정인욱(20)은 패전투수가 됐다. 잠실구장 한 편에서 아들을 응원하던 아버지 정태윤 씨와 어머니 박영순(55) 씨도 고개를 숙였다. 순간, 그라운드에서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는 선수가 보였다. 삼성불펜의 고참투수 정현욱(32)이었다. 이름 석자 가운데 한 자를 빼고는 같은 두 선수. 열 두살의 나이차에도 그 순간 만큼은 친형제 같았다.
경기장 밖에서는 정현욱의 아버지 정재환(59) 씨와 어머니 이명자(53) 씨가 정인욱의 부모를 위로했다. 불펜투수의 숙명을 지고 사는 아들. 그래서 부모의 마음도 누구보다 잘 헤아리기 때문이다. “(정)현욱이가 잘 막아줬으면 (정)인욱이한테 부담이 덜 갔을 텐데….” 정현욱의 아버지는 당신 아들보다 정인욱을 먼저 챙겼다. “현욱이 아버지가 선수의 부모로서도 선배시고, 인생도 선배시고…. 이럴 때면 많이 챙겨주시죠.” 아들들 덕분에 아버지들 역시 끈끈한 선·후배가 됐다.
똑같은 불펜투수지만, 둘의 인생행로는 달랐다. 정현욱이 오랜 2군 생활 끝에 ‘국노’의 자리에 올랐다면, 정인욱은 약관의 나이에 바늘구멍보다 좁은 삼성 1군 마운드에 발을 디뎠다. 정인욱 아버지는 “아…. (3차전에서는) 우리 아들이 저런 큰 짐을 맡아도 되나 싶더라고요”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하지만 정현욱 아버지의 생각은 달랐다. “(정)인욱이는 그 나이에 정말 대단한 거고, 행복한 거지. 현욱이 (고생한 것) 생각하면.” 굳었던 정인욱 부모의 표정도 그 말 한마디에 녹았다.
불펜투수가 그렇듯, 부모 역시 항상 ‘오분대기’다. 아들의 나올지, 안나올지도 모르는 경기. “조마조마 해요. 항상 박빙의 순간에 나오고, 아들이 못하면 승패에 바로 영향이 가니까요. 악성 댓글에도 상처를 많이 받아요. 다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인데….”
경기시작 20분 전. 그라운드에 삼성 선수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부모들도 두 손을 모았다. “오늘도 나오려나? 잘 던져줘야 할 텐데….” 그리고 불펜투수의 부모들도 또다시 대기모드에 돌입했다.잠실|전영희 기자 setupman@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국경원 기자 onecut@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