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세 조인성, 다시 뛰는 야구심장 “골든글러브 받고 불효를 깨달았다”

입력 2010-12-15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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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데뷔 13년만의 첫 영광. 기다림이 길었던 만큼 기쁨도 컸지만 부모님을 떠올린 그는 오히려 ‘죄송하다’고 했다. LG 조인성이
 11일 골든글러브 시상식에서 황금장갑을 품에 안고 수상 소감을 밝히고 있다. 국경원 기자 onecut@donga.com

프로데뷔 13년만의 첫 영광. 기다림이 길었던 만큼 기쁨도 컸지만 부모님을 떠올린 그는 오히려 ‘죄송하다’고 했다. LG 조인성이 11일 골든글러브 시상식에서 황금장갑을 품에 안고 수상 소감을 밝히고 있다. 국경원 기자 onecut@donga.com

성적부진·팬들 혹평에 자신감 잃고 지내
부모님 행복한 표정…그동안 뭐했나 싶어



“골든글러브 포수 부문, LG 트윈스 조인성!”

가슴이 뻥 뚫렸다. 꿈에 그리던 황금장갑. 가슴에서 갑자기 마그마처럼 뜨거운 기운이 솟구쳤다. 그 기운은 목구멍을 타고 올라왔다. 눈시울이 붉어졌고, 입술이 떨렸다. 그리고 목이 메었다.

LG 포수 조인성(35). 1998년 프로 데뷔 후 13년 만에 처음 골든글러브를 가슴에 품었다. 그는 최근 수년 사이 LG의 성적부진 원흉으로 지목됐고, 팬들조차 ‘조바깥’이라며 비아냥거렸다. 그러나 시련을 딛고 2010년 마침내 대한민국 최고 포수로 인정받았다. 야구인생의 절벽에 마주섰던 그로서는 더더욱 감격스러운 골든글러브였다.


○“아버지, 어머니, 죄송합니다”

황금장갑을 받는 순간 눈물이 왈칵 솟구쳤던 건 그만이 아니었다. 연로하신 아버지 조두현(75) 씨와 어머니 김명옥(67) 씨는 집에서 조용히 눈물을 훔쳤다.

아들의 골든글러브 수상을 확신하지 못한 까닭에 시상식장에도 가지 못하고 가슴 졸이며 TV로 지켜보신 부모님. 아버지는 ‘아들 자랑스럽다. 고맙다’며 휴대폰 문자로 축하인사를 전했다.



아들은 지인들과 축하파티를 한 뒤 밤에 집에 들어갔다. 어머니는 “눈물이 난다”며 아직 장가를 가지 않은 외아들을 끌어안았다.

수유초등학교 3학년 때 야구를 시작한 뒤 청소년대표, 국가대표를 거치며 항상 태극마크를 달았던 아들은 언제나 부모님의 자랑이었다. 아들이 야구하는 날, 부모님은 하루도 빠짐없이 야구장에 와서 응원했다.

그러나 최근 몇 년간 그가 팬들에게조차 혹평에 시달리면서 부모님은 야구장 발길을 끊었다. 어느 순간부터 아버지의 어깨가 처치기 시작했다.

“골든글러브를 받고 나니 기분이 좋았지만, 부모님을 보는 순간 오히려 마음이 아프더라고요. 부모님께서 주위의 축하전화를 많이 받으셨나 봐요. 골든글러브 하나에 이렇게 좋아하시는데, 너무 행복해하시는데, 그동안 내가 뭐했나 싶더라고요.”

그는 1남2녀 중 막내다. 위로 누나 둘은 다 시집을 갔다. 그는 결혼생각이 없는 것일까.

“솔직히 그동안 여자를 만나기가 부담스러웠어요. 여자가 나에 대한 좋지 않은 평가나 악플을 볼까봐 걱정돼서…. 이젠 여자를 만날 수 있을 것 같아요. 부모님도 결혼하라고 하시니, 효도해야죠.”
조인성은 포수로는 사상 처음으로 100타점 고지를 넘어서는 등 올 시즌 빼어난 투수 리드 뿐만 아니라 화끈한 방망이 실력도 과시했다. 스포츠동아DB

조인성은 포수로는 사상 처음으로 100타점 고지를 넘어서는 등 올 시즌 빼어난 투수 리드 뿐만 아니라 화끈한 방망이 실력도 과시했다. 스포츠동아DB



○새로 얻은 심장, 다시 도전이다

LG는 2003년부터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하고 있다. 그도 매년 2군행을 경험했다. 나름대로 엘리트의 길을 걸었던 그였기에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다. 감독들과 팬들의 혹평. 주위에는 이상한 소문이 돌아 그의 귀에 다시 돌아오기도 했다.

“당시에는 야구장에 가는 게 힘들었어요. 자신감이 자꾸 떨어지더라고요. 포수 자리에 앉는 것 자체가 두려웠어요.”

그는 스스로를 돌아봤다. 서효인 배터리코치는 “책임을 돌리지 말고, 핑계대지 마라. 모든 걸 내 탓이라고 생각하라”고 채찍질을 했다. 전력분석팀 김준기 과장의 도움을 얻어 그는 야구공부에 매달렸다.

하루 3번씩, 매일 같이 전력분석에 시간을 투자했다. 가장 먼저 야구장을 나와 상대팀 타자를 분석했고, 훈련 후 경기 직전에도 또 분석했다. 그리고 경기 후 귀가를 미룬 채 또 분석했다.

“저는 절실했거든요. 저를 믿어주신 감독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싶었어요. 나에 대해 색안경을 끼고 보는 시선, 나에 대한 세상의 편견을 이겨내고 싶었어요.”

그는 국내 최고 포수라는 평가를 듣는 SK 박경완은 물론 후배들의 볼배합과 경기운영도 유심히 지켜봤다.

“상대포수의 좋은 건 다 받아들이자 생각했죠. 선배고 후배고 뺏어낼 것은 다 뺏어내자 생각했어요.” 그러면서 포수로서 시야가 더 넓어졌고, 자신감도 생겼다. 개막 후 방망이도 불이 붙었다.

한마디로 ‘그분이 오셨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타격이 만개했다. 스스로도 ‘체력부담이 많은 자리여서 5월이면 페이스가 떨어지겠거니’ 했지만 한번 찾아온 ‘그분’은 시즌 끝까지 사라지지 않았다.

우리나이로 36세. 뒤늦게 야구에 눈을 뜬 게 후회될 정도지만, 이제 야구가 너무 재미있단다. 비시즌인 지금 이 순간도 그는 “야구를 하고 싶어 미치겠다. 빨리 시즌이 왔으면 좋겠다”며 ‘황금미소’를 지었다.

“올해부터 타격할 때는 안경을 썼어요. 난시가 있었거든요. 그런데 집중력이 좋아지더라고요. 올 시즌에 많은 것을 준비했는데, 안경도 그 중 하나죠. 야구만 잘할 수 있다면 합법적인 거라면 뭐든지 찾고 싶어요. 솔직히 지방흡입수술까지 하고 싶은 심정이에요. 한때는 ‘왜 내가 포수를 했나’ 후회도 했어요. ‘유니폼을 벗어야하나’ 고민도 했어요. 그런데 골든글러브를 타고 나니 ‘이 맛에 야구를 하는구나’, ‘그동안 골든글러브 수상자도 이런 기분이었구나’ 느껴지더라고요.”

그는 올해를 ‘야구인생의 전환점’이라고 했다. 그리고 내년 시즌을 ‘수성’이 아닌 ‘도전’이라고 규정했다. 서른다섯에 새롭게 얻은 붉은 심장은 뜨겁게 박동하고 있다.구리 | 이재국 기자 keystone@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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