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희기자의 광저우 에세이] 16세 다이빙소녀 김나미의 눈물 “손가락이 부서져도 뛰려 했는데…”

입력 2010-11-23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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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빙대표팀 김나미(왼쪽)가 손가락 골절에도 대회 출전을 강행했지만 결국 1차시기 만에 눈물을 흘리며 경기를 포기했다. 같은 경험이 있는 이종희 코치는 그런 김나미의 모습이 안타깝기 그지없다.  광저우(중국) | 전영희 기자 setupman@donga.com

 다이빙대표팀 김나미(왼쪽)가 손가락 골절에도 대회 출전을 강행했지만 결국 1차시기 만에 눈물을 흘리며 경기를 포기했다. 같은 경험이 있는 이종희 코치는 그런 김나미의 모습이 안타깝기 그지없다.  광저우(중국) | 전영희 기자 setupman@donga.com

그렉 루가니스(50·미국)를 기억하십니까? ‘다이빙 황제’로 불리며 올림픽에서만 4개의 금메달을 목에 건 선수입니다. 1988서울올림픽 전부터 그는 뛰어난 실력과 준수한 외모로 주목을 받았지요.

하지만 대회 중 또 하나의 신화를 씁니다. 예선 경기에서 다이빙 보드에 뒤 머리를 부딪치는 사고를 당한 뒤, 4바늘을 꿰매고 결선에 출전한 것이지요. 결과는 금메달이었어요. 올림픽 역사상 손꼽히는 투혼의 장면입니다.

물론 실력이야 루가니스에 못 미치지만, 한국 다이빙에도 눈물겨운 투혼을 써내려가는 다이빙 선수가 있습니다. 22일 싱크로 3m 스프링보드에 출전한 김나미(16·서울체고)의 이야기입니다.

18일이었습니다. 광저우 출국을 하루 앞두고, 마무리 훈련이 한창이었지요. 멋지게 날아올라 입수한 김나미의 표정이 굳었습니다.

큰 대회를 앞두고 긴장한 탓이었을까요? 입수 순간, 양 손을 모으는 동작에서 손이 꼬여 버렸대요. 엄청난 수압을 견디지 못하고 오른손 4번째 손가락 골절상을 당했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손은 퉁퉁 부어올랐습니다.

어찌 보면, 루가니스보다 더 안 좋은 조건이지요. 다이빙 선수에게 손은 ‘깨끗한 입수’를 위해 가장 중요한 신체부위거든요. 3m 스프링보드 위에서 뛰어오르면 여자선수들은 약 5m까지 공중에 떠있습니다. 그 엄청난 위치에너지가 운동에너지로 전환되면서 물 속으로 들어가는 장면을 떠올려 보세요. 수압 때문에 편치 않은 손이 남아날 리가 없지요.

긴급회의가 소집됐습니다. 대체 선수를 물색하기도 했지요. 하지만 김나미가 가만있지를 않았습니다. “저, 꼭 뛰고 싶어요. 괜찮아요. 내보내 주세요.” 관계자들도 두 손을 들었습니다. 결국 김나미는 반 깁스 상태로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광저우에 와서도 제대로 된 훈련은 하지 못했어요. 트램펄린 위에서 하는 지상훈련에 초점을 맞출 수밖에 없었습니다. 운동을 할 때면, 팔꿈치 근처까지 올라와 있는 깁스를 풀고 테이핑을 했지요. 22일 광저우 아오티아쿠아틱센터. 경기 전 몸을 풀고 있는 김나미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가만히 있어도 아파요. 무서워요. 물에 들어가면 아플 것 같아요.” 이 때만큼은 여린 16세 소녀의 모습이었습니다. 당장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만 같더라고요. “다치지만 말라”고. “응원 하겠다”고. 그것이 해줄 수 있는 얘기의 전부였습니다.

하지만 김나미는 다시 입술을 굳게 다뭅니다. “그래도 뛸 거예요. 어떻게 준비 했는데요…. 꿈이 있거든요.”

하루 7시간의 훈련을 견뎌냈답니다. 옆에서 바라보는 이종희(36) 코치도 안쓰럽기만 합니다. 본인도 1990베이징아시안게임에서 왼 손목 골절도 개의치 않고 경기에 나섰거든요. 그 때 그의 나이도 지금 김나미와 같은 16세였습니다.

결국 김나미는 1차시기를 마친 뒤, 펑펑 울며 경기를 그만 둘 수밖에 없었습니다. 도저히 5번을 뛸 수가 없었대요. 파트너였던 “(이)예림(19·대전광역시체육회) 언니와 코치 선생님께 더 죄송하다”며 울먹입니다.

2008베이징올림픽 남자역도에 출전해 부상투혼을 발휘했던 이배영(아신시청)은 이런 얘길 한 적 있어요. “아파도 한 번이라도 경기를 하는 것과 안 하는 것은 다르다”고요.

당장에는 메달을 걸 수 없지만, 먼 훗날 지금의 자신에게 박수를 보낼 수 있기 때문이랍니다. 미래의 김나미 대신, 지금은 우리가 박수를 보내줘야 할 때인 것 같습니다.

광저우(중국) ㅣ 전영희 기자 setupman@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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