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커버스토리]정일우 “‘배우 100배 즐기기’ 비법 공개합니다”

입력 2011-03-24 15:2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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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아닌 스케줄러 역, 촬영하면서 스트레스 풀려
●연극 무대 오르며 예뻐 보이려던 습관 버려
●공백기 동안 작은 일에 동요하지 않고 중심 잡는 법 배워
3일 연속 밤샘촬영을 하고 인터뷰에 응했다. 인터뷰를 강행한 이유를 묻자 피곤함을 감추려는 듯 싱글벙글이다.

"촬영 전에 느끼는 점과 촬영 중에 느끼는 점이 달라요. 촬영 후에 느끼는 것은 또 다르고요. 그 때 그 때의 저를 실시간으로 전하고 싶었어요."

배우 정일우(24)가 돌아왔다. 정확히 말하면 변했고, 돌아왔다.
배우 정일우가 SBS \'49일\'에서 현대판 저승사자, 일명 \'스케줄러\'로 돌아왔다. 사진=변영욱 기자 cut@donga.com

배우 정일우가 SBS \'49일\'에서 현대판 저승사자, 일명 \'스케줄러\'로 돌아왔다. 사진=변영욱 기자 cut@donga.com


2006년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에서 반항아 정윤호 역을 맡아 블루칩으로 떠오른 그는 이후 잊혀지지 않을 정도로만 작품에 출연했다. 2007년 '내사랑'(영화), 2009년 '돌아온 일지매' '아가씨를 부탁해'(드라마)가 필모그래피의 전부다.

그리고 "앞으로는 공백기를 최대한 줄이겠다"는 다짐과 함께 SBS 수목드라마 '49일'로 돌아왔다. "데뷔 6년 차, 초심으로 돌아갔다"는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나와 가장 잘 맞는 역 찾다 '스케줄러'를 만났다"

-방송을 본 소감은?

"재밌었어요. 촬영하는 것 자체도 재밌었고 기대도 많이 했었고요."

'49일'은 뇌사 상태에 빠진 신지현(이요원 남규리 분)이 깨어나기 위해 가족을 제외한 세 사람의 진심어린 눈물을 찾아다니는 내용의 판타지 멜로물이다. 그는 영혼을 사후 세계로 인도하는 '스케줄러'를 맡아 이승과 저승 사이에서 신지현을 돕는다.

-기대만큼 나왔나요?

"그냥 열심히 촬영했어요. 흐흐"

-리뷰를 챙겨보겠다고 했었어요.

"밤샘촬영하느라 많이는 못 봤어요. 팬들이 올린 글들을 자주 보는 편인데 난간신 클럽신 진짜 직접 한 것 맞느냐고 물어보는 글이 많았어요."

-와이어 없이 42층 건물 옥상 난간에 앉아서 기타를 쳤다고 들었어요. 지붕 위에 올라가서 찍은 장면도 있고요. 무섭지 않았나요?

"고소공포증이 없어서 괜찮아요. 어디 올라가 있는 건 잘해요. 오히려 날씨가 추워서 힘들죠. 클럽신은 원래 남들 앞에서 춤추고 노래하는 걸 굉장히 못하는데 '미친 척하고 하자'고 덤볐어요. 노래하신 분들이 인디 밴드 브리즈밴드인데 유명하신 분들이에요. 촬영 전에 음악을 미리 받아서 듣긴 했는데 제가 워낙 춤이랑 멀다보니 어떻게 춤 춰야 하는지 모르겠더라고요. 하하"

-1년 5개월만의 복귀입니다. 스케줄러 역을 선택한 이유는요?

"공백기간 동안 가장 고민했던 게 나랑 잘 맞는 역, 내가 잘 할 수 있는 역이 무엇인가였어요. 아무래도 밝은 캐릭터를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더라고요. 스케줄러는 저와도 잘 맞는 것 같고 캐릭터가 워낙 매력적이라 택했죠."
정일우는 "지난해 연극 무대에 오를 때 관람온 팬들에게 연기평을 물어보고 대화하며 벽을 허물고 가까워진 것 같다"고 말했다. 사진=변영욱 기자 cut@donga.com

정일우는 "지난해 연극 무대에 오를 때 관람온 팬들에게 연기평을 물어보고 대화하며 벽을 허물고 가까워진 것 같다"고 말했다. 사진=변영욱 기자 cut@donga.com


정일우는 "스케줄러의 첫 인상은 냉혈아"였다며 "그런데 그렇게 가면 캐릭터가 재미없을 것 같아서 공과 사를 구분해 입체적으로 표현하고자 했다"고 했다.

"일 할 때는 일 하고, 풀어질 때는 확 풀어지고 욱 할 때는 확 욱 하고, 그러면서도 자기 할 말은 하는 친구로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일 할 때와 사적일 때 대사 톤도 달리하죠. 일할 때는 단호하고 저음을 내요."

-1회 첫 장면에서 기타를 치고 있었습니다. '거침없이 하이킥' 이후로 오토바이도 다시 타고요.
"기타는 드라마를 위해 배웠어요. 1회에서 잠깐 보여드렸는데 앞으로도 보여드릴 예정이고요. 오토바이는 굉장히 오랜만에 탔죠. '하이킥' 하면서 배웠는데 원래 오토바이는 위험해서 싫어하거든요. 어렸을 때 제일 친한 친구가 오토바이 타다 식물인간이 된 이후로 되도록 조심하려는 편이에요. '하이킥' 때도 오토바이 타다 다칠 뻔했고 이번 촬영도 위험한 순간이 있었고요. 촬영 이외에는 절대 타지 않아요."

-스케줄러여서 좋은 점이 있다면?

"우선 '사람'이면 나이 직업 성격적인 제한이 있는데 스케줄러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휙 사라졌다가 나타날 수도 있고 막 웃다가 화낼 수도 있고요. 모든 걸 할 수 있는 존재니 감독님도 더, 더, 더 표현하라고 주문하시죠."


▶"화려함 강조한 헤어스타일과 의상, 결정하는 데 한 달 걸려"

-헤어스타일과 의상도 화제입니다.

"지금까지 많은 분들이 생각하시던 저승사자와 180도 다른 역이라 옷이랑 헤어스타일이 더욱 중요했어요. 대본 받자마자 회의를 시작해서 한 달 정도 고민했죠. 우선 화려해야 한다는 게 중심이었어요."

정일우는 평소 패션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유명하다. 그래서인지 의상과 헤어스타일 이야기가 나오자 목소리도 손동작도 커졌다.

"(베이비퍼머를 한 것 같은 갈색 웨이브) 헤어스타일은 잡지 만화 스타일북 등을 참고했어요. 만화 '둘리'의 마이콜 머리에서도 힌트를 얻었죠. 후보를 정해서 머리를 직접 해보고 사진찍어서 사무실에 가서 의논하고 다시 해보고 그런 과정을 거쳐서 이 머리로 확정했어요. 자세히 보시면 색도 투톤이에요. 겉만 갈색으로 염색했는데 '어, 머리색이 이상하네?'라고 알아챌 정도만 염색했죠."
사진=변영욱 기자 cut@donga.com

사진=변영욱 기자 cut@donga.com


'꽃보다 남자'의 구준표가 소라빵 머리로 유명했던 것처럼 애칭이 있으면 좋겠다고 했더니 "맞다. 그것도 정해야겠다"며 고민에 빠졌다. 헤어스타일 정하는데 한 달 걸렸다더니 애칭도 쉽게 정하지 못한다. 결국 과제를 받은 아이의 얼굴로 "아이디어 내볼게요" 웃는다.

-의상이 정말 화려하던데요.

"화려하게 보여야 하니까요. 마침 올해 트렌드가 컬러풀해요. 스케줄러의 임무를 수행할 때는 어두운 의상을 선보이지만 가벼운 분위기에서는 의상도 빨강 파랑으로 튀게 했어요. 스타일리스트하고 같이 쇼핑하러 다니고 제 의상도 종종 입죠. 그동안 작품에서 몸에 딱 붙는 옷을 입은 적이 없었는데 '49일'에서 처음으로 몸 라인을 보여주고 있어요. 평상시에 저도 피트한 옷을 즐겨 입어요."

"타이트한 옷을 입느라 다이어트를 해 6kg 뺐다. 지금도 식단 조절하고 있"단다. 작품 시작했으니 빠듯한 스케줄에 저절로 살이 빠질텐데 의아했다.

"저는 이상하게 드라마가 진행될수록 살이 쪄요. 스트레스 받으면 먹는 편이라 그런 것 같아요. (김)범이나 (이)민호는 작품만 하면 홀쭉해져서 돌아오는데, 부럽다고 하면 범이랑 민호는 쓰러질 것 같다. 입맛도 없다며 타박했어요. 그런데 이번에 제가 그러네요."


▶"어머니에 대한 기억은 죽어서도 잃고 싶지 않아"


-스트레스가 덜하다는 것인가요?

"네. 우선 촬영장 분위기가 정말 좋아요. 큰 소리도 안나고 배우들끼리도 편하고요. 특히 배우들끼리 기 싸움이 없어서 좋아요. 그리고 작품 준비하면서 스트레스를 받더라도 촬영하면서 해소되고요. 춤을 못 추는데 춰보니 스트레스가 풀리기도 하고 옥상에 올라가는 장면도 혼자 찍었거든요. 혼자 옥상에서 바람쐬고 음악듣고 그러면서 스트레스가 풀려요. 극중 스케줄러가 100배 즐기기 하는 것처럼 저도 '촬영현장 100배 즐기기' 하는 기분이에요. 그러다보니 편하게 연기할 수 있어요. 모니터하면 제가 찍었는데도 손발이 오그라들 때가 있고 편하게 볼 때가 있거든요. 이번 드라마는 그래도 편하게 보는 편인 것 같아요. 정일우스러운 연기인 것 같고요."

-그러고보니 일우 씨는 촬영장에서 예민하다는 소문이 있었어요.

"'정일우 까칠하다'는 소문은 저도 들었어요. '거침없이 하이킥' 당시에는 교통사고를 당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매일 밤샘촬영이 이어졌어요. 힘든데 평소에 제가 잘 웃지 않는 편이라 건방져 보일 수 있을 것 같아요. '돌아온 일지매'는 정극 첫 데뷔이고 제가 주인공이다보니 책임감이 굉장히 컸어요. '아가씨를 부탁해'는 캐릭터 잡기가 어려웠고요. 그런 시행착오들을 겪고 공백을 가지면서 마음을 비우게 된 것 같아요. 그 전에는 두려움이 많았다면 지금은 많이 편해졌어요. 사람을 대할 때도 솔직하려고 하고요."

-'하이킥' 이후에는 반항아, '아가씨를 부탁해' 이후에는 어두운 역이 많이 들어왔다고 들었어요. '49일' 이후에는 어떤 이미지가 생기면 좋겠나요.

"아바타 같은 이미지만 아니면 좋을 것 같아요. 하하. 밝은 역을 하고 싶어서 스케줄러를 맡은 만큼 밝은 이미지로 기억되면 좋겠어요. 앞으로 2, 3년 동안은 밝은 역 하고 싶고요."

-'49일'은 결국 죽음에 대한 이야기에요. 스케줄러 대사에 죽으면 전생의 기억을 모두 잃는다는 것이 있었는데, 죽어서도 잃고 싶지 않은 기억이 있다면?

"어머니가 어디가서 어머니 이야기 하지 말라셨는데…. 그래도 어머니요. 제가 유치원 다닐 때 어머니가 유학가시느라 3년 정도 떨어져 지냈는데 많이 그리웠어요. 그래서 지금도 제가 애정결핍같은 게 조금 있는데…. 어머니는 지금도 그 때를 가장 미안해하세요."

-만약 내가 신지현의 상황에 처한다면 '절친'으로 알려진 배우 김범과 이민호, 손자처럼 아껴주시는 나문희 선생님이 나를 위해 세 방울의 눈물을 흘릴 것 같다고 밝혔습니다. 반대로 누군가를 위해 진심어린 눈물을 흘린 적이 있나요.

"소중한 사람들이 내 곁을 떠난다면 언제나 눈물을 흘리겠죠. 최근에는 지난해 6월 배우 박용하가 자살했을 때 굉장히 마음이 아팠어요."

정일우가 '돌아온 일지매'를 촬영하고 있을 때 박용하는 '남자이야기'에 출연 중이었다. 정일우는 "용하 형과 활동 시기가 겹치면서 어울리게 됐고 친해졌다"고 말했다.


▶ "올해 안에 두 작품 더, 저 오버하나요?"


-6년 차 배우입니다. 배우하기 정말 잘했다 싶은 순간이 있다면?

"예전에는 길거리에서 사람들이 알아볼 때라고 답했던 것 같아요. 지금은 저를 보면서 용기생겼다 힘얻었다 하는 분들을 볼 때요. 배우가 아니었다면 난 뭐했을까 생각해보면 생각나는 게 없어요. 그만큼 잘 선택한 것 같아요."

-반대로 후회했던 순간이 있나요?

"공백기에 사람들이 언제 나오냐고 물어볼 때는 조금 힘들었지만 후회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어요."

-지난해에 연극 '뷰티풀 선데이' 무대에 섰습니다. 연극 경험 전후의 배우 정일우는 어떻게 달라졌나요.

"나문희 선생님께서 연기하면서 예뻐 보이려고 하지 말라고 하셨었어요. 제가 연기할 때 머리카락이 내려오면 손가락으로 올리는 버릇이 있었거든요. 머리카락 한 올이 나온 것도 못 참고 카메라에 내가 어떻게 잡힐까도 항상 신경써서 얼짱 각도로 찍히려했죠. 그랬는데 연극하면서 놓게 됐어요. 관객들 바로 앞에서 소통해야 하고 NG를 낼 수도 없죠. 그러다보니 제 버릇 때문에 제가 연기에 몰입하기 힘들 수도 있고 관객들의 몰입을 방해할 수도 있는 거예요. 그래서 잔동작들을 최소화했어요. 요즘 제 연기를 모니터해 보면 예뻐 보이려고 했던 것들을 많이 버린 것 같아요."

-후속작이 '시티헌터'에요. 민호 씨가 주인공인데.

"민호도 이제 촬영시작 한다고 해요. 민호 바빠지기 전에 한 번 뜯어 먹어야 해요. 하하. '49일' 촬영 전에도 제가 중국집에서 범이랑 민호한테 쐈거든요. 그날 좀 많이 나와서 이번에 민호 꼭 뜯어 먹으려고요."

-'49일' 시청률이 좋으면 '시티헌터'에 힘이 될테죠.

"최선을 다하다보면 시청자도 재미를 느끼시지 않을까요. 하하. 시청률에 대한 마음도 비웠어요. '일지매'는 첫 방송이 20%를 넘었는데 10% 초반으로 끝났죠. '하이킥'은 6%로 시작했지만 30%를 넘은 적도 있고요. 그런 것 보면서 내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 다만 1회보다는 2회가, 2회보다는 3회가 조금이라도 시청률이 오르는 게 스태프들도 배우들도 힘이 나요. 그것만 바라죠.

-스케줄러는 홍대 클럽도 가고 '스케줄러 100배 즐기기'를 합니다. 정일우만의 '배우 100배 즐기기' 비법이 있다면요?

"우선 다양한 톤 몸짓 표정으로 대본 연습하면서 내 모습을 캠코더로 찍어봐요. 녹화된 것을 보면 저도 웃음이 나거든요. 그리고 본방송은 동료 배우들과 같이 보려고 해요. 혼자 보면 심심하거든요. 1회는 몸살 기운이 있어서 혼자 집에서 보고 2회는 세트장에서 다 같이 봤는데 1회보다 2회가 훨씬 재밌게 느껴졌어요. 하하."

-후속작 소식은 언제 즈음?

"의도해서 또 의도치 않게 1년 반 주기로 작품을 했어요. 공백기에 연기 연습을 많이 해서 더 나아진 모습을 보여드리려는 마음이었죠. 그런데 어느 날 시간가는 게 아까워졌어요. 연기도 작품을 하면 할수록 느는 것 같고요."

-마음을 바꾼 계기가 있었나요?

"의도해서 또 의도치 않게 출연 제의를 거절했는데 그런 작품들이 방송되는 것을 보면 솔직히 배 아플 때도 있고 후회할 때도 있었죠. 그런 과정을 겪으며 잘 되든 안 되든 일단 작품을 하는 게 좋다는 것을 느꼈어요."

-그렇다면 앞으로는 출연 주기를 얼마나 줄일 예정인가요?

"이제부터는 공백기를 최대한 줄이려고요. 영화 드라마 한 편씩 고민 중인데 일단 '49일'이 시작했으니 촬영에 매진하다 끝나면 다시 생각해야죠. 올해 안에 두 작품 정도 더 하고 싶은데…. 저 오버하나요? 하하"

인터뷰 말미 그는 '49일'을 하면서 두 가지 결심을 했다고 말했다. 첫째는 살찌지 말자, 둘째는 최대한 마음을 비우자란다.

"연기하는 것 자체가 행복하다는 것을 다시 느꼈어요. 누구한테 잘 보이고 못 보이고가 중요한 게 아니라 나 자신이 나를 다스려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공백기 동안 작은 일에 동요되지 않고 중심잡는 법을 배운 것 같습니다."

김아연 기자 aykim@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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