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탈린의 무서운 뒤통수?…절친 키로프 암살·피비린내 숙청 기회로 삼았나

입력 2011-07-03 11:3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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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소련의 독재자 스탈린은 절친 키로프를 암살했을까.

3일 방송된 MBC ‘서프라이즈’는 1934년 12월에 일어난 볼셰비키 지도자 키로프 암살사건과 관련해 의문점을 추적했다.

1934년 12월 1일 4시경 무명의 공산당원 청년 니콜라예프가 키로프를 권총으로 쏘았다. 총성을 들었던 누군가가 니콜라예프를 현장에서 붙잡았고, 경찰에 연행했다.

파문은 일파만파로 퍼졌다. 키로프는 볼셰비키 당내에서도 신망이 두터운 권력자였고, 스탈린의 둘도 없는 친구였던 것이다. 키로프는 연설 공포증이 있는 스탈린을 위해 미리 연단에 서서 청중을 사로잡아줬으며, 정치적으로 압박받는 스탈린을 가장 앞장서서 변호해준 지자자였다.

스탈린은 키로프의 암살 소식을 듣고 한참이나 말을 꺼내지 못할 정도로 충격을 받았다. 스탈린은 키로프 죽음을 밝히는 과정에서 자신에게 반기를 들었던 지노비예프와 카메네프 등의 세력을 반동으로 몰아 대대적인 숙청을 벌었다.

법원에 의지하지 않고 즉결 심판을 할 수 있는 3인 위원회를 구성하여 3년 동안 정적을 젝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즉각 사형을 당했고, 일부는 시베리아로 쫓겨났다. 친구의 복수를 결
심한 스탈린은 결국 일인자의 자리에까지 오르게 된다.

이후 스탈린은 친구를 추모하는 의미로 마린스키 극장을 ‘키로프 극장’으로 개명했다. 이 극장은 소련이 해체된 후 옛 이름을 되찾았다.

그리고 1980년대, 글라스노스트를 표방한 소련은 키로프 암살에 대한 자료를 대거 공개했다.

이를 검토한 후버 연구소의 러시아 전문가 로버트 콘퀘스트는 저서 ‘스탈린과 키로프 암살 사건(원제: Stalin and the Kirov Murder)’를 통해서 키로프 암살의 배후에는 스탈린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평상시 키로프를 경호하던 비밀경찰과 개인 경호원 보리조프가 암살 시점 갑자기 사라졌다는 것 △ 키로프 암살 직후 나타난 유일한 증언자 보리조프가 심문을 받으러 가는 도중 의문의 교통사고로 사망한 점을 들어 이 같이 주장했다.

그는 “스탈린은 대숙청 시대를 열기 위해 혈안이 돼 있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게 자신의 반대 세력 중 한 명을 수배해 암살을 지시한 것”이라며 “니콜라이에프가 일부러 총성을 울려 사람들을 몰리게 일부러 현장 주변을 벗어나지 않게 했다”고 말했다.

그는 스탈린이 키로프를 암살한 이유에 대해 △키로프의 준수한 외모 △좌중을 압도하는 뛰어난 언변, 동료의 두터운 신임 등을 들었다.

키로프를 이길 수 없다고 느끼고 오히려 친구로 대하며 정치에 관심이 없던 그를 자신의 정치 활동에 이용했다는 것.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스탈린의 뒤에는 그를 두렵게 한 키로프가 있었고, 스탈린은 그의 죽음을 이용해서야 일인자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는 게 주장의 요지다.

한편, 키로프 암살 의혹 외에도 이날 ‘서프라이즈’는 고대 유럽 룬문자, 둔황석굴, 미술 역사상 ‘가장 잘생긴 화가’ 모딜리아니와 마지막 연인 잔느 에비테른에 얽힌 뒷얘기를 방송했다.

사진출처=사이먼 몬티피오리(스탈린 전기 작가)의 홈페이지. 청년 스탈린.
동아닷컴 온라인 뉴스팀 기사제보 star@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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