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에 만난 사람] 삼성 코야마 트레이닝 코치 “훈련은 웃으며 즐겁게 난 펀런 전도사!”

입력 2010-10-19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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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코야마 코치는 메이저리그, 일본리그를 거쳐 한국에 온 베테랑 트레이너다. 비시즌에도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는 그는 “선수들이 즐겁게 훈련하는 법을 늘 고민한다”고 말했다. 대구|박화용 기자 inphoto@donga.com

삼성 코야마 코치는 메이저리그, 일본리그를 거쳐 한국에 온 베테랑 트레이너다. 비시즌에도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는 그는 “선수들이 즐겁게 훈련하는 법을 늘 고민한다”고 말했다. 대구|박화용 기자 inphoto@donga.com

미·일·한국 두루 거친 베테랑 트레이너
한국의 마구잡이식 훈련 시스템에 놀라


충분한 설득이 ‘FUN 트레이닝’의 비결
서툰 한국어지만 농담까지 연구합니다

1996년 한국프로야구 출신으로는 최초로 일본에 진출한 선동열 현 삼성 감독은 비장의 훈련도구를 챙겼다.

바로 해태 시절 배운 농구공 튕기기. 누가 처음 시작했는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농구공을 양 팔로 벽에 강하게 던지고 받고를 반복하면 팔의 근력이 강해진다는 이유로 힘써온 비기였다. 드디어 주니치에서 맞은 첫 시즌, 선동열은 홀로 농구공을 들고 열심히 던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순간 주위는 침묵에 빠졌다. 그리고 고개를 갸웃거리는 트레이너들의 따가운 시선. 주니치 코치와 트레이너들은 “도대체 어디서 배운 훈련방법이냐?”고 물으며 “혹시 스프링캠프에 들어가기 전에는 근력강화에 아주 조금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투수에게는 아무런 도움이 안 되는 훈련이다. 앞으로 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냉정히 말했다. 선 감독은 당시를 떠올리며 크게 웃었다. 그리고 “솔직히 창피해서 죽는 줄 알았다. 나름 한국 최고라는 자부심을 갖고 일본에 갔는데, 그 모습이 얼마나 한심해 보였을까?”라고 말했다.

14년여가 지난 2010년 10월 18일 대구구장. 선동열 감독이 덕아웃에서 그라운드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선수들은 20m 달리기, 스트레칭, 거리를 모두 달리한 캐치볼까지 각각의 스케줄에 맞춰 몸을 풀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밝은 미소로 구령을 붙이는 코야마(40) 트레이닝 코치가 있었다.

트레이닝은 선수들의 부상 방지와 효과적인 훈련을 위해 그 중요성이 지금도 계속 강조되고 있는 분야다. 그러나 한국프로야구는 선 감독의 기억처럼 1990년대 후반까지도 걸음마 단계였다. 이후 트레이닝을 전공하고 꾸준히 연구한 전문가들이 프로구단에 참여하며 비약적으로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특히 일본인 트레이너들은 수십 년간 축적된 일본 프로야구의 노하우를 국내에 접목시키고 있다.

코야마 코치는 미국 메이저리그 애틀랜타를 거쳐 2002년부터 일본 히로시마에서 3년간 트레이닝 코치로 활동했다. 그리고 2005년 롯데에 영입돼 한국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삼성과 인연을 맺은 건 2007년부터 4년째가 됐다.



프로야구 선수들은 러닝 훈련의 중요성을 누구나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가장 하기 싫어하는 훈련도 역시 러닝이다. 그러나 삼성은 유독 러닝 훈련 때 미소를 짓는 선수들이 많다.

코야마 코치에게 가장 먼저 그 비결을 물었다. 유쾌한 한국어로 곧장 답변이 돌아왔다. “모두 내가 왜 오늘 이만큼 뛰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알고 뛴다.”

코야마 코치는 사실 한국에 처음 왔을 때 두 가지 이유로 깜짝 놀랐다고 했다. 첫 번째는 한국 프로야구 선수들의 실력이 굉장히 뛰어나서, 두 번째는 선수단을 뒷받침하는 시스템이 너무 뒤처져 있어서다.

코야마 코치가 가장 먼저 바꾸기 위해 노력한 점은 선수 각각에게 맞는 훈련 스케줄 작성, 그리고 시작하기에 앞서 충분한 설명이다. “그래서 한국말도 열심히 배웠어요. 선수들에게도 언제든지 물어보라고 그랬습니다. 내가 왜 오늘 이만큼 뛰는지, 왜 이 거리에서 던져야 하는지. 모두 부상방지를 위해 포지션부터, 출장일정까지 철저한 계산 끝에 작성된 스케줄이란 점을 자세히 설명하자 자기관리가 뛰어난 프로선수들이라서 적극적으로 훈련에 참여하기 시작했습니다. 정말 고마웠습니다.”

코야마 코치는 일본에서 고등학교 때까지 야구를 했다. 포지션은 유격수로 지금도 선수들 훈련을 돕다 종종 수준급 수비를 선보이기도 한다. 고교를 졸업한 후 프로선수의 꿈을 접고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템플대에서 체육학을 전공했다. 그리고 메이저리그 구단에서 연수를 받으며 ‘즐거운 훈련’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트레이너의 역할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선수가 즐겁게 훈련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도 고교 때까지 야구를 했지만 사실 훈련은 정말 고되고 하기 싫잖아요. 그래서 항상 곁에서 분위기를 밝게 만들기 위해 노력해요. 선수들이 제 한국말을 알아듣기 시작하면서 농담도 많이 해요. 특히 재활은 더 고통스럽죠. 배영수 선수가 수술을 받은 후 1년간 경산에서 함께 있었어요. 어떻게 하면 웃길까? 그런 고민을 매일 아침 했습니다.(웃음)”

코야마 코치는 비 시즌 기간에 일본과 미국의 각종 트레이닝 관련 세미나에 참석한다. 그리고 비타민과 마그네슘이 함유된 음료수, 피로회복에 도움을 주는 각종 건강식품까지 꾸준히 챙긴다.

문학에서 2패를 당하고 홈으로 돌아온 날 코야마 코치는 선수들의 훈련이 모두 끝날 때까지 그라운드를 지켰다. 그리고 묵묵히 훈련도구를 챙기며 말했다. “모두들 얼굴을 찡그리며 힘든 걸 꾹 참고 열심히 했어요. 그 만큼 노력했으니까 마지막에는 꼭 웃었으면 좋겠습니다.”

대구 | 이경호 기자 rush@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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