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꿈꾸는 거북이… 느려도 지치진 않습니다”
캐리커처 최남진 기자 namjin@donga.com
10일 서울 여의도 KBS 신관공개홀 출연자대기실 6번방 문을 열자 일본어가 먼저 들렸다. ‘달인’ 개그맨 김병만 씨(36)가 일본인 강사에게 일본어를 배우고 있었다. 개그맨 후배들과 12월 일본에서 소극장 코미디 공연을 하려고 준비 중이라 했다. 김 씨가 “뜻도 모르고 대사를 외우기만 한다면 연기의 느낌을 살릴 수 없다”고 주장해 후배들까지 강습에 동참했다. ‘달인’에서 수제자 역할로 나오는 노우진 씨(31)는 옆에서 단어시험을 보고 있었다.
KBS ‘개그콘서트’의 최장수 코너 ‘달인’의 주인공이자 SBS ‘김연아의 키스&크라이’에서 피겨스케이터로 활약하는 그가 자전 에세이집 ‘꿈이 있는 거북이는 지치지 않습니다’(실크로드)를 출간했다. 7전 8기 끝에 공채 개그맨이 되고 다시 긴 무명생활을 거쳐 달인에 이르기까지의 이야기를 담았는데 11일 7000부를 내놓자마자 동나 2쇄 인쇄에 들어갔다. 책 제목은 지난달 초 행정안전부 공무원을 대상으로 한 특강에서 화제가 됐던 발언에서 따왔다. “저는 거북이입니다. 언제 도착할지는 모를지언정 쉬거나 포기하지는 않습니다.”
트레이닝복에 등산화 차림으로 기자를 맞은 그는 “수시로 달인 연기를 연습해야 해서 옷차림이 이렇다”며 쑥스러워했다. “지금은 샌드아트와 3m 길이의 채찍으로 오이 자르는 연습을 하고 있어요. 연기마다 연습기간이 다르니까 두 가지 이상을 한꺼번에 합니다.”
인터뷰 도중 달인의 팔에서 멍 자국이 보였다. 피겨 공연을 하다 다쳤다고 한다.
1주일에 한 번씩 백지 상태에서 시작해 달인으로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김병만 코미디’는 바닥부터 정상에 오른 개인사의 궤적과 맞닿아 있다. 전북 완주군 화산면에서 태어나 고등학교 졸업 전부터 공사판에서 일했다. 스무 살에 30만 원을 들고 상경해 스물일곱에 KBS 공채 개그맨이 되기까지 서울예전 입시 6회, 백제대 입시 3회, MBC 개그맨 공채시험 4회, KBS 개그맨 공채시험에 3회 떨어졌다. 목욕비가 없어 공중화장실에서 몰래 몸을 씻다가 경비원에게 수모도 겪었다. 딱 죽고 싶어 수면제를 40알 사 모은 적도 있다. 그는 이 모든 역경을 이겨내고 지난해 KBS 코미디부문 연예대상을 받았다. 개그계의 달인이 된 것이다. ‘키스&크라이’를 위해 3월 피겨스케이팅까지 시작한 뒤로는 하루 수면시간이 2∼3시간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피곤하지 않고 항상 설렌다”고 했다. “매니저가 못 견디겠다고 할 정도로 바빠요. 무명일 때는 아무리 열심히 해도 박수치는 사람이 적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열심히 달려가면 많은 분이 박수를 치며 기다리고 있으니 힘이 날 수밖에요.”
키스&크라이 출연 이후 정강이에는 스케이트 날에 베인 상처가 훈장처럼 남았다.
그는 아이디어맨이다. 2007년 12월 이후 3년 9개월 넘게 ‘달인’ 코너를 이끌면서도 후배들에게 이런 저런 개그 소재를 나눠준다. 개콘의 인기 코너 ‘생활의 발견’도 그의 아이디어였다.
“비결은 없고 즐기면서 해요. 내일까지 안 하면 굶어죽는다는 식의 각오는 없어요. 그 대신 누구를 만나든 아이디어로 연결할 궁리를 합니다. 기자를 만나니 ‘16년 동안 특종만 잡아온 오보 김병만 기자’가 떠오르네요.”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동영상 촬영을 해 둔다고 했다. 동작까지 정확히 기억하기 위해서다.
달인의 손가락은 휘었고, 마디는 굵어졌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달인 김병만은 영원한 희극배우로 남고 싶다고 했다. “찰리 채플린과 시무라 겐, 기타노 다케시를 세계인이 기억하듯 외국사람도 대한민국에 김병만이라는 희극배우가 있었다고 기억하게 만들고 싶어요. 묘비명도 생각해뒀는데, ‘잘 살고 잘 죽었다’, 어때요?”
곽민영 기자 havefun@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