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더반의 여왕’ 김연아, “스포츠 외교관, 정말 멋지더라고요”

입력 2011-07-21 03: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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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젠테이션때 심장 벌렁벌렁, 다리가 풀릴 정도로 떨렸어요

김연아 선수가 동아일보 독자들에게 평창 겨울올림픽에 대한 성원을 당부하는 자필 사인을 했다. 기사 게재날짜를 고려해 21일로 적었다.

‘더반의 여왕’ 김연아(22)는 컨디션을 거의 회복한 듯 밝고 쾌활했다. 8일 대표단과 함께 금의환향했을 때 공식행사조차 참여하지 못해 안쓰러움을 샀던 그녀는 언제나 온 국민에게 기쁨과 감격을 안겨줬던 예전의 그 활기찬 ‘피겨 퀸’으로 돌아가 있었다. 동아일보는 20일 오후 김연아와 서울시내에서 1시간 반가량 단독 인터뷰를 했다. 6일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 이후 국내 언론과 가진 첫 인터뷰였다. 근황부터 물었다.

―바쁘겠어요.

“다들 그렇게 물어보는데 모처럼 여유 있는 생활을 하고 있어요. 오전 8시에 일어나 오후 1, 2시까지 훈련하고 오후에는 오늘 같은 외부 행사가 잡히면 참석하고.”

―18일 청와대 만찬 때 이건희 회장이 팔을 잡아 대통령 앞으로 끄는 사진이 화제가 됐는데….

“사실 그 상황이 기억이 잘 안 나요. 누가 제 팔을 잡아끌었는지도 기억이 안 나고. 저는 나이가 어려 멀찌감치 뒤에 서 있었는데 어른들께서 저를 배려해 주느라 앞으로 나오라고 말씀하신 기억은 나요. 다들 고생하셨는데 저만 부각되는 것 같아 정말 쑥스러웠어요.”

―만찬장 분위기는 좋았겠어요.

“저 개인이 이룬 게 아니라 함께 이룬 것이어서 그랬는지 ‘평창’이 호명되는 순간 올림픽 금메달을 땄을 때와는 또 다른 성취감이 밀려왔어요. 한국에서 태어난 게 정말 자랑스러워요.” 평창 겨울올림픽 유치 쾌거를 이룬 남아공 더반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 이후 국내 언론과는 처음으로 20일 동아일보와 단독 인터뷰를 가진 김연아 선수. 컨디션을 거의 회복한 듯 밝고 활기찼고 미소는 해맑았다. 서영수 전문기자 kuki@donga.com

“모두 더반 이후로 처음 뵙는데 다들 서로 반가워하고…. 표정들이 확 피셨더라고요.(웃음)”

―한국에 도착해서 공항 의자에 앉아 힘들어하는 모습이 사진에 잡혔는데….

“더반이 생각보다 추워요. 프레젠테이션하기 며칠 전부터 저뿐만 아니라 많은 스태프가 목감기에 걸려 비상이었어요. 프레젠테이션할 때 목이 막힐까 봐 걱정했는데 다행히 잘 넘어갔어요. 근데 더반에서 떠나는 날 몸이 너무 안 좋은 거예요. 기내에서 열이 나고 추워서 담요를 2장이나 덮고 있었어요. 중간에 방콕에서 잠깐 쉴 때는 기운까지 빠지고 토할 것 같아서 ‘이대로는 서울에 못 가겠다’고 생각할 정도였어요. 방콕에서 서울로 오는 비행기 안에서는 약 기운 때문인지 정신없이 잤어요.”

―긴장이 풀려서 그랬나 보죠.

“그랬나 봐요. 대회를 치르면서도 이런 경우는 없었는데….”

―큰 경기에서도 안 떠는 김 선수가 경기도 아닌 이번 행사 때 그렇게 긴장했다니….

“경기는 개인이 하는 거라서 나 혼자만 열심히 하면 되는 거잖아요. 결과가 안 좋아도 제 탓을 하는 선에서 그치면 되고. 하지만 이번 일은 큰 집단에 소속돼 하는 것이라 걱정이 많았어요. 혹시 내가 잘못해서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폐를 끼치면 어쩌나 부담이 컸죠.”

―유치단 활동에 상대적으로 늦게 투입됐는데요.

“더반 총회 두 달 전 로잔에 갔는데 (평창이) 안 되면 큰일 난다는 분위기였어요. 3수라서 모두들 다시 실패하면 안 된다는 절박감도 컸고, 그동안 평창에 투자를 많이 했는데 이번에도 떨어지면 정말 안 된다는 말씀을 많이 하시더라고요. 아무래도 저는 선수 입장이니까 올림픽이 한국에서 열리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마음이 컸죠. 더구나 제가 하는 동계 종목에서 말이죠. 선수로선 현역 시절 자국에서 열리는 올림픽을 볼 수 있다는 게 크나큰 영광이죠.”

―프레젠테이션에서 영어를 정말 잘하던데요.

“(멋쩍은 표정으로 겸손해하며) 프롬프터가 있어서 그냥 읽은 것뿐인데(실제로 김 선수는 내용을 모두 외웠다고 했다)…. 영어 공부는 따로 안 했어요. 캐나다에서 2007년부터 훈련했는데 외국인 코치와 자연스럽게 이야기하면서 배운 게 전부라고나 할까. 영어를 정말 잘하고 싶어 개인 교습도 받았는데 운동이 끝나면 몸이 지쳐 공부를 해도 머리에 안 들어오더라고요. 이런 저에게 ‘더반’ 이후로 영어를 잘한다고 하니 민망해요. 다행히 (프레젠테이션) 내용이 짧고 쉬워서 매일 호텔방에서 연습하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외워지더라고요.”

김 선수는 “경기할 때도 그런 적이 없었는데 프레젠테이션할 때 심장이 벌렁벌렁하고 다리가 풀린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떨렸다”면서 “하지만 평창이 호명되는 순간 올림픽 금메달을 땄을 때하고는 다른 차원의 감동과 성취감이 밀려왔다”고 말했다.  

▼ “요정? 여왕? 흐흐… 오글거려요…

연예인은 재주 없어 절대 못하죠

20일 동아일보와 만난 김연아 선수가 2018 평창 겨울올림픽 유치가 발표되던 순간의 감격을 전하며 환하게 웃고 있다. 검은색 깃이 달린 흰색 원피스에 흰색 재킷을 걸친 그녀는 “요즘 공식행사가 많아 정장을 즐겨 입는다”고 했다. 표정은 밝았으며 말투는 시종일관 소탈하고 담백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올림픽 금메달이 더 좋았을 것 같은데 의외네요.

“한국이 정말 대단한 나라란 생각이 들었어요. 옛날에 제가 경기 나갈 때 코리아라고 하면 사람들이 ‘노스(north)?’ ‘사우스(south)?’라고 물었어요. 기분 안 좋았죠. 그런데 이번에 가서 보니까, 한국 정말 대단해요. 올림픽 경기는 물론 국가 간 대결이지만 피겨는 성격상 개인 경기이다 보니 막상 빙판에 서면 나라보다는 나를 먼저 생각해요. 경쟁자의 국적보다 경쟁자를 의식하게 되는 것이나 마찬가지죠.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어요. 내가 정말 한국의 김연아구나, 한국에 태어나서 정말 자랑스럽다 이런 마음이 들었어요.”

―더반에서 재미있었던 에피소드 같은 건 없었나요.

“(웃으며) 없었어요…. 하루에 오전 연습 한 번 하고 세 끼 밥 먹는 일 외에는. 치안이 안 좋다 보니 주로 호텔 안에만 있었어요. 저녁 먹고 방에 들어가서 TV 보고 잤어요. 참, 남아공의 어린 선수들에게 피겨 가르치는 행사가 있었는데 오기 전에 (저한테) 스케이트를 가져오란 말을 안 해서 거기 있던 스케이트를 썼는데 날이 하나도 안 서서 애들보다 더 못 탔어요. 하하하.”

―발표 당일 분위기는 어땠나요.

“1차에서 결정이 나면 우리가 이긴다는 믿음이 컸죠. 그런데 진짜 1차에서 결정 났다는 소식이 들려왔어요. 분위기가 난리도 아니었죠. 저도 대기실에서 보고 있었는데 눈물이 나더라고요. 누군가 아직 모른다, 더 차분하게 기다리자고 말했어요. 모두들 긴장을 늦추지 못했죠.”

―눈물을 별로 안 흘리는데 2010년 밴쿠버 올림픽, 2011 세계피겨선수권, 이번 평창 확정 순간에도 눈물을 흘렸어요. 요즘 눈물이 늘었다는 소리가 있어요.

“저 원래 잘 울어요. 어릴 때는 엄청 울었어요. 질질 짜면서 연습했어요. 드라마 보다가도 울고 영화 보다가도 울고. 사실 공식석상에서야 울 일이 별로 없죠. 음…, 그러고 보니 나이 들면서 더 늘었나? (다시) 하하하.”

6일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에서 열린 제123차 국제올림픽위원회(IOC)총회 최종 프레젠테이션에서 인사하는 김연아. 동아일보DB

―이번 프레젠테이션 옷도 마찬가지고 김 선수가 입으면 옷이며 귀고리며 동이 나는데….

“그냥 입혀주는 대로 입는 건데, 예쁘게 봐주니 고맙죠. 개인적으로 튀는 색깔보다는 검은색을 좋아해요. 옷장을 열면 다 검은색이에요.”

―평창 때문에 ‘더반의 여왕’이란 말까지 듣고 있는데 요정, 공주, 여왕 중에 어느 게 제일 듣기 좋나요.

“흐흐흐. 솔직히 그런 말 들으면 온몸이 오글거려요. 그냥 김연아 선수 할래요. 어렸을 때는 요정이라고 불러주셨는데 요즘은 나이 드니까 여왕이니 여신이니 하고 불러주시는 것 같아요. 어쨌든 고맙죠. (두 팔을 들어 양손가락을 오글거리며) 근데…, 오글거려요.”

―IOC 위원들이 김 선수와 사진을 찍으려고 줄을 길게 늘어섰다던데….

“아유, 그건 과장이에요. 저희가 잘 보여야 하는 자리인데 저희가 먼저 사진을 요청했죠.”

―성격이 정말 매사 초연한 편인가요.

“흐흐흐. 저 진짜 단순해요. 제가 O형이거든요. O형들이 좀 쿨하잖아요. 스트레스 거의 안 받아요. 스트레스 받아서 잠을 설친 적도 없고요. 근데 이번 월드챔피언십 개최 2주 전(4월 말 모스크바)부터는 잠이 안 오더라고요. 아, 나도 긴장하는구나 이런 생각이 처음 들었어요. 많이 먹었는데 살도 빠지고.”(김 선수는 이 대회에서 은메달을 땄다.)

―끝나고 나서는 어떤 기분이었나요.

“실수를 하긴 했지만 그냥 끝났다는 게 너무 좋았어요. 사실 밴쿠버 올림픽 이후 좀 (마음이) 힘들었어요. 꿈이 이루어지다 보니 ‘내가 이걸 왜 해야 해’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월드챔피언십 며칠 전까지는 비교적 잘 버텼는데 임박해서는 완전히 의욕을 잃어 말도 하기 싫고 사람도 만나기 싫고, 야 진짜 이러다 우울증에 걸리겠구나,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었던 것 같아요. 그런 상황에서 어떻든 경기를 끝냈으니까 그렇게 후련할 수가 없더라고요.”

―목표 달성 끝에 허무감을 경험했군요.

“올림픽 전에는 올림픽만 보고 살았죠. 끝나고 전 정말 쉬고 싶었어요. 그런데 사람들이 자꾸 목표가 뭐냐, 앞으로 선수생활은 어떻게 할 거냐 묻고. 정말 다 접고 쉬고 싶다는 생각뿐이었어요. 제가 원래 멀리 내다보진 않아요. 그런데 요즘은 멀리 봐야겠다,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어느 날 문득 제 스스로 이런 물음이 왔어요. 사람들이 넌 (내적으로) 어떤 사람이 될래 하고 물으면 난 지금 무슨 대답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해보니 아무런 답을 할 수 없는 거예요. 참 생각 없이 살았구나,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매년 고비가 오는 것 같아요. (갑자기 혼잣말처럼) 인생 다 살았어. 하하하.”

―그런 점에서 더반은 큰 계기가 된 것 같네요.

“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경험이었죠. 평창이 호명되는 순간, 그 현장에 있었다는 것을 평생 잊지 못할 것 같아요.”

―변화에 대한 적응력이 뛰어난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좀 그런 편이에요. 외국에 오래 있어도 한국음식이 그립다거나 이런 적이 없어요. 아, 근데 요즘은 좀 이상해요, 김치가 먹고 싶고. 저 원래 자극적인 음식 정말 안 좋아했는데. 진짜 나이가 드나. 호호호.”

―정말 평소에 간식도 안 먹나요.

“아유, 다 거짓말이에요. 전 몸을 쓰는 사람이라 잘 먹어야 해요. 언론에는 오버해서 나오는데 고기 이런 거 골고루 양껏 먹어요. 어렸을 때는 살이 안 찌는 체질이라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먹는 만큼 찌더라고요.”

―스스로 정직하다고 생각하나요.

“(곰곰이 생각하는 듯하다) 거짓말을 좋아하지 않아요. 솔직한 편이에요. 너무 솔직하다 보니 안 좋더라고요.”

―2006년 3월 세계주니어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한 뒤 인터뷰에서 “딸이 태어나면 피겨를 시키겠느냐”고 묻는 기자에게 “노”라고 했어요. 지금도 같은 심정인가요.

 

“엄마와 하루도 빠짐없이 사춘기 때 싸웠어요. 매일매일 전쟁이었죠, 엄마랑 저랑 둘 다 성격이 강해요. 하지만 엄마 덕분에 운동에만 집중할 수 있었죠. 코치라고 할 정도로 저에 대해 많이 알고 있으니까요. 저는 엄마가 되면 못할 것 같아요. 다음에 2세가 생기면 운동은 절대 안 시킬 거예요. 제가 운동을 해서인지 몰라도 운동은 너무 힘들어요. 몸을 혹사시키는 거라 절대 시키고 싶지 않아요. 근데 트레이너 선생님이 저보고 나중에 애를 많이 낳으래요. 제 몸이 운동하기 딱이라고 애들 많이 낳아서 운동시키래요. 하긴 다른 운동선수 보면 아이들이 또 스케이트를 타더라고요. 숙명인가….”

―취미는….

“음악 듣는 거 좋아해요. 깜빡 잊고 아이팟 놓고 나오면 헐…. 수다 떠는 것도 좋아해요. 지난 가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있을 때 트레이너 선생님, 엄마, 에이전트, 매일 이분들과 같이 있었는데 매일 보니까 할 얘기가 떨어지잖아요. 말하고 싶은데 말할 사람이 없었어요. 저도 글쎄 외로움을 타더라고요.”

―주량은….

“맥주 두 잔까지 먹어봤는데 ‘이 쓴 걸 왜 먹는지 모르겠다’ 이런 생각이 들던데요. 로잔에 가서 빈속에 저녁에 와인 한잔을 먹었는데, 눈이 이상하고 땅이 왔다갔다 졸음이 오더라고요. 피곤할 때 빈속에 먹으면 그렇다더라고요. 주위에서 (술) 잘 먹을 것 같다고 하긴 하던데.”

―동생이 너무 유명하니까 언니는 상대적으로 조금 소외감이 느껴지겠어요. 언니와는 몇 살 차인가요.

“세 살 차이예요. 직장 다니고 있어요. 사실 어렸을 때부터 엄마가 저만 집중적으로 돌보느라 언니한테 너무 미안한 게 많아요.”

―요즘 ‘키스앤크라이’라는 피겨스케이팅 예능프로그램에 나오던데….

“처음엔 출연하지 않으려고 했어요. 피겨가 대중적인 경기가 아니기 때문에 잘될 것 같지 않아서요. 그런데 어쨌든 피겨를 대중화하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해서 출연을 결심했죠. 근데 생각보다 출연진이 매우 잘해서 볼 때마다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연예인 김연아가 될 수도 있나요.

“우와, 저는 절대 못해요. 재주가 없어요. 어떻든 저는 선수고 연예인은 선수와는 완전히 다른 직업이에요.”

―그래도 광고 찍을 때 보니까 끼가 보통이 아니던데….

“제가 사실 예쁜 척을 못하는데 촬영이 길어지면 남들한테 폐를 끼치고 저도 피곤해져서 빨리 끝내고 가자 이런 생각에 열심히 하죠. 그것도 연습 많이 해서 되는 거예요.”

―이번 기회에 나중에 스포츠 외교사절이 되면 어떻겠나 하는 의견들이 있던데….

“저는 아직 어리고 선수 신분이기 때문에 멀리까지 볼 수 없지만 주변에서 스포츠 외교사절로 일하라고 조언해 주세요. 현장 가서 보니까 멋있더라고요. 근데 영어도 잘해야 하고 그전에 준비도 많이 해야 하고.”

―앞으로의 계획은….

“우선은 할 수 있을 때까지 스케이트를 계속 타고 싶어요. 공연도 하고. 남자는 40세 정도, 여자는 30대 초반까지 프로로 활동하고 있으니까.”

1시간 반 동안의 인터뷰가 끝났다.

그녀에게는 언론의 무수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아온 사람 특유의 조심성은 있었지만 말투나 감정 표현이 담백하고 솔직했다. “한국이 자랑스러웠다”고 했지만 그것은 기성세대로부터 들어오던 ‘애국심’과는 분위기가 다른 것이었다. 상처나 한(恨) 같은 게 없는 그야말로 순백의 캐주얼하고 밝은 애국심이라고나 할까. 올림픽 유치란 큰일을 치르면서도 일에 대한 의미부여 이전에 먼저 즐기고,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는 그녀에게서 밝게 자란 이 땅의 젊은 세대가 만들 미래 한국의 모습이 보였다.

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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