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다리만 보지말고 내 기록을 주목하라”

입력 2011-08-19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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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럴림픽 석권후 일반선수들과 경쟁 선언
“보철다리, 에너지 경감” 올림픽 출전 좌절
스포츠재판소 제소끝 세계선수권 꿈 이뤄
“대구대회서 실력으로 모든 논란 잠재운다”
세계육상선수권은 흔히 ‘건각(健脚)들의 제전’으로 불린다. 육상선수들에게 튼튼한 다리는 필수 불가결의 요소다. 하지만 2011대구세계육상선수권에서는 선천적으로 두 다리의 종아리뼈가 없는 선수가 트랙 위에 선다. 그의 이름은 오스카 피스토리우스(24·남아공). 그는 ‘의족 스프린터’, ‘블레이드 러너’ 등으로 불리며, 스타 선수 못지 않은 관심을 받고 있다.


○블레이드 러너, 육상과 만나다

태어날 때부터 두 다리 종아리뼈가 없었던 피스토리우스는 생후 11개월 때 무릎 아래를 절단했다. 기형인 다리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해, 의족이라도 착용하기 위해서는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걸음마 역시 보조기구를 사용하며 배웠다. 하지만 운동신경만큼은 탁월했다. 이미 학창시절부터 럭비, 수구, 테니스 등을 섭렵했다.

그러다 2003년 럭비 경기 도중 당한 부상은 그의 인생을 바꿔 놓았다. 재활 과정에서 육상을 본격적으로 만나게 된 것이다. 피스토리우스는 탄소 섬유 재질의 보철 다리로 장애인 무대를 평정했다. 마침내 2004아테네패럴림픽 200m에서는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패럴림픽 무대는 좁았다…일반선수들과의 경쟁선언

이후 그의 도전은 전환점을 맞았다. “일반 선수와도 경쟁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그러나 2008베이징올림픽에 도전하던 그는 큰 걸림돌을 만났다. 2008년 1월, 국제육상경기연맹(IAAF)이 “피스토리우스가 기술적 장비인 보철 다리를 통해 일반 선수보다 25% 정도 에너지 경감 효과를 누리고 있다”며 그의 올림픽 출전을 금지한 것이다.

결국 분쟁 끝에 스포츠중재재판소(CAS)는 “피스토리우스가 보철 다리로 부당한 이득을 얻지 않았다”며 IAAF의 결정을 뒤집었다. 피스토리우스에게는 올림픽과 세계선수권대회 출전기회가 열렸다. 하지만 그는 베이징올림픽 당시 A기준기록(45초55)에 0.7초가 모자라 출전권을 획득하지 못했다. 2008베이징 패럴림픽 무대는 그에게 너무 좁았다. 남자100·200·400m에서 3관왕을 차지했고, 그의 시선은 다시 일반선수와의 경쟁으로 쏠렸다.


○마침내 이룬 꿈…대구세계육상선수권 출전

2011년은 피스토리우스의 끈질긴 도전사에 기념비적인 해다. 3월 400m에서 45초61을 찍으며 B기준기록(45초70)을 통과한데 이어 7월에는 45초07로 A기준기록(45초25)까지 넘어섰다. 마침내 대구세계선수권 출전티켓을 자력으로 거머쥐었다.

그는 메이저 육상대회에서 일반 선수와 경쟁하는 최초의 장애인으로 기록될 것이다. 이 뿐이 아니다. 그는 8일 발표된 남아공대표팀 명단에서 1600m 계주선수로도 이름을 올렸다. 그의 기록(45초07)은 남아공 계주 대표 가운데 반 질(44초86)에 이어 두 번째다.


○아직도 식지 않은 논란, 실력으로 잠재운다

과학자들 사이에서도 그의 의족이 일반선수들에 비해 에너지 경감 효과를 얻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이번 대회를 앞두고도 의족에 대한 논란이 재점화되고 있다. 또, 계주경기 중 사고위험성도 제기되고 있다. 바통터치 과정에서 충돌이 있을 경우 다른 선수들까지 크게 다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IAAF대변인은 “피스토리우스가 바통터치에 대한 부담이 적은 첫 번째 주자로 나서는 게 좋겠다”는 의견을 피력하기도 했다.

피스토리우스는 “일반 선수들과 경쟁하게 돼 영광이고 감사하다. 세계적인 과학자 중 일부는 내가 일반 선수들과 경쟁하는 데 있어 의족의 도움을 받지 않았다고 과학적으로 입증했다. 그래서 세계선수권대회에 출전할 수 있게 됐다”며 성적으로 모든 논란을 종식시키겠다는 각오다.

전영희 기자 (트위터@setupman11) setupman@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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