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레이 인터뷰] 정성훈이 이숭용에게 묻다

입력 2011-02-14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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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숭용하면 연상되는 이미지는 ‘남자다움’이다. 선수로서 선 굵은 야구를 해왔고, 캡틴으로서 후배들을 잘 이끌어 온 덕분이다. LG로 떠난 정성훈이 아직도 이숭용을 잊지 못하는 것도 그런 매력을 체험했기 때문일 것이다. 스포츠동아DB

Q1.캠프서 꼭 혼자 식사하던데 이유는?
“웃으며 밥먹고 싶은데 후배들이 날 피하네”

Q2. 무서운 캡틴인 거 형도 아시죠?
무게만 잡는 스타일 아닌거 잘 알지?
나도 알고 보면 부드러운 남자라고!

Q3. 불혹의 현역선수…장수비법은?
솔직히 힘들어도 즐기는 수 밖에 없어
나이가 먹을수록 매 순간이 중요하지
■ 에피타이저

정성훈(31·LG)과 이숭용(40·넥센)은 9년차 선후배지만, 각별한 사이다. 정성훈이 KIA에서 현대로 트레이드 된 2003년은 ‘영원한 캡틴’으로 불리는 이숭용이 처음 주장완장을 찬 해였다. 이숭용은 정성훈을 친동생처럼 다독이며 새 팀에 적응하는데 큰 도움을 줬고, 정성훈 역시 이숭용을 잘 따랐다. 2008시즌 직후 정성훈이 LG로 이적하면서 소속팀은 갈리게 됐지만, 둘의 우애만큼은 변함이 없다. 한편 이숭용은 1998년 자신의 생애 첫 한국시리즈 우승 순간을 함께 했던 SK 김경기(43) 코치를 다음 인터뷰 대상자로 지목했다.



● 정성훈이 이숭용에게

평소 남들 앞에서는 선배님이라고 부르지만, 여기서는 그냥 하던 대로 편하게 형이라고 할게요. 2003년 현대에 가서 숭용이 형을 처음 만났으니까 올해 벌써 9년째네요. 처음엔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선배는 아니었어요. 그때 제가 형을 찾아가서 “잘 부탁드립니다”라고 인사했는데, 사실 제가 어디 가서 그런 말 하는 성격은 아니거든요. 아마 그땐 저도 살기 위해 그랬던 모양이에요. 하하하. 형을 생각하면 항상 고마운 기억밖에 없어요. 유난히 잘 챙겨 주시고…. 우리 만나면 생긴 거하고는 달리 밥 먹고 커피 마시면서 서너 시간쯤은 가볍게 수다를 떨잖아요. 형은 항상 쓴소리 잔소리 하시고. 다 저 잘 되라고 하시는 말씀인 거 알아요. 저는 일본 오키나와에서 훈련하고 있습니다. 플로리다 날씨는 좋아요? 연세도 있으신데 건강 잘 챙기세요.


● 이숭용이 정성훈에게

이제 와서 하는 얘기지만, 네가 트레이드 됐을 때 당시 KIA에서 뛰던 최상덕(넥센 코치)·가내영(제물포고 감독·이상40)에게서 전화를 받았어. 하나같이 “성훈이 좀 잘 봐 달라”고 하더라고. 그 때 알았지. ‘이 녀석이 KIA에서 행동을 잘 했구나.’ 네가 나에게 고맙다고 하지만, 나도 고마운 기억이 있어. 몇 년도였는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삼성과의 경기였던 것 같아.(2007년 5월25일 수원 삼성전 2-2로 맞선 연장11회말) 1사 만루에서 내가 3루주자였는데 (김)동수(넥센코치) 형이 끝내기 안타를 쳤거든. 난 너무 좋아서 두 손을 들고 천천히 뛰었는데 홈 플레이트를 밟자마자 네가 그러더라. “선배님, 뭐하세요. 정신 좀 차리세요.” 솔직히 그 때는 화가 났어. ‘어린 녀석이 선배에게 무슨 얘길 하는 건가….’ 그런데 그 날 TV로 하이라이트를 보니, 등에서 식은땀이 줄줄 흐르더라. 만약 홈으로 송구가 제대로 됐다면 난 포스아웃이었어. 부끄럽고 미안하고, 또 너에게 고맙더라. 다음 날 내가 너에게 사과를 했었는데 기억할지 모르겠다. 9년 후배지만 그 때 참 네가 어른스러워보였다. 내게 ‘야구는 끝나기 전까지는 끝난 게 아니라’라는 것을 가르쳐줬으니…. 플로리다 날씨는 생각보다 너무 좋아.네 말대로 연세(?)가 있으니 건강 잘 챙길게. 고맙다.

-예전부터 의문이 있었어요. 캠프에서 꼭 혼자 밥을 먹더라고요. 왜 그렇게 힘들게 주장을 맡아 가지고…. 주장은 그래야 하나요? 후배들하고 같이 밥도 먹고 부드럽게 할 수도 있잖아요.

“주장이라서 그런 것은 아니고…. 애들이 나를 피해. 내가 좀 무서운 가보다. 나도 후배들이랑 웃으며 밥 먹고 싶은데 애들이 내게 오질 않는데 어쩌겠니. 너도 손가락 부러졌냐? 전화 좀 하고 살자. 나이 먹으면 잘 삐치고, 삐치면 오래간다.(웃음) 내가 주장을 좋아 한다기보다는,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인데 내게 기회가 자주 왔을 뿐인 것 같아. 생각해보니 초등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때도 모두 주장을 했네. 내가 무게만 잡는 성격이 아닌 것은 너도 잘 알지? ”


-형은 어릴 때 정말 야구 못했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형 말대로라면 그 실력으로 어떻게 이 나이까지 버티고 있는지 궁금해요. 어떻게 관리하고, 어떻게 버티고 있어요? 나이 들어서 야구하는데 가장 힘든 게 뭔지 궁금해요.

“난 지금까지도 내가 야구를 잘 한다고 생각해 본 적이 단 한번도 없어. 나도 이 나이까지 하려니까, 솔직히 힘들어 죽을 것 같지. 그래도 버티는 것은 아니야. 즐기는 거지. 나이를 한 살 한 살 먹다보니 내가 정말 좋아하는 야구를 그만둬야 하는 시간이 다가온다는 것을 느끼거든. 그러니 매 순간이 소중해. 너도 이 마음을 이해할 날이 올 거다. 나이 들어서 야구를 하면, ‘선입견’과 싸우는 것이 제일 힘들어. 어린 선수가 슬럼프에 빠지면 ‘성장통’이라고 생각하지만, 노장이 그러면 ‘이제 끝났다’고 생각하지. 그래서 더 열심히 해야 해.”


-형 덩치만 보면 홈런타자잖아요. 왜 덩치에 안 맞게 컨택만 해요? 하하하. 그리고 형은 치다가 파울이 날 때 항상 맞는 데만 맞는지 모르겠어요.

“나도 홈런 많이 치려고 엄청 노력을 했어. 그래도 안 되는 것을 어쩌겠냐.(이숭용의 시즌최다홈런은 2002년 19개) 나도 많이 답답했어. 하지만 사람마다 잘 할 수 있는 부분이 다른 법이잖아. 그래서 2000년 이후에는 중·장거리 타자의 길을 택했지. ‘왜 맞는 부위(오른쪽 복사뼈)만 맞느냐’고? 약올리냐?(웃음) 아마 스윙의 문제겠지. 타이밍이 늦으면 배트 밑 부분에 공이 맞으니까. 그 부분은 하도 맞아서 이제 감각도 없다.”


-가끔씩 저를 쥐어박고 싶었을 텐데, 형 성격에 어떻게 참았어요?

“참았다기보다는 너는 놓아둘 때 더 잘하는 녀석이란 것을 알았기 때문이지. 너는 얼핏 보면 운동을 대충대충 하는 것 같아도, 열정만큼은 누구 못지 않잖아. 네 스스로 깨닫고 움직여주길 바란 것이지. 너에 대해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바로 너 자신이니까.”


-형을 보면 신기한 게 있어요. 개개인을 정말 잘 파악해요. 사람을 넌지시 보면서 귀신 같이 알아차리잖아요. 신이 내린 건지, 아니면 훈련을 따로 하는 건지…. 언제부터 그랬어요?

“이제 와서 하는 이야기지만, 2003년에 처음 주장을 맡고 나서 정말 많은 노력을 했어. 후배들에게 무섭게도 해 보고, 또 농담도 해보고…. 사람은 모두 다르잖아. 후배들 개개인의 성격을 잘 알아야 맞춰갈 수가 있거든. 나는 인간관계는 비즈니스가 아니라고 믿어. 진심은 통한다고 하잖아?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야지. 나도 그랬던 선배들이 더 많이 기억에 남아.”


-저보고 항상 ‘LG 가더니 변했다’고 그러시는데, 정말 형한테 그 얘기는 듣고 싶지 않거든요. 도대체 뭐가 변했다는 거예요?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봐. 변한 게 없는지.(웃음) 사실 좋은 의미에서 한 말이야. 너도 이제 나이도 있고, 고참급이라서 그런지 더 책임감을 갖는 것 같아. 만약 선배가 똑바로 하지 않으면 후배들도 따라하거든. 백 마디 말보다 몸소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 진짜 리더십이지. 네가 그런 것을 알아가는 것 같아 한 말인데…. 마음이 많이 쓰였다면 이제 안 해야겠다.(웃음)”


-이제 야구할 날도 얼마 남지 않았잖아요. 어떻게 생각하고 있어요? 슬슬 미래에 대해서도 준비하고 있어야할 텐데….

“이제 네가 날 완전히 보내는구나.(웃음) 올해가 될지, 내년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만 둘 시점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은 느껴. 나 나름대로 잘 준비하고 있다고는 생각하지만, 나도 솔직히 ‘걱정 반, 기대 반’이야. 성훈아 나도 내 미래가 궁금하다. 전에도 얘기했듯,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지도자가 되는 것이 목표라면 목표지.”


● 이숭용은?

▲ 생년월일=1971년3월10일
▲ 학교=용암초∼중앙중∼중앙고∼경희대
▲ 키·몸무게=185cm·86kg(좌투좌타)
▲ 프로 데뷔=1994년 태평양 2차 지명(프로18년차)
▲ 2011년 연봉=1억7000만원
▲ 통산성적=1913경기 5993타수 1690안타(타율 0.282) 162홈런, 845타점
▲ 2010년 성적=124경기 326타수 90안타(타율 0.274)

정리|이재국 기자 keystone@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세인트피터스버그(미 플로리다주)|전영희 기자 setupman@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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