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집중분석] 엄기준 “인터넷에 공개한 e메일, 팬레터는…”

입력 2011-03-17 18:0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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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엄기준은 "드라마 \'히어로\'에서는 발칙한 역이었고 영화 \'파괴된 사나이\'에서는 안 될 놈을 맡아 따뜻하고 착한 역을 하고 싶어 \'드림하이\'에 출연했다"고 말했다. 사진=홍진환기자 jean@donga.com

배우 엄기준은 "드라마 \'히어로\'에서는 발칙한 역이었고 영화 \'파괴된 사나이\'에서는 안 될 놈을 맡아 따뜻하고 착한 역을 하고 싶어 \'드림하이\'에 출연했다"고 말했다. 사진=홍진환기자 jean@donga.com

여느 배우들이라면 바로 이렇게 대답했을 것이다. "제가 불면증이 있어서 잠을 잘 못자요. 어제도 새벽 5시에 자서 피곤하네요."

배우 엄기준(35)에게 이 말을 들으려고 기자는 질문 다섯 개를 던졌다.

"눈이 충혈됐네요."(기자)
"늦게 자서."(엄기준)
"몇 시에 주무셨는데요?(기자)
"새벽 5시 즈음?"(엄기준)
"왜 그렇게 늦게…."(기자)
"불면증이 있어요."(엄기준)
"요즘 들어 불면증이 생긴 건가요?"(기자)
"꽤 됐어요."(엄기준)
"피곤하시겠네요."(기자)
"피곤하니 잠들죠."(엄기준)

KBS2 '드림하이'에서 입심으로 마두식(안길강 분)을 설득하고 꿈을 포기하려던 주인공들을 일으켜 세우던 강오혁 선생과 너무도 거리가 먼 '다섯자 토크'식 답변이다. '이 배우 참 까칠하네.' 심통이 나려는 순간 때로는 말끝을 올리고 때로는 나긋나긋 답하는, 노래하는 듯한 말투에 귀가 솔깃했다.

최근 서울 강남에 위치한 한 카페에서 만난 엄기준은 말투에서도 뮤지컬 연극 드라마 무대에서 쌓은 17년 경력을 보여주는 배우였다.

▶ '드림하이' 시즌2 참여? 선생님 말고 복학생이라면…

-'드림하이'가 종영한지 2주가 지났습니다. 소감은?
"재밌었어요. 고생도 정말 많이 했고요. 콘서트 장면은 10시간 넘게 촬영하죠. 카메라 두 대를 돌리고 관객들 반응도 찍어야 하니까요. 게다가 전 선생님 역이니 여기저기 다 걸려서 촬영 분량이 많았죠."



-출연자들이 대사할 때마다 입김이 나와 안쓰러웠습니다.
"기린예고에서 그렇게 입김이 많이 날지 누가 알았겠어요. 하하. 입김이 카메라에 잡힐까봐 배우들 모두 찬물을 입안에 머금고 있다가 뱉고 촬영에 들어갔지만 감독님이 '불쌍해서 못 보겠으니 입김 신경쓰지 말라'고 했을 정도에요. 나중에는 불쌍해 보이라고 괜히 숨도 크게 쉬고 입김 더 많이 내려고도 했어요. 하하"

-극 중에서도 선생님 역이었지만 수지(고혜미 역) 우영(제이슨) 아이유(김필숙) 등 출연진들이 연기 경험이 없는 가수들이었습니다. 카메라 밖에서도 선생님이었을 것 같은데요.
"오히려 카메라 밖에서는 오빠 형으로 지내려고 했어요.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가는 것처럼 연기에 대해 조언해주는 사람들이 많다보면 배우들은 더 혼란스러워지죠."

-연기 지도해줄 사람은 있어야 할 텐데요.
"음…. 별로요. 물어볼 때만 이야기했어요."

-반대로 어린 후배들에게 배운 점도 있을 텐데요.
"열정! '내가 저 나이에 저렇게 했으면 지금보다 훨씬 나아졌을 텐데'라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저는 A형이라서 그런지 학창 시절에 소극적이었거든요."

-학창 시절 록밴드를 했다고 들었는데요.
"소극적인 록커? 하하. '드림하이' 속 아이들과 내 학창시절은 많이 달랐어요. 저는 소극적이고 반에 있는 듯 없는 듯한 아이였죠."

-'드림하이'의 배경인 기린예고에서는 꿈을 꾸는 아이들은 모두 꿈을 이뤘습니다.
"드라마니까요. 기린예고는 하고 싶은 건 모두 할 수 있고 원하기만 하면 모두 이뤄지는 학교였죠. 그렇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죠."

그는 "백희(은정 분)가 반칙을 써 그룹 'K'로 데뷔하지만 인기를 못 얻고 힘들어하는 모습 등이 좀 더 보여졌으면 싶었다"고 아쉬워했다.

-어른 시청자 입장에서 '드림하이'를 평가한다면…?
"제가 출연한 작품은 시청자 입장에서 못 봐요. 제 연기밖에 안보이죠. 드라마 전체에서 내가 해야 할 부분과 그 부분을 얼마만큼 했는지를요."

-본인의 연기에 만족했나요?
"(눈을 찡긋하며) 조금. 강오혁의 코믹성을 어디까지 살려야 할지를 감독님과 많이 얘기 했어요. 한때 가수를 꿈꿨고 데뷔까지 준비했던 아이니 실력도 어느 정도 있는 건데 이런 아이가 어느 정도까지 코믹해도 되는지. 또 코믹이 높아질수록 진지해질 때 또 매치가 얼마만큼 될지 많이 생각했죠."

-강오혁은 양진만(박진영)과 데뷔를 준비하다 진만을 배신했죠. 그래서 진만의 미움을 받는데, 두 사람은 화해했나요?
"그 부분을 푸는 장면이 있었는데 시간이 부족해 촬영하지 못했어요. 진만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려고 하면 진만이 '됐다. 너를 믿는다'고 하는 장면이었죠."

-뮤지컬 배우이신데 '드림하이'에서 노래를 안 불렀습니다.
"처음엔 한 곡 부르게 될 거라고 들었는데 안주더라고요. 줘야 부르죠. 하하"

아쉬웠겠다고 하자 "에이, 괜찮아요"라며 손사래친다. 그러면서도 "만약 시즌2가 제작되면 선생님 역 말고 머리 짧게 자르고 복학생 역을 맡고 싶다"며 깔깔 웃었다.

사진=홍진환기자 jean@donga.com

사진=홍진환기자 jean@donga.com




▶ 1년에 딱 열흘 쉬는 '워커홀릭', '나는 천천히 가고 있다'?

-인터넷 상에선 '강오혁 명대사'를 정리하는 팬들이 생길 정도로 강오혁의 입심은 대단했습니다.
"그러니까요! 왜 그렇게 대사가 많던지…. 혼자 학생들한테 연설하고 있고 만날 마두식 꾀고 있고…."

가장 기억에 남는 대사를 꼽아 달라는 주문에 그는 11회에서 혜미에게 했던 '천천히 가면 빨리 가는 사람보다 더 자세히 많은 것을 볼 수 있다'를 꼽았다.

"제가 그 꼴이에요. 아주 천천히 가고 있다보니 그 대사가 기억에 남네요."

'아주 천천히 가고 있다'니, 의외였다. 공식 홈페이지에 올라온 그의 스케줄표의 '차기작 검토 및 휴식' 기간은 매년 열흘을 넘지 않았기 때문. 드라마에 출연하면서도 뮤지컬 무대에 오르는 '멀티'는 다반사였고 연극 무대에 오르며 뮤지컬 연습을 하고 드라마 촬영을 병행하는 '독한' 일정을 소화했다. 마지막 여행도, 연애를 묻자 한참을 생각하더니 "4, 5년 전"이란다.

-1년에 열흘 쉬면서 '천천히 가고 있다'고요?
"(어깨를 으쓱하며) 17년 찬데요."

-그건 천천히가 아니라 쭉 가고 있는 거죠.
"에이. 천천히죠."

-쉬고 싶다는 생각 들지 않나요?
"이젠 쉬고 싶어요. 지금도 뮤지컬 '몬테크리스토'하면서 지방에서 뮤지컬 '삼총사'를 하고 있어요. 두 작품이 끝날 무렵에는 드라마에 들어갈 것 같고요."

-언제부터 쉬고 싶었나요?
"2, 3년 전부터."

-스케줄표 보니 2,3년 전에도, 지금도 휴식 기간이 없던데요.
"좋은 역 들어오면 또 하고 싶어지니까요. 일주일 정도 쉬면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요. 그런데 이젠 정말 쉬고 싶어요. 소진되고 있는 느낌이에요."

-팬들이 건강 걱정을 많이 하던데요.
"하루에 비타민 4알 먹고 홍삼도 마셔요. 그래도 힘에 부칠 때는 공진단(한약) 먹고요. 드라마 촬영할 때는 한 달에 두 번, 공연할 때는 두 달에 한 번 정도 링거를 맞기도 하죠."

링거 맞을 시간도 아까운지 "피부 관리 받으러 피부과 갈 때 링거를 놔달라고 하곤 했"단다.

"주사 맞으면 아프니 되도록 안 맞았는데 요즘은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피부과에 '피부 관리 말고 링거만 놔달라'고 전화해요. 하하"

사진=홍진환기자 jean@donga.com

사진=홍진환기자 jean@donga.com




▶ 30대 중반 지킬 도전? "마음 속에 품고 끝내는 게 좋을 것 같아"

-'드림하이' 종영과 동시에 뮤지컬 '몬테크리스토'를 시작했습니다.
"미친 짓이죠. 정말 잘못한 것 같아요. 하하. 드라마 종영이 한 주 늦춰지는 바람에 뮤지컬 연습 시간이 줄어들어서 실수가 좀 있어요. 욕 많이 먹고 있습니다."

엄기준은 이달 초부터 류정한 신성록과 번갈아 뮤지컬 '몬테크리스토'에서 주인공 몬테크리스토 백작(에드몬드 역)을 맡아 무대에 서고 있다.

-'몬테크리스토'는 두 번째 공연이시죠.
"두 번째라 부담감이 더 커요. 관객들은 지난번 공연의 실수 많았던 처음보다 마지막 공연을 기억하니까요. 재공연을 기다리며 관객들의 기대치는 더 커져있고요."

-초연과 바뀐 점이 있다면요?
"무술이 많이 바뀌었고요. 몬테가 복수하는 노래가 1분 정도, 2막 엔딩 곡에 몬테 부분이 추가됐습니다."

-몬테가 메르세데스에게 입술을 덮침을 당했다는 후기를 봤어요.
"하하. 연습이 부족해서 일어난 일 중의 하나인데 원래는 노래 마디와 마디 사이에 메르세데스가 제게 키스하는 장면이 있어요. 키스해야 하는 타이밍인데 안 하길래 안하나보다 생각하고 노래를 다시 시작했죠. 그런데 갑자기 다가와서 키스를…. 놀라서 노래가 끊겼어요."

-앞으로도 그런 키스신을?
"그 때 들어올 거라고 알고 있으니 제가 알아서 노래를 끊어야겠죠. 하하"

-인터넷에 e메일주소(jekyll666@hanmail.net)가 공개되어 있던데요.
"지금도 쓰고 있고 제 유일한 e메일이에요. 지킬을 아이디로 쓰고 싶었는데 111, 777은 모두 사용 중이어서 아무도 안 쓸 것 같은 666을 택했죠."

-e메일로 팬레터가 많이 오겠네요.
"없어요. 이틀에 한 번 꼴로 확인하면 100통 정도 오는데 그 중에 80통 정도는 '일촌 맺어달라'는 것이고 나머지는 스팸메일이죠. 팬들이 보낸 메일은 두 통 정도에요. 제가 메일을 보지 않는다고 생각하나 봐요."

지킬은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에서 따온 것으로 그는 "30대 중반에는 지킬에 도전하고 싶다"고 밝혀왔다. 그리고 이제 그는 30대 중반이다.

-'엄 지킬'은 언제 볼 수 있을까요.
"'몬테크리스토'로 대리만족하려고요. '몬테크리스토'는 '지킬 앤 하이드'와 작품 성향도 비슷하고 작곡가(프랭크 와일드 혼)도 같으니까요. 지킬은 마음속에 품고 끝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앞으로는 지금보다는 조금 쉬어가며 더 힘들고 더 재밌는 작품 하면서 70대까지 연기하려고요."

인터뷰 내내 '엄기준'은 '엄한 기준'의 줄임말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독해보였다. 마지막으로 그에게 삶의 '기준'을 물었다.

"이름이 '기준'이라 군대에서 고생 좀 했다"며 깔깔 웃더니 웃음기 싹 거두고 답했다.

"제 자신의 기준이 되고 싶어요. 법 없이도 살 수 있을 만큼 옳게, 곧게 살고 싶어요. 그게 참 힘들지만 말이죠. 하하"

김아연 기자 aykim@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이슬비 동아닷컴 기자 misty82@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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