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유나이티드 박준태(22)와 김재웅(23)이 기자회견장에 들어섰다. 극적 역전승의 두 주역은 기뻐하지 않았다. 승장 허정무 감독의 얼굴에서도 웃음을 찾아볼 수 없었다. 인천은 8일 대전 시티즌 원정에서 2-1 극적인 역전승을 거뒀다. 6일 차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된 골키퍼 故 윤기원(24)에게 바치는 승리였다.
허 감독은 검은색 정장에 검은색 타이를 맸다. 경기 전 취재진이 감독실로 들어가자 서둘러 담배를 비벼 껐다. “제자에 대한 예의인 것 같아 이렇게 입었다. 요즘 같은 상황에 담배를 입에 안 댈 수가 없다”며 한숨을 쉬었다.
故 윤기원은 허 감독 아래서 주전으로 도약했다. 아끼는 제자였던 지라 아쉬움은 더 컸다. 허 감독은 “참 성실하고 착해서 잘못한 점을 지적한 지도 꽤 됐다. 얼마 전 골키퍼는 끝까지 버텨야 한다고 조언을 해준 게 마지막 말이 됐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오른쪽 팔에 검은색 리본을 달고 나온 인천 선수들은 승리가 절실했다. 대전 박은호에게 선제골을 내준 지 10분 만인 후반 29분 박준태의 프리킥 동점골이 터졌다. 박준태는 세리머니 대신 동료들과 서포터 앞에서 묵념을 했다. 생전 윤기원의 사진과 함께 ‘당신을 영원히 잊지 않겠다’는 걸개를 내건 서포터들도 함께 고개를 숙였다. 8분 뒤 역전골을 넣은 김재웅도 무릎을 꿇은 채 조용히 기도를 올렸다. 故 윤기원과 같은 방을 썼던 박준태는 “오늘 승리는 기원 형의 선물이 아닌가 생각 한다”며 끝까지 말문을 잇지 못했다. 인천 관계자는 “선수들이 너무 힘들어하는 것 같다”며 양해를 구하고 서둘러 인터뷰를 마쳤다.
대전|윤태석 기자 (트위터 @Bergkamp08) sportic@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