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이들은 박석민에게 ‘홈런’을 바라지만 아버지는 아들 자체가 ‘홈런’이라고 했다. 삼성 박석민의 아버지 박찬경 씨의 웃음에서 아들을 향한 남다른 애정이 드러난다. 대구|박화용 기자 inphoto@donga.com
18일 한국시리즈 3차전을 앞둔 대구구장. 경기 시작 한 시간 전이었다. 박석민(25)의 아버지 박찬경(58) 씨는 야구장 앞 호프집에서 맥주 한잔을 들이 키고 있었다. “원래 (박)석민이 아버지는 술을 잘 못하는데….” 옆에서 양준혁, 오승환, 박한이의 아버지도 술잔을 마주치며 초조한 마음을 달랬다.
아들이 초등학교 4학년 때였다. 동네야구 4번 타자이던 아들을 눈여겨본 초등학교 감독이 집을 찾아왔다. 운동이라면 극구반대였던 어머니 양성자(50) 씨는 문까지 걸어 잠갔다. “그래도 손님이 오셨는데 그러면 쓰나….” 그리고 아버지는 감독과 술 한 병을 들이켰다. ‘야구천재’ 박석민이 잉태된 순간이었다. 아들은 몇 개월 먼저 야구부에 들어간 또래들을 제치고 대번에 주전자리를 꿰찼다.
박석민의 형 석진(28) 씨 역시 대구상고 시절까지 야구선수였다. “야구가 돈이 참 많이 들데요.”백화점 버스를 몰던 아버지의 수입만으로는 감당하기 힘든 적도 많았다. 당시 학생야구에서는 알루미늄 배트를 쓰던 시절이라 배트 걱정은 없었지만…. 글러브가 문제였다. “좀 비싼 게 아니잖아요. 중학교 때 딱 한번 사줬는데. 바로 이곳 대구구장 앞에서였어요. 그 때 그 놈 환한 표정이란….” 그래도 투정 한번 없던 아들이었다. 어머니는 “석민이는 그럴 때마다 ‘엄마, 저는 감독 코치님들한테 사랑을 많이 받아서 많이 챙겨주세요’라며 도리어 부모를 안심시켰다”고 했다.
중학교 때 벌써 대구구장에서 홈런을 쳤을 정도로 재능을 인정받았던 아들. 첫 번째 시련은 ‘뛰어난 야구실력’ 때문에 찾아왔다. 고등학교 진학과정에서 스카우트 파동에 휘말린 것. 여러 오해 때문에 손가락질도 받아야 했다 “엄마, 내가 복수하는 길은 삼성에 멋지게 들어가는 것 뿐이야.” 이번에도 먼저 부모를 챙겼던 의젓한 아들은 약속을 지켰다. 2004년 1차 지명. “계약금으로 빚도 갚고, 아들이 차도 한 대 사주데요. 우리 아들 잘 키웠다 싶었지요.”
한 잔 술에 세월을 더듬던 아버지. 어느덧 시침은 6시를 향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자리를 털었다. “플레이오프에서 그렇게 안 맞더니 한국시리즈에서는 슬슬 감을 잡아가는 것 같다”고 기대감을 품으며…. “홈런이요? 못 쳐도 상관없어요. 저렇게 잘 커준 것만도 제 인생에는 홈런이죠.” 펜스를 넘어가는 타구가 아니더라도 아버지의 가슴은 뛴다. 아들을 뒷바라지한 궤적은 홈런의 포물선보다 더 아름다우니까.
대구|전영희 기자 setupman@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