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이런 일이 다 있노?”

입력 2011-04-18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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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전사태…대구구장 무슨 일이?

16일밤 조명탑 6개 동시에 꺼져
1만여 관중 12분간 어둠 속 공포

안지만 “야구장 무너지는 줄 알아”
김현수 “심장마비 걸릴 뻔 했다”

조명고장 ‘서스펜디드’ 사상 2번째
16일 오후 7시28분. 지어진지 63년이나 된 대구구장에선 사상 초유의 정전사태가 발생했다. 두산이 홈팀 삼성에 3-2로 앞선 8회초 1사후. 좌타자 정수빈이 좌투수 임현준의 초구에 기습번트를 대고는 전력질주해 1루에 거의 다다랐을 무렵 조명탑 6개가 한꺼번에 꺼졌다.

구장내 모든 전원설비가 동시에 마비돼 순식간에 암흑천지-. 열악하고 낙후된 야구장의 대명사로 전락한 대구구장에선 과연 무슨 일들이 벌어졌을까.


● 화를 부른 좌측 외야 조명탑

이날 대구구장 조명탑은 오후 7시40분이 돼서야 긴급복구 됐다. 그러나 좌측 외야(5번) 조명탑은 끝내 재점등되지 못했다. 조명탑에 불을 밝히기 전까지 구장 실내에선 3차례에 걸쳐 정전과 복구가 반복됐다. 1만명이 가득 찬 관중석은 12분간 칠흑 같은 어둠 속에 묻혀있었다.

6개 중 5개의 조명탑이 밝혀진 상태에서 심판진은 한국야구위원회(KBO)와 긴밀하게 연락하면서 경기재개로 가닥을 잡았다. 그러나 원정팀 두산의 양해가 필요했다. 심판진과 김호인 경기감독관은 두산 김승영 단장과 김경문 감독을 설득했지만 허사였다.

오후 8시16분 결국 서스펜디드게임이 선언됐다. 17일 오후 3시부터 재개하되 9회까지 승부를 가리지 못하면 12회까지 연장을 치르고 20분 뒤 다음 경기를 치르기로 했다. 준더블헤더가 불가피해진 것이다.


● 서스펜디드게임의 역사

한국프로야구에서 올해까지 29년간 서스펜디드게임은 이날을 포함해 모두 6차례 선언됐다. 16일처럼 조명시설이 고장 나 서스펜디드게임이 성립되기는 모두 2차례.

그 첫 사례가 1999년 10월 6일 전주구장에서 벌어진 LG-쌍방울의 더블헤더 제2경기 1회다. 삼성 김성래 타격코치는 당시 쌍방울에서 선수로 활약하고 있었다. 조명시설 문제로 야기된 최초의 서스펜디드게임을 경험한 당사자다.

그러나 김 코치는 이를 까맣게 잊고 있었다. 완전 일몰이 아닌 시점에서 경기가 정지돼 기억에서 지워진 것이다. 따라서 16일 대구 두산-삼성전이야말로 조명시설 문제로 빚어진 완벽한 첫 서스펜디드게임으로 볼 수 있다.


● 30년 한국프로야구의 슬픈 자화상


17일 경기 재개를 앞두고 양팀 선수단과 관계자들은 저마다 혀를 내둘렀다. 김성래 코치는 “완전히 ‘세상에 이런 일’이네”, 삼성 안지만은 “야구장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 두산 김현수는 “심장마비에 걸리는 줄 알았다”고 했다.

두산 김경문 감독은 단단히 화가 난 표정을 지었다. 김 감독은 “잘못(총체적 관리부실의 책임)은 저쪽(삼성과 대구시)에 있는데 피해는 우리가 본다”며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참겠다”고 밝혔다. 17일 재개된 경기에서 그대로 3-2 승리를 움켜쥐었지만 두산 입장에선 16일 호투하던 선발 김선우를 17일 8회에 다시 올릴 수 없게 된 데다, 경기 흐름과 불펜에 미치는 일말의 악영향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삼성 송삼봉 단장은 “이번 일이 새 야구장 완공시기를 앞당기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지난달 29일 대구시와 삼성이 체결한 양해각서에 따라 2014년 말 대구 지하철 2호선 대공원역 인근에 완공될 새 야구장 얘기다. 과연 대구에 새 야구장이 얼마나 빨리 들어설지 두고 볼 일이다.


조명·기계고장때 선언


■ 서스펜디드게임이란?

16일 대구 두산-삼성전 8회초 1사 후 빚어진 정전사태로 서스펜디드게임(suspended game·일지정지게임)이 선언된 이유는 무엇일까.

서스펜디드게임은 생소한 야구용어다. 그러나 야구규칙 4조 12항은 이날과 같은 상황을 서스펜디드게임으로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다. 동일 조항의 (a)의 (3)은 ‘조명시설의 고장 또는 본거지구단이 관리하고 있는 기계장치의 고장(내야덮개나 배수설비도 포함된다)’때는 서스펜디드게임으로 처리한다고 돼 있다.

대구 두산-삼성의 3연전을 담당한 한국야구위원회(KBO) 김상영 기록위원은 17일 “콜드게임은 날씨 때문에 원만하게 경기를 치를 수 없을 때 적용된다. 조명시설 고장 같은 인재로 경기를 치를 수 없을 때는 서스펜디드게임이 맞다”고 설명했다. 조명시설이 없거나 법률에 따라 사용할 수 없을 경우 일몰이 되면 역시 서스펜디드게임이 선언된다.

대구|정재우 기자 (트위터 @jace2020) jace@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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