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새샘 기자의 고양이끼고 드라마]아이돌 연기자로 거듭나려면…

입력 2011-07-12 03: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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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로 변신한 아이돌 가수들日아이돌 ‘도전과 훈련’ 배우길

‘넌 내게 반했어’로 첫 주연을 맡은 아이돌 밴드 출신 연기자 정용화. MBC 제공

“우리나라는 다행히 천재가 많아 엊그제 노래 부르다가 드라마에 투입해도 연기가 된다.”

최근 배우 이순재는 연기자 선발 오디션 프로그램 SBS ‘기적의 오디션’ 기자간담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아이돌 가수 출신 연기자들이 드라마에 대거 출연하는 요즘 세태를 겨냥한 발언이다. MBC ‘넌 내게 반했어’에서 주연을 맡은 그룹 ‘씨엔블루’의 정용화는 제작발표회에서 이 말을 받아 “그 기사에 ‘정용화 보고 있나’라는 댓글이 달려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최근 종영된 ‘최고의 사랑’의 윤계상, 지금 방영 중인 ‘스파이 명월’의 에릭, ‘미스 리플리’의 박유천, 그리고 정용화까지. 한국에서도 이젠 아이돌 가수 출신 연기자, 혹은 가수 활동과 연기를 병행하는 연예인들이 낯설지 않다.

이쯤 되면 ‘발상의 전환’이 필요할 만도 하다. 아이돌 출신 연기자들을 보며 연기력 논란만 계속 반복할 건가. 우리보다 이런 상황을 수십 년쯤 일찍 겪은 일본을 보자. ‘엊그제 노래 부르다가 드라마에 투입돼’ 연기를 시작하는 경우가 유난히 많다. 3분기 일본 드라마 중 기대작으로 손꼽히는 ‘아름다운 그대에게 2’는 걸그룹 ‘AKB48’의 최고 인기 멤버 마에다 아쓰코가 주연을 맡았다. 한국 드라마를 리메이크해 15일부터 방영하는 ‘미남이시네요’의 주연은 아직 가수로는 데뷔도 하지 않은 아이돌 그룹 ‘키스 마이 풋 2’의 멤버다.

두 드라마는 공통점이 있다. 10, 20대의 어린 배우들이 대거 출연하는, 톡톡 튀는 청춘물이라는 점이다. 비슷한 연령대의 소녀팬 혹은 싱싱한 아이돌들을 보며 ‘안구정화(眼球淨化)’하고 싶은 20, 30대 ‘누나 이모 삼촌 팬’을 겨냥한 기획성 드라마다.

한국에도 요즘 이런 드라마가 늘고 있다. 아이돌이 나와 아이돌 지망생을 연기한 ‘드림하이’, 밴드(씨엔블루)의 보컬이 나와 밴드 보컬을 연기하는 ‘넌 내게 반했어’가 대표적이다. 이런 드라마에까지 좋은 연기력을 지닌 명배우가 출연하는 건 자원 낭비다. 대사 읽을 입과 잘생긴 얼굴, 가수 활동을 통해 입증된 ‘화면 장악력’이 있다면 아이돌 출신 연기자들이 출연하는 것이 더 효율적인 선택일 수 있는 것이다.

기획성 드라마와 이를 통한 아이돌 연기자의 잇따른 데뷔를 무조건 장려해야 한다는 뜻은 물론 아니다. ‘장난스런 키스’나 ‘넌 내게 반했어’의 한 자릿수 시청률이 말해주듯 완성도보다 출연 배우의 인기에 초점을 맞추는 드라마는 분명 한계가 있다. 지금이야 한류 열풍을 타고 제작과 방영이 손쉬울지 몰라도 미래를 보장할 수 없다.

일본에서도 아이돌 출신 연기자들이 그렇고 그런 기획성 드라마의 주연만 맡았다면 아이돌 출신 연기자가 계속 배출되지 못했을 것이다. 일본 국민배우로 손꼽히는 기무라 다쿠야는 아이돌 그룹 ‘스마프’의 멤버고, 영화 ‘인간실격’에서의 호연으로 올해 일본 영화제 신인상을 휩쓴 이쿠타 도마는 아이돌 기획사로 유명한 자니스 출신이다. 둘의 이력에는 공통점이 있는데 모두 무대 경험을 바탕으로 연기자로서 입지를 쌓았다는 점이다.

기무라 다쿠야는 1989년 출연 배우를 혹독하게 훈련하기로 유명한 연출가 니나가와 유키오의 연극 ‘맹도견’에서 주연을 맡으면서 본격적으로 배우의 길을 걸었다. 이쿠타 도마 역시 가수 데뷔가 계속 미뤄지던 10대 후반 극단 신칸센에 들어가 단원으로 활동했던 이력이 있고 이후로도 연극에 계속 출연해 왔다. 아이돌 출신 연기자라고 부르기엔 그 출발부터가 심상치 않았고 그 뒤로도 계속해서 연기자로서 인정받기 위한 나름의 도전을 계속해 온 것이다.

시청자는 연기력에 대한 강박에서 벗어나고, 아이돌 출신 연기자들은 연기하기 손쉬운 기획성 드라마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아이돌 출신 연기자 전성시대를 연 한국에 필요한, 일본의 답이다.

<끝>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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